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일 칼럼] ‘내부총질’과 ‘소신발언’의 한 끝 차이, 다수의 힘에 묻혀 다양성 사라진다

‘내부총질’과 ‘소신발언’의 한 끝 차이

지난 20일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내부총질”이라는 용어가 당의 다양성과 잠재력을 억압한다며 ‘내부총질’이라는 용어의 폐기를 주장했다. 그는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민주당을 “재생산이 안 되는 당”, “미래가 없는 당”으로 만들 수 있다며, 다양성이 민주당의 미래라며 ‘소신발언’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최근 박지현 비대위원장에 대한 강성 지지자들의 비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박 위원장은 지난 3월 취임 후부터 그동안 민주당이 일련의 사태들에 대해 사과하고 성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왔다. 박 위원장은 검찰수사건 조정 신중론, 민형배 무소속 의원의 ‘꼼수 탈당’ 비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입시비리 사과 요구, 박완주 의원 성비위 의혹 비판, 최강욱 의원 성희롱 발언 비판 등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줄곧 내부 자성론을 이야기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강성 지지자들과 소위 개혁세력이라고 지칭하는 ‘개딸(개혁의 딸)’들은 오히려 박 위원장에 대해 ‘내부 총질’이라며 부문별한 해당행위에 대해 사과와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이탄희 의원의 ‘소신발언’은 이내 비판과 공격의 대상이 됐다. 페이스북에는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으며, 대부분 이탄희 의원에 대한 비판이었다. 대개 강성 지지층이며 내부 총질을 다양성으로 포장하지 말라는 댓글도 보인다. 보통 정치인이 ‘망언’을 하면 몰려들어 비판을 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데 ‘소신발언’을 해도 공격을 받는 상황은 어딘가 이상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지난 해 4·7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하자 당시 오영환·이소영·전용기·장경태·장철민 의원은 패배 원인으로 검찰개혁, 내로남불 등을 꼽으며 "국민께서 사과를 요구하면 사과할 용의도 있다"며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더불어민주당 2030의원 입장문’을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들은 민심을 읽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었다. 하지만 강성 당원들을 중심으로 이들을 ‘초선오적’으로 규정하고 문자폭탄을 보내며 비난했다. ‘초선오적’은 조선을 팔아먹은 ‘을사오적(乙巳五賊, 박제순·이지용·이근택·이완용·권중현)’을 빗댄 용어다. 그야말로 ‘친일파’, ‘빨갱이’와 더불어 무시무시한 멸칭(蔑稱)이다. 2030 초선 의원들은 졸지에 민주당을 팔아먹은 ‘오적(五賊)’이 돼버렸다. 물론 이들은 비난도 예상했다. 입장문에서 이들은 "비난과 논란을 예상했음에도 반성문을 발표한 이유는 당내에 다양한 성찰과 비전 제시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그것이 더 건강한 민주당을 만들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당이 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나름대로 당을 걱정한 정치행위였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강성 지지자들의 비난은 거칠었고, 초선 5인은 기존 입장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초선오적’ 이전 20대 국회 민주당에는 대표적으로 ‘미운 털 박힌’ 의원이 몇 명 있었다. 조응천, 김해영, 박용진 등 당시 모두 초선 의원이었다. 나름 당내에서 소신파라고 불리기도 했던 의원들이다. 사실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이들을 ‘소장파(소신파)’라고, 나쁘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국민의힘 ‘프락치’수준이라며 비난했다. 지난 해 1월 조응천 의원은 “강성 지지층에 영합하면 민주당이 나락에 빠진다”고 말했다. ‘미스터 쓴소리’ 별명을 갖고 있는 김해영 전 의원은 “조국 왜 그렇게 지키려 했는지 이해 못하겠다”고 말했다. 박용진 의원은 “민주당이 태도 안바꾸면 지방선거 패배”한다고 말했다. 모두 문자폭탄 수천 통을 예약하는 발언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당내에서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소신파로 분류된다. 강성 지지자들은 이들을 향해 민주당 옷을 벗으라며 비토하기도 한다. 

