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누구나 인생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하나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 시간이 흐르며 변화하는 것 뿐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주변의 기대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단하며 ‘쇼맨’으로 살아간다. 수많은 사건 사고 속에서도 자신의 본질을 자각하며,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며 하루하루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국립정동극장 전경 /(=©Aejin Kwoun)
국립정동극장 전경 /(=©Aejin Kwoun)

2022년 창작 신작 뮤지컬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가 지난 4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내 삶에서 지워진 나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그리며 ,관객들과 함께 가짜 독재자와 가짜 사진작가 두 사람의 진짜 인생찾기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틀림없이, 틀림없이, 오늘보다 행복할 내일을 위해" /(제공=국립정동극장)
"틀림없이, 틀림없이, 오늘보다 행복할 내일을 위해"_이선영 작곡가는 "코러스가 수아와 네불라의 내면이나 의식까지 담당한다. 보호나 변명이 아닌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코러스가 대신하는 넘버가 지배적이다"라고 이야기할 만큼 이번 작품의 씬투송(scene to song) 타입의 코러스 넘버들은 모두가 참 매력적이다. /(제공=국립정동극장)

이번 작품은 냉소적인 속물 청년이 우연히 과거 어느 독재자의 대역배우였다는 괴짜 노인의 화보 촬영을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우리 마음속에 어렴풋하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한다. 이데올로기 안에서 주체성을 상실한 개인의 삶과 회복을 그린 블랙코미디 작품이다. 작년 제15회 차범석희곡상을 수상하며 대중과 평단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정석 작가와 제7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 음악상을 받으며 아름다운 선율로 장기흥행 뮤지컬의 역사를 만들고 있는 이선영 작곡가, 그리고 제6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연출상을 수상하며 감성을 자극하는 섬세한 박소영 연출가가 2018년 ‘레드북’ 이후 오랜만에 내놓은 신작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삶의 메시지로 잔잔한 감동을 더하고 있다.

/(제공=국립정동극장)
독재자 미토스를 대신한 죄로 수감생활을 겪으며, 그가 저지른 만행들을 직면하게 된 네불라는 후회와 죄책감으로 여생을 보낸다. 대역(代役)배우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세계를 파멸로 이끈 대역(大逆) 죄인, 네불라는 타자의 주체화가 불러온 낙인의 값을 톡톡히 치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부모를 대신하여 장애 동생을 돌보는 착한 딸이자 모범생 역할에 충실해 온 수아는 18살 생일, 잠깐의 일탈로 가혹했던 질타를 감내해 낸다. /(제공=국립정동극장)

가상의 독재국가 파라디수스 공화국을 배경으로 대통령 미토스의 대역배우 중 한 명으로 선발된 무명배우 ‘네불라(nebula, 라틴어로 ’아지랑이‘)’와 발달장애 자녀가 있는 백인 부부에게 입양되어 미국으로 건너온 한국계 출신 ‘수아’는 연령·성별·국적 등 무엇 하나 비슷할 것 없는 인물로 ‘진짜’ 자신의 모습을 남기겠다는 의지로 만나게 된 우연을 계기로 서로가 서로를 거울삼아 개인의 역사 속 비극과 참회로 삶을 되돌아본다.

뮤지컬 ‘쇼맨’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지만, 주체적이지 못했던 순간의 선택으로 평생을 심판받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개인은 사회 안에서 얼마나 주체적일 수 있는가’를 묻는다. 한정석 작가가 “‘내가 이 사회 안에서 주체성을 가진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고 있는가?’, ‘부정과 부조리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양심적인가‘하는 고민에서 시작된 이번 작품에서 주체적이지 않다는 자각이야말로 주체성 회복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했다”라며 4~5년 전에 시작된 이번 이야기는 무대 위에서 상처와 결핍으로부터 치유되지 않은 채 체념한 듯 끝까지 체념하지 않는 대토로 거리두기와 소통의 단절이 가져온 외로운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녹여냈다.

대역과 대리의 삶았던 과거를 떨치지 못해 스스로에게 침잠하며 한없이 꺼져가는 두 사람이 마치 긴 시간과 먼 공간을 넘어온 안부처럼 서로에게 조심스레 자신의 속내를 꺼내 보이는 순간, 관객들은 자신의 치부를 꺼내 보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를 떠올릴는지 모른다. 내전과 독재, 민주화 혁명에 이르기까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신념보다 체제에 지배되는 삶을 살아간 네불라를 통해 지금의 노년 세대들의 삶을 비출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누군가를 위해 애써온 그들이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발버둥이 사랑으로 보답받길 함께 기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공감과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이번 작품이 계속해서 발전되는 모습으로 다시 만날 때,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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