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칼럼] 유승민이 남긴 세 가지 정치적 유산, 개혁보수 청년정치 확장시켜야

유승민의 예정된 좌절

유승민이 졌다. 유승민 지지자들은 당심에서는 졌지만, 민심에서는 승리했다며 여전히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유승민은 다른 당도 아닌 국민의힘의 경기도지사 공천을 노렸고, 해당 정당의 당원들은 그들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후원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 김은혜 의원을 일방적으로 밀어줬다.

유승민은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뒤이어 경지도지사 후보 경선전에서마저 연달아 고배를 마셨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고 일컬어지지만 정치인에게 불과 몇 달 간격으로 2연속 패배를 당한 사건은 뼈아픈 치명타가 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유승민이 거대 정당의 당권을 장악해 이를 발판으로 대선에 다시금 도전하여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은 이제 객관적으로 거의 소멸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유승민의 몰락에는 외부적으로 세 가지 불화가 결정타였다. 첫째는 박근혜와의 불화였다. 이 불화는 그를 배신자 프레임에 가뒀다. 둘째는 안철수와의 불화였다. 안철수와의 불화로 말미암아 바른미래당이 급격히 붕괴된 탓에 유승민표 제3정당 실험은 허망하게 마침표를 찍었다. 셋째는 윤석열과의 불화였다. 윤석열과의 불화는 윤석열 정부 출범이 초읽기에 돌입한 상황에서 유승민을 국민의힘 안에서의 사실상의 왕따 신세로 내몰고 말았다.

유승민의 몰락에는 내부적으로 세 가지 꾸물거림이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첫째는 정치적 터전을 낙동강에서 한강으로 옮기는 과정에서의 꾸물댐이었다. 이 꾸물거림이 유승민을 확고한 지역기반이 결여된 부평초로 만들었다. 둘째는 당의 대선후보로 확정된 윤석열을 돕기로 하는 과정에서의 꾸물댐이었다. 윤석열을 흔쾌히 돕지 않은 일은 유승민에게 속 좁은 인물이란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웠다. 셋째는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결심하는 과정에서의 꾸물댐이었다. 유승민의 결단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그를 눈엣가시로 경원해온 윤핵관들은 유승민의 대항마로 김은혜를 출격시킬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유승민을 몰락으로 이끈 세 가지 불화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유승민이 설령 화해를 원한다고 한들, 박근혜와 안철수와 윤석열 전부 유승민과의 관계복원 노력을 진지하게 시도할 의지도, 필요성도 별달리 느끼지를 않고 있다.

유승민을 몰락시킨 특유의 고질적인 미적대는 성격은 앞으로도 바뀌거나 나아지지 않을 전망이다. 유승민은 자신을 본질적으로 대중정치인이 아니라 지식인으로 여겨왔고, 지식인은 뭐 하나 쾌도난마로 신속하게 처결하지 않는 까닭에 지식인이다. 어떤 주저함과 망설임도 없이 즉각적으로 행동을 개시하는 인간을 우리는 흔히 ‘건달’이라 부르고, 유승민은 스스로를 수많은 여의도 정치건달들과 차별화하는 데에서 자기의 존재이유를 구해온 정치인이다.

유승민이 마지막에 웃으려면

이쯤에서 우리가 뚜렷이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유승민은 순발력과 쇼맨십과 스킨십이 긴절하고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통상적 차원의 대중정치와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념과 노선에 관계없이 유승민과 비슷한 유형의 인물을 굳이 검색하면 지금은 고인이 된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 정도가 포착된다. 근태형 김근태 역시 유승민처럼 무미건조하게 정치를 했고, 그로 인해 대중정치인으로선 재야 시기의 명성에 필적할 권력과 인기를 결국 누리지 못했다.

그렇다. 유승민은 얄팍한 쇼통이 횡행하고, 연출된 퍼포먼스가 난무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쉴 새 없이 교묘하고 현란하게 활용해 끊임없이 극렬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부추겨야 성공하는 21세기 방식의 대중영합주의, 즉 파퓰리즘 정치로는 더는 승부를 걸기가 어렵게 되었다.

심상정 후보는 지난 대선 당시에도 정의당과 정치철학이 거의 대립 관계에 있는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후보를 응원하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었다. ‘굳세어라! 유승민’이라는 홍보 문구는 심상정 후보의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심상정 후보는 지난 대선 당시에도 정의당과 정치철학이 거의 대립 관계에 있는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후보를 응원하기도 했었다. ‘굳세어라! 유승민’이라는 홍보 문구는 심상정 후보의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허나 개인으로서의 유승민은 처절히 실패했으되 그가 남긴 세 가지 유산과 흔적은 한국정치가 향후에 전개될 방향에 중차대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미칠 것이 확실시된다.

첫 번째는 개혁보수 정치의 필연적 대두와 강세이다. 유승민이 제창하고 추구한 개혁보수의 기치와 가치가 없었다면 국민의힘은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한 채 황교안 당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체제의 암울하고 몽매하기 짝이 없는 미래통합당의 수준과 수렁에서 계속 벗어나지 못했으리라. 따라서 30대 당대표 이준석의 출현도, 문재인 정권의 검찰총장 윤석열이 야당에 합류하는 놀라운 역사의 간지도, 최종적으로는 5년 만의 또 한 번의 평화적 정권교체도 없었을 게다.

두 번째는 청년 정치의 나날이 제고될 역할과 위상이다. 필자는 우석훈 성결대 교수, 박용진 의원, 김세연 전 의원의 3인 대담집 「리셋 대한민국」 출판 작업에 대담의 정리자 자격으로 참여하며 유승민이 바른정당 시절 심혈을 기울여 주도적으로 기획·설립·운영한 청년정치학교가 청년세대를 돌격대 내지 장식품쯤으로 하찮게 취급한 기성 정당과는 확연히 궤를 달리하는 명실상부한 청년정치인 양성기관이었다는 사실을 김세연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바른정당에 개설된 청년정치학교에서 일종의 연습생 생활을 했던 다수의 젊은이들이 국민의힘을 2030 미래세대의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기적적으로 환골탈태시켰다.

세 번째는 유의동, 김세연, 이준석 등의 유승민의 동지 겸 계승자가 한국정치의 오랜 여망이자 과제인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약진했다는 것이다. 특히 유의동과 김세연은 유승민을 사사건건 괴롭혀온 외적 불화의 굴레와 내적 꾸물댐의 한계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김영삼도, 김대중도, 노무현도, 박근혜와 이명박과 문재인도 제대로 된 유망주를 길러내지 못했음을 감안하면 잠재적 우량주를 여럿 배출한 유승민의 업적과 성과는 섣불리 폄하되어선 안 된다.

그러므로 필자는 유승민이 제도정치권에서 무엇이 될지를 더 이상 고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가 개혁보수를 남한 보수진영의 주류세력으로 안착시키고, 차세대 지도자들을 꾸준히 배출하는 치밀하고 체계적인 정치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및 확충하며, 그의 후학과 후진들이 유승민 본인은 실현하지 못한 큰 꿈을 이룰 수 있도록 2선에서 물심양면의 지원과 조력을 아끼지 말기 바란다. 그게 유승민이 성경에서 힘주어 강조하는 시작은 미약하되 끝은 창대한 한 알의 밀알로 오랫동안 기록될 유일하고도 효과적인 길일 터이다.

* 글쓴이는 정치웹진 '서프라이즈' 초대편집장,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이준석이 나갑니다> 공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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