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이동근 기자="요새 길에서 사람들 보면 정말 커요. 얼핏 보면 서양사람 같아요. 좋은 음식 잘 먹고 건강해서 그래요. 불과 30년 사이에 많이 변했습니다. 나름 아워홈이 공헌했다고 생각하고 뿌듯합니다"(아워홈 구자학 회장이 와병에 들기 전 남긴 말)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12일 오전 5시 20분께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유족 측이 밝혔다. 향년 92세다. 구 회장은 1960년대부터 식품, 화학, 전자, 건설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에서 경영인으로 활약한 '산업화 1세대'로 꼽힌다. LG 계열사의 음식서비스 사업부를 독립시켜 매출 1조 7000억 원의 종합식품기업으로 성장시킨 성과로 족적을 남겼다.

구 회장은 1930년 7월 15일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姑(고)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진주고등학교를 마치고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해 1959년 소령으로 전역했다. 군복무 시절 6.25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호국영웅기장 등 다수의 훈장을 수여 받았다. 이어 미국으로 유학해 디파이언스 대학교 상경학과를 졸업했으며, 충북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를 취득했다.

이후 1960년 한일은행을 시작으로 호텔신라, 제일제당, 중앙개발, 럭키[現(현) LG화학], 금성사(現 LG전자), 금성일렉트론(現 SK하이닉스), LG건설(現 GS건설) 등에서 활동했다.

1986년 금성사 대표이사 재직 시절, 마이크로웨이브 오븐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구자학 회장. (사진=아워홈)
1986년 금성사 대표이사 재직 시절, 마이크로웨이브 오븐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구자학 회장. (사진=아워홈)

1980년대 럭키 대표이사 재직 시절, 당시 세계 석유화학시장 수출 강국인 일본과 대만을 따라잡기 위해 기술개발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당시 "우리는 지금 가진 게 없다. 자본도 물건을 팔 수 있는 시장도 없다. 오직 창의력과 기술, 지금 우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이 하지 않는 것, 남이 못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며 기술력을 중요시했던 구 회장이 이끌었던 럭키는 1981년 '국민치약'으로 불리웠던 페리오 치약을 개발했으며, 1983년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 PBT(Poly butylene terephthalate)를 만들었고, 1985년에는 화장품 '드봉'을 해외에 수출했다. 1989년 금성일렉트론에서는 세계 최초로 램버스 D램 반도체를 개발했으며, 1995년 LG엔지니어링에서는 국내 업계 최초로 일본 플랜트 사업을 수주했다.

2000년에는 LG유통(現 GS리테일) FS사업부(푸드서비스 사업부)로부터 분리 독립한 아워홈의 회장으로 취임해 20여년간 진두지휘했다. 그동안 아워홈 매출은 2125억 원(2000년)에서 2021년 1조 7408억으로 8배 이상 성장했다. 사업 포트폴리오도 다양해졌다. 단체급식사업과 식재유통사업으로 시작한 아워홈은 현재 식품사업, 외식사업과 함께 기내식 사업, 호텔운영업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종합식품기업이 됐다.

LG에서 화학, 전자, 반도체, 건설,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핵심사업의 기반을 다진 경영자가 LG유통에서 가장 작은 아워홈 사업부를 분사 독립할 때 주변에서 의아해 하던 일화는 유명하다. 역량에 비해 너무 작은 규모의 사업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런 사업부를 몸 담았던 거대 조직의 어떤 도움도 없이 지금의 종합식품기업으로 성장시킨 것은 충분히 대단한 평가를 받을만하다.

이같은 성과 뒤에는 구 회장의 음식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특히 먹는 만큼이나 만드는 과정을 좋아했다고 아워홈 측은 설명하고 있다. 미국 유학 중 현지 한인마트에 직접 김치를 담가주고 용돈벌이를 했으며, LG건설 회장 재직 당시 LG유통 FS사업부에서 제공하는 단체급식에 개선할 점이 많다고 느끼기도 했다고.

2009년 매출 1조 달성 비전선포식에서의 구자학 회장. 2021년 아워홈 매출은 1조 7408억 원에 달했다. (사진=아워홈)
2009년 매출 1조 달성 비전선포식에서의 구자학 회장. 2021년 아워홈 매출은 1조 7408억 원에 달했다. (사진=아워홈)

구 회장은 2000년 아워홈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맛과 서비스, 제조, 물류 등 모든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그는 단체급식사업도 화학, 전자와 같이 자신이 몸 담았던 첨단산업분야에 못지 않은 R&D(연구개발)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판단, 단체급식업계 최초로 2000년 식품연구원을 설립했다. 사측에 따르면 당시 임원들은 "단체급식 회사가 대량 생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연구원까지는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구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워홈 식품연구원은 설립 이래 지금까지 1만 5천여 건에 달하는 레시피를 개발하였으며, 현재 연구원 100여 명이 매년 약 300가지의 신규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노로바이러스 조사기관, 축산물위생검사기관, 농산물안전성검사기관 등 공인시험기관으로서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생산·물류 인프라 구축에도 적극 나섰다. 2000년대 초 구 회장은 미래 식음 서비스 산업에서 생산과 물류시스템이 핵심 역량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70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생산∙물류센터 부지를 찾아 전국을 돌았고, 이는 업계 최다 생산시설(9개)과 물류센터(14개) 운영으로 이어졌다. 콜드체인 시스템이 물류 핵심 요소로 대두되기 전에 신선물류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2016년에는 동종 업계 최초로 자동화 식자재 분류 기능을 갖춘 동서울물류센터를 오픈했다.

해외진출도 빨랐다. 아워홈은 2010년 중국 단체급식사업을 시작했다. 2014년에는 청도에 식품공장을 설립했다. 다양한 중국 식재료를 원활히 수급, 직접 생산해 단체급식 질을 올리기 위해서다. 이어 2017년 베트남 하이퐁 법인 설립을 통해 베트남 시장에 진출했다.

2018년에는 M&A를 통해 기내식 업체 HACOR를 인수하며 기내식 사업에도 진출했다. HACOR는 현재 LA국제공항에 취항하는 항공사들에 기내식을 납품하고 있으며 북미 시장 단체급식, 식품사업 확대를 위한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2021년에는 국내 업계 최초로 미국 공공기관 식음서비스 운영권을 수주했다. 미국우정청(USPS: United States Postal Service)과 구내식당 위탁 운영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어 폴란드에 법인을 설립하고 유럽 시장에 진출했으며, 올해 신규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고삐를 당기고 있다.

2018년,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구자학 회장. (사진=아워홈)
2018년,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구자학 회장. (사진=아워홈)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그의 마지막 길은 어땠을지 모른다. 다만, 아워홈 측에 따르면 구 회장은 와병에 들기 전 "은퇴하면 경기도 양평에 작은 식당 하나 차리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커져 버렸다. 그동안 같이 고생한 우리 직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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