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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83회
  • 한애자
  • 승인 2018.01.27 17:46
  • 수정 2018.01.2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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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위 얼굴

채성은 자신이 수석합격자가 되어 장흥의 후원을 받은 걸 상기하며 말했다. 그 때 자신은 S대 경영학과 최고득점의 우수학생으로 신문지상에 파다하게 알려져 유명해졌다. 사람들은 자신을 천재라고 추켜세웠다. 그 때 그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에 대한 증오감으로 다시 온몸을 떨고 분노의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혹시 신문에서 나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뱃속에서 나온 자식이라고 여긴다면?’ 만약 곁에 있었다면 폭행하고도 남을 만큼 증오의 피가 끓고 있었다.

‘나에겐 엄마가 없다. 난 이제 고아야.’

어머니를 부정하며 증오했다. 아니, 어쩜 그 증오심을 애춘에게 투사했는지 모른다. 자기밖에 모르는 짐승 같은 여자라고 치부했다. 그리고 모든 여자가 다 그럴 것이라는 왜곡된 여성관을 갖게 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어두운 그늘이 자신을 뒤덮고 있었다. 그 증오를 장애춘에게 투사함으로 비극이 빚어졌음을 깨달았다.

“아니네. 이대로 나 몰라라 방치하면 자네나 나는 언젠가 사이코패스형의 인간을 만나 그들의 손에 죽음을 당할지도 모르네.”

“자기와 상관없는 불특정 다수를 마구 죽이고 싶은, 증오에 불타는 인간들이 세상에 판을 치겠지!”

선뜻 어머니를 칼로 찔러 죽이고픈 충동까지 가졌던 자신을 상기시켰다.

▲강릉 바위얼굴 ⓒ뉴스프리존

채성이 대학 동기로서 송문학과 다시 만난 것은 그가 유학을 다녀온 후였다. 송문학은 원래부터 학구파였고 매우 선량한 인품을 지녔다. 자신이 애춘의 집에 기거하며 방황하고 있을 때였다. 유학에서 돌아온 그의 인상은 매우 차분하면서 확신과 소망에 가득 차 보였다. 송문학은 우리 동년배와는 생각이 다르고 스케일이 넓고 크고 깊었다.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고 두 눈에는 언제나 총기가 넘쳐 있었다. 그에게는 삶의 무료나 권태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그는 높은 이상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우리가 고작 개인의 안일과 일상의 복잡한 문제에 매여 끌려 다닐 때, 그는 사회와 국가의 일을 먼저 염두에 두고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다. 채성은 송문학을 처음에는 위선자라고 비웃었다.

“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하는 행동이야!”

그렇게 비웃었지만 점차 그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사회적 명사가 되면 좀 거만하고 속된 출세주의에 편승할 것이라는 자신의 예측과는 달리, 그는 거물급들과 교류하는 목적도 사회 운동을 위해서였고, 자신이 사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구체적으로 유출했다. 그리고 늘 겸손했다. 술과 여자와 권력의 유흥에 빠지지 않는 그의 생활은 소박하고 건실했다. 상류층의 거물급들과 만날 기회가 있으면 늘 자신의〈모델하우스〉에 그들을 교도하는 입장이 되었다. 너무도 순진한 어린양 같은 순수성은 세태에 찌들고 세속적인 쾌락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어색하고 한낱 재미없고 뜬구름 잡는 유치한 인물로 보였다. 그러나 그는 결코 부끄러워하거나 비굴하지 않았다.

강석과 마주앉아 송 박사의 이야기를 하면서 두 사람은 섹스폰 소리가 멈추자 카페에서 나왔다. 밖의 날씨는 촉촉한 비가 내린 후 멈추었다. 서녘 저편에 분홍빛 구름이 아른거리고 바람도 제법 상쾌했다.

“자네도 방황하지 말고 송 박사 모임에 함께 참석하게나!”

“방황…?”

강석은 어색하게 웃었다. 아내와 갈등하고 있는 자신을 짐작해 하는 말임을 알아챘다.

“모델하우스 센타, 우리의 큰 바위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알았네. 마음이 정리되면 곧 연락 하겠네!”

밤하늘의 공기는 매우 상쾌하고 신선했다. 아니, 모처럼 마음이 개운했다. 채성은 곧바로 평창동으로 향했다. 애춘의 기척이 안방에서 들렸다. 아내가 편안한 듯하여 안심이 되었다. 채성은 긴장이 풀렸는지 위스키의 강한 취기가 몰려왔다. 시계는 벌써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곧 바로 거실의 소파에 몸을 던졌다. 밤은 깊어갔다. 아니 그것은 새벽을 예비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면 곧 새벽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어디까지나 희망적이다.

한애자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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