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딱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저인 것 같습니다. 본래 숫자에 약해 젊어서부터 영악하게 이익은 챙기지 못하고 맨날 줄줄 흘리고만 다닙니다. 거기다가 요즘에 와서는 제가 개인적으로 보내는 <덕화만발>을 걸핏하면 잊어버리고 보내지 못해,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지요.

그런데 세상에는 저만큼 딱한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는 사람도 딱하지만, 먹을 것을 앞에 두고도 이가 없어 못 먹는 사람은 더 딱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짝이 없어 혼자 사는 사람도 딱하지만, 짝을 두고도 정 없이 사는 사람은 더 딱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잘 자라지 않는 나무는 뿌리가 약하기 때문이고, 잘 날지 못하는 새는 날개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행동이 거친 사람은 마음이 비뚤어졌기 때문이고, 불평이 많은 사람은 마음이 좁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엔 딱한 사람과 빼기만 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된다는 건 세상 사람들이 다 합니다. 하지만, 좋은 생각에 좋은 생각을 더하면 복이 된다는 걸 아는 사람은 적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은 빼기도 잘하지만, 더하기도 잘하는 사람이겠지요.

‘이미애’님의 <사막에 숲이 있다> 중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중국 ‘마오우쑤(毛鳥素)’ 사막을 숲으로 만든 ‘인위쩐(殷玉進)’의 이야기입니다.

황량한 사막이었습니다. 매서운 모래폭풍이 부는 곳이었지요. 찾아오는 사람 한 명도 볼 수 없고,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살고 있던 가난한 청년에게 시집을 온 여자가 있었습니다.

신부는 통곡을 하다가 1주일 만에 한 마디를 꺼내게 됩니다. “여기 꽃을 심으면 안 될까요?” 그 한 마디가 더하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사막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낸 것입니다. 나무가 살 수 있으면 채소도 살 수 있고, 채소도 살 수 있으면, 사람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녀는 매일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동안 꿈 없이 현실에 순응하며 살던 남편도 그녀와 함께 모래바람과 싸우며 나무를 심었습니다. 한 그루 한 그루 20년 간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한 그루가 모여 숲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 기적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사막을 피해 돌아가서는 숲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사막에 나무를 심었더니 그것이 숲으로 가는 길이 됐지요.” ‘할 수 없는 것’을 찾고 있다면 할 수 없는 걸림돌만 쌓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있다면 할 수 있는 디딤돌이 놓입니다.

자기 자신 만을 위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끝에 풍요와 안락이 있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의 끝에는 풍요와 안락은 물론 아름다운 사랑까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느냐 아니면 부정적으로 보느냐의 차이입니다. 거기다 ‘적극적이며, 정열적 행동을 더 하면’, 과연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그런 분에게는 사막에서 숲을 이루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 인생을 풍요와 안락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제 그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더하기 인간 형의 몇 가지 특징을 한번 알아봅니다.

첫째, 스스로 동기를 찾는 것입니다.

인간의 신념은 그 사람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줍니다. 그리고 긍정주의자는 자신이 하는 일을 스스로 믿는 사람입니다.

둘째, 실패를 배움의 기회로서 바라봅니다.

사람이 실패를 한 번도 겪지 않고 성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실수는 고쳐지고, 구멍은 메워지며, 실패는 극복되어, 위대한 성공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지요.

셋째, 스스로에게 정직합니다.

정직은 자신을 더더욱 강하게 만듭니다. 실수는 더 나아지기 위한 한 과정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넷째, 남들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삶이 자신이 원하는 식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결국에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니까요.

다섯째, 긍정적인 사람은 스스로를 개척합니다.

아무도 자기 자신을 개척하지 않고서는 긍정주의자가 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의 실수와 오류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 지금까지의 성과에 적절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인 인간의 태도이지요.

어떻습니까? 일생을 황량한 사막에서 팔자타령만 할 것입니까? 이왕이면 사막을 숲으로 가꿔 풍요를 누리는 더하기 인생을 살아가시려는 지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4월 2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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