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쳐서는 안 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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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쳐서는 안 될 길"
  • 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 승인 2022.05.0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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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도유소불유(途有所不由)
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뉴스프리존] ‘손자병법’ ‘구지편’에 보면 “길이라도 거치지 말아야 할 길이 있다”는 대목이 있다. 또 ‘십일가주손자‧券中’ ‘구변편 九變篇’에는 “길이 가깝기는 하나 험하다면 기습이나 복병과 같은 돌발 상황이 있을지 모르니 통과하지 않는다”고 풀이했다. 이 책략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당연히 거쳐 가야 할 길을 거치지 않고, 돌아가거나 난관이 많은 길을 선택하여 적의 예상을 빗나가게 하는 것이다.

기원전 154년, 한의 장수 주아부는 군대를 이끌고 장안을 출발하여 동쪽의 오‧초 반란군 공격에 나섰다. 패상(覇上.-장안 동쪽)에 이르렀을 때, 주아부는 조섭(趙涉)의 건의에 따라 오‧초가 효산(肴山.-지금의 하남성 낙녕 서북)과 민지(澠池.-지금의 하남성 민지) 사이에 배치해 놓은 간첩과 복병을 피하기, 위해 원래 효산과 민지를 지나 곧장 낙양으로 쳐들어간다는 단거리 작전 노선을 바꾸어 이틀가량 더 걸리는 먼, 길을 돌아가기로 했다. 그 결과 순조롭게 낙양에 당도하는 한편 형양을 점령하여 오‧초 7국의 난을 평정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창출해냈다.

47년, 동한의 광무제 유수는 마원(馬援)‧마무(馬武)‧경서(耿舒) 등으로 하여 4만 군사를 이끌고 오계(五溪.-지금의 호남성과 귀주의 경계 지점)를 공격하게 했다. 임향(臨鄕.-무릉현 고성산)에서 오계의 군사와 마주쳤다. 양군은 서둘러 교전에 들어갔고 그 결과 오계의 군은 대패하여 도주했다.

마원은 승기를 몰아 오계의 소굴을 뿌리 뽑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오계의 본거지로 가는 데는 두 길이 있었다. 하나는 호두산(壺頭山)을 지나는 길로 가깝긴 하지만 어려운 길이었다. 또 하나는 충현(充縣)을 지나는 길로 평탄하여 행군하기 쉬었지만 다소 멀었다. 부장 경서는 멀기는 하지만 평탄한 충현 길로 가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원은 시간이 걸리고 식량이 너무 많이 든다고 판단, 호두산을 통과하는 길로 전진하겠다고 광무제에게 보고했다. 그는 부대를 이끌고 호두산에서 적진 깊숙이 전진했다. 

한군이 호두산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적의 매복권에 빠지고 말았다. 오계의 군은 높고 험준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가 갑자기 북을 울리고 고함을 지르며 공격을 가했다. 한군 측은 당해낼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꼴이 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적당한 곳을 찾아 진을 치고 주둔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때는 푹푹 찌는 더운 여름이어서, 이 지방의 기후와 물에 익숙하지 않은 병사들이 적지 않게 죽어갔다. 이에 마원은 부대를 둘로 나누어 한 부대는 진영을 지키게 하고 또 한 부대는 절벽에 동굴을 파서 부대원들로 하여 더위를 피하게 한 다음, 적의 포위를 뚫고 나가 자신들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평원에서 오계군을 물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양쪽 군대는 그 후로도 몇 달 동안을 더 대치했고, 이 사이에 오계는 한군을 여러 차례 습격하여 탈진시켰다. 그리고 마원도 병에 걸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마원은 전쟁터에서 숱하게 공을 세운 명장이었지만 단 한 번 노선을 잘못 택하는 바람에 전력 면에서 우세한 군대를 적의 수중에 내던지고 말았으며, 게다가 싸워 이기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죽고 말았다.

‘도유소불유’는 임기응변의 술책에 속한다. 상황에 따라 변화가 생기면 지휘관은 제 때에 과감하게 행동 방향과 노선을 바꾸어 전쟁터에서 생기는 ‘갈라진 틈’ 사이에서 무사히 생존하고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갈라진 틈’은 접합부, 방어가 약한 지대, 방어벽이 없는 지대에 많이 생기고, 또 일반적으로 돌파 행동에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지형 또는 상대방의 예비 부대와 일선 부대 사이의 아직 메우지 못한 간격 지대 등에서 생겨날 수 있다. 그러나 변화하는 전쟁터에서 이런 ‘갈라진 틈’은 언제든지 상대방이 메울 수 있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이라는 중대한 의미에서 적의 의표를 찔러야만 비로소 슬그머니 왔다가 이내 사라지는 전쟁터의 ‘갈라진 틈’을 승리의 ‘통로’로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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