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10주년 서울미술관 안병관 회장의 '컬렉션 스토리'
기획에도 참여...근현대 소장작 140점 손수골라 기념전

[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 서울미술관이 10주년을 맞았다. 의약품 유통기업(유니온약품)을 운영하며 미술품을 수집해온 안병관 회장이 2012년 8월 인왕산 자락에 설립한 미술관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장인 석파정을 품은 공간으로도 유명하다. 안 회장을 미술품 수집가로 이끈 것은 이중섭 작품. 그에게 외로움, 고통, 사랑, 그리움 등 여러 감정을 용광로처럼 쏟아냈다. 그것이 위안이 됐다.

김환기 화백의  ‘십만 개의 점’ 앞에 선 안병관 회장 

”1983년 9월, 태풍 포레스트가 많은 비를 뿌리던 날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명동 성모병원에서 일을 마치고 비를 피하기 위해 어느 액자 가게의 처마 밑으로 피했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이 작품이 걸려있었습니다. ‘참 못 그렸다.’ 그림을 보고 들었던 첫 생각입니다. 지금 와서 고백하자면 처음 봤을 때는 그 집 아이가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인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그림이 아니고 사진이라는 얘기를 듣고 값을 흥정해 7,000원을 주고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사진을 계속 보고 있으니 처음으로 원화가 갖고 싶어지더군요. 그러나 진품이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었고, 또 그 값이 저의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에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2010년 6월 29일, 이중섭의 ‘황소’가 미술시장에 나타났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진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큰 기와집 한 채 값이었던 작품이 이제는 빌딩 한 채 값이 되어 있었고, 아무리 미술품이 좋아도 수집가로서 현실적인 상황과 조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원했던 작품을 드디어 품에 안을 기회가 온 만큼 고민을 거듭한 끝에, 당시 아끼던 소장품인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을 되팔고 나머지 금액만 지급하는 방식으로 거래했습니다.

30년 전 처음 사진으로 ‘황소’를 만나고 30년 뒤 진품 ‘황소’를 소장하는 과정을 되돌아보면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던 이중섭과 깊은 친분을 쌓은 기분이 듭니다. 얼마나 드라마틱한 인연인지요.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과 그림에도 뿌리 깊은 인연의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때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이중섭의 '황소'
이중섭의 '황소'

그가 직접 기획에도 참여해 9월 18일까지 개관 10주년 기념 소장품전을 연다. 근현대 한국 작가 31명의 작품 140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이중섭의 '황소'(1953)를 필두로 박수근의 '우물가(집)'(1953), 도상봉의 '정물'(1954),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1976) 등 근현대 한국미술 걸작들이 소개된다. 김환기의 '아침의 메아리 04-VIII-65'(1965), 도상봉의 '국화'(1973) 등은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특히 이중섭의 작품들은 드로잉에서부터 은지화·엽서화·유화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다. 김창열,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등 300호가 넘는 초대형 작품들도 전시된다.

”제가 생각하는 김환기 화백의 인생 걸작은 ‘십만 개의 점’입니다. 그의 대표작 ‘우주’, ‘십 만개의 점’, 그리고 ‘하늘과 땅’ 중에서도 제가 ‘십 만개의 점’을 역작으로 꼽는 이유는 이 안에 ‘우주’와 ‘하늘과 땅’의 구성이 모두 녹아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작품에는 다른 두 작품에 없는 사각 도상이 더해져 우리가 사는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연상시키는 구성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에 그야말로 김환기의 예술 세계가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가는 끝내 본인이 다 쏟아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지만, 그 부족했던 부분은 후대의 우리가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사실 이 작품을 소장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100억이 넘어가는 가격을 듣고 좌절했습니다. 지금껏 비싸더라도 미술사적인 가치가 있는 작품은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사야겠다는 의지로 이 길을 걸어왔지만, 100억이라는 돈은 쉽게 투자할 수 있는 돈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이 작품이 외국으로 나가면 김환기 최고의 작품을 영영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아끼고 아꼈던 자식 같은 소장품들을 팔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과연 그 모든 작품을 합친 것만큼의 가치가 있을 것인지, 어쩌면 김환기 화백이 실패라고 했던 것처럼 저 역시 누군가에게는 실패한 선택이라고 평가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수로 셀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로 세지 않아도 되는 것만큼 마음의 위로를 주는 것도 없지요.“

김상유 '지락재'

그가 특별히 애지중지하는 작품도 있다. 바로 김상유 작품이다.

”김상유 화백의 작품은 아무 말이 없지만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채울 수 있는 작품입니다. 언뜻 장욱진 화백의 그림을 연상시키듯 작품은 참 순수한 모습을 하고 있지요. 2002년 한 화랑에서 김상유 선생의 전작 전시를 할 때 작품을 보고 그 순수함과 침묵 속에서 깊은 예술 철학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당시 전시에 출품되었던 작품을 거의 다 구입했습니다. 아마 김상유 화백의 작품 중 80%는 서울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을 겁니다. 김상유 선생의 평생을 송두리째 얻은 것과 다름없지요.

마음을 비워야 더 많은 것을 채울 수 있다는 말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덩달아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바라보게 되는 작품입니다.“

천경자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그가 힘들 때 삶의 의지를 불태우도록 만든 작품도 있다. 아프리카 배경의 천경자 작품이다.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를 소장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지키고자 했던 집념, 그리고 삶. 나를 어렵게 했던 환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그런 것들이 화폭에서 절절히 느껴져 이 작품을 소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래도록 기다리고 갈망하던 이 작품을 어렵게 미술시장에서 만났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당시 전 재산을 털어서 이 작품을 구입하고 오랜 시간 거실에 걸어두고, 그림을 감상했습니다. 노을 지는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모든 동물이 평화롭게 뛰노는 모습과 듬직한 코끼리 등 위에서 다시 한번 생에 대한 다짐을 키우며 일어서려는 여인의 모습이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유영국 '산"
유영국 '산'

그에게 남들과 나누는 것이 더 큰 기쁨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작품도 있다. 유영국의 작품 ‘산’이다.

”유영국 화백은 고향의 울진에 있던 산을 그렸는데, 산이 많은 산정동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 이 작품들은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입니다. 한편으로는 ‘장롱 컬렉터’로서의 삶을 반성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던 작품들이기도 하지요. 처음 유영국 화백의 작품을 수집하고서는 혼자 보는 것만으로도 풍족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작품을 전시장에 걸어 놓고 보니 내가 이런 작품도 소장하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더군요. 많은 사람과 작품을 나눌 때 눈앞의 산이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며, 새로운 산으로 다가온다는 깨달음을 안겨준 순간이었습니다.

미술품을 수집하는 데에 두 가지 즐거움이 따릅니다. 하나는 내 생활에 아름다움이 공존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아름다움을 남들과 나누는 기쁨이 생긴다는 것이죠. 수집의 즐거움은 단순히 모아두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의 기호를 주변 사람과 나누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그 즐거움이 배가 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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