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에 행복을 달면 어떻게 될까요?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저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행 49%, 행복 51%면 저울이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되지요. 행복의 조건엔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삶에서 단 1%만 더 가지면 행복한 겁니다. 여느 상품 명처럼 2%가 부족하면 그건 엄청난 기울기입니다. 가끔 저도 모르게 1%가 빠져나가 불행하다 느낄 때가 있습니다. 더 많은 수치가 기울기 전에 약간의 좋은 것으로 얼른 채워 넣어 다시 행복의 무게를 무겁게 해 놓곤 합니다.

약간의 좋은 것 1%, 우리 삶에서 아무것도 아닌 아주 소소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팽팽한 무게 싸움에서는 아주 미미한 무게라도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입니다. 단 1%가 우리를 행복하게 또 불행하게 합니다.

저는 오늘 그 1%를 행복의 저울 쪽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래서 행복하냐는 질문에 웃으며 대답하겠습니다. ‘행복하다고요!’

그 1%를 얻기 위해 큰 소동이 빚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경기도 가평 작은 한 마을에 담이란 담에 낙서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낙서의 내용도 한결같이 ‘최미영’이라는 이름을 담 벼락 마다 도배하듯이 낙서를 했습니다. 한두 번은 그냥 장난으로 넘어갔지만 온 마을의 담 벼락에 낙서를 해 대는 통에 마을 주민들은 마침내 성이 나고 말았습니다.

주민들은 급기야 경찰서에 신고하게 되고, 경찰은 몇날 며칠을 잠복 수사 끝에 마침내 범인을 잡았습니다. 그 범인은 다름 아닌 그 동네에 사는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그 소년은 결코 장난으로 낙서를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경찰이 소년에게 낙서를 한 이유를 계속 추궁하자, 소년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병드신 엄마의 이름을 벽에 적어 놓으면, 친구들이 엄마 이름을 부르게 되어 엄마가 그 소리를 듣고 힘을 내서 병이 나을 것 같아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소년의 말을 들은 경찰은 잠시 말을 하지 못하고 천정만 쳐다보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찰 생활 중 이렇게 기분 좋은 범인은 처음이다.”라며 감동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동네를 대표해서 경찰에 신고한 이장님은 그 꼬마의 효심에 온 동네 벽이란 벽에, 낙서를 해도 좋다고 허락을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소년에겐 아마 1%의 행복을 얻기 위해 간절한 소망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요! 누군 가를 지극히 사랑하면 초월적인 힘이 솟는 모양입니다. 사랑은 그 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않는,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용기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또 하나 있습니다. 다섯 살 된 어린아이를 둔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쓰지 않던 창고 같은 방을 사용하기 위해 장판을 깔고 도배를 깨끗이 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린 아들은 방에 부모가 잠깐 없는 사이 새로 한 벽에 낙서를 하고 말았습니다.

이를 발견한 부부는 순간 화가 치솟았습니다. 아이 이름을 부르며 야단을 치려다 말고 그만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지요. 그것은 아이가 처음 글자를 배운 터라, 아주 울퉁불퉁하게 쓴 글이 거기에 길게 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그 부부는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 방을 절대로 새로 다시 도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방에선 늘 아이의 사랑이 배어 나오는 것 같아서 흐뭇하고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었지요. 이 역시 1%의 행복을 저울에 올려놓은 것이 아닐까요?

가정이란 부부를 중심으로 그 부모 나 자녀를 포함한 집단과 그들이 살아가는 물리적 공간인 집을 포함한 생활 공동체를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물고기는 물속에 살면서 물의 고마움을 모르고, 사람은 가족과 같이 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정은 최고의 안식처입니다. 사랑과 이해로 서로를 감싸주기 때문이지요. 대가 없는 희생과 베풂이 가득한 곳, 1%의 행복을 무상으로 저울에 올려 놓을 수 있는 곳이 가정인 것입니다.

그 가정엔 가족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엔 큰 가정, 작은 가정이 있습니다. 큰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 한 몸을 뛰어넘어 큰 나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큰 가정이 어디일까요? 덕화만발이라는 가정입니다.

우리 덕화만발 가정엔 가족이 많습니다. 그 가족 중엔 가정을 등지는 사람들도 있고, 집을 나가 방황 하다가 다시 돌아오는 가족도 있습니다. 때로는 아옹다옹하다가 다투는 가족도 있기 마련입니다. 가족끼리 다툰다는 것은 언제든지 다시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족은 위태로울수록 더 잘 뭉치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더 큰 사랑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 덕화만발 가족은 큰 것을 바라면 안 됩니다. 그저 단 1%의 행복을 저울에 달아 행복 쪽으로 기울게 하면 좋지 않을 런지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5월 1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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