소신(所信)과 소심(小心) 사이

소명(疏明)이 있는 정치인은 소신(所信)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민주주의 정당이라면 소신은 보호되고 더 나아가 당내 발전의 거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 민주당을 바라보면 반대로 가는 것 같아 사실 걱정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당내에 토론이 보이지 않는다. 토론에 익숙하지도 않다. 모두 차라리 함구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어느새 정치인들이 비판이 두려워 자기 소신을 밝히지 못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소신(所信)이 소심(小心)이 돼버렸다. 초선의원은 물론 중량급의 다선 의원들도 움츠러들기는 매한가지다. ‘소신발언’은 ‘내부총질’과 같은 의미로 통용되는 형국이다. 

정봉주 전 의원은 "도대체 민주당 의원들은 당원들을 선거 때는 대거 모아놓고는 당원들이 평상시에 의사내는 거에 두려워하나?"라고 일갈했다. 사진=연합뉴스
거대 양당구조하에서는 소속 의원들이 소신이나 당론에 어긋나는 발언을 하기가 힘들다. 사진=연합뉴스

혹자은 “민주당의 주인은 당원들”이라며 문자폭탄은 당연한 것이라며, 이것도 정치참여의 한 행태이며 직접민주주의 또는 참여민주주의라고 주장한다. 그럴 듯한데 어딘가 어색하고 궁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당원이 있어야 당(堂)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정당이라면 당내에 토론이 있어야 하고, 토론은 발전되어 정책으로 또 당론으로 나아가야 한다. 토론은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정당은 다양성을 보장한다. 또 정당이라면 토론을 보장해야 한다. 토론은 소신발언들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신발언은 ‘문자폭탄’과 ‘좌표찍기’를 이겨내기 힘든 게 요즘이다. 민주당이 정말 건강한 토론이 가능해지기를, 다양한 목소리가 성장 동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자, 지금까지 민주당을 비판했으니 옆집 국민의힘 정당을 보자. 피차일반이다. 소신발언보다는 망언들이 더 자주 들리기도 한다. “5.18은 빨갱이 소행”이라던가 “제주도는 전라남남도”라던가 하는 역사의식이 부재한 망언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물론 국민의힘에도 소신 있는 정치인들이 많다. 100명이 넘는 정당에 없는 것이 더 이상할 테니 말이다. 반면 정의당은 소신발언이 훨씬 자유로운 것 같다. 때론 소신발언들 뿐이어서 배가 산으로 간다고 고백하는 당원들도 있다. 당론이 모아지지가 않는다는 하소연이 들리기도 한다. 이렇게 보니 토론이 아예 없는 것도 문제고, 토론만 가득한 것도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정치인 개인의 문제인가, 정당제도가 문제인가

대한민국 정당들의 언제부터 이렇게 소신발언이 귀한 정당으로 변한 것일까 궁금해진다. 조금 더 과거의 사례를 보자. 이런 일이 있었다. 2003년 ‘독수리 오형제’라 불리던 한나라당 이부영·이우재·김부겸·김영춘·안영근 의원 5명이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탈당했다. 이들은 당내에서 소신 개혁파들이었다. 이들은 “한국 정치의 전면적인 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지역주의 타파와 국민통합, 정책정당 건설에 온몸을 던지겠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정치개혁에 대한 소신이 당내에서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에 광야로 나간다는 심정으로 탈당한 것이었다. 20년 전 독수리 오형제가 외쳤던 정치개혁의 명분은 지금에도 ‘소신발언’이라고 해도 무색할 만큼 오늘에도 여전히 외쳐야 하는 목소리다. 그만큼 20년이 지나도록 정치개혁이 안 됐다는 방증인 셈이다. 당시 이들이 소신을 밝히며 탈당을 했을 때에는 지금처럼 좌표 찍혀서 비판받지는 않았다. 물론 모바일이 없던 그때와 지금은 정치참여에 대한 인식과 방식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신을 붙잡고 탈당을 감행했던 당시 초선 정치인들의 배짱에 비하면 요즘 정치인들은 감히 엄두를 못 낼 용기임에 분명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요즘은 소신을 밝히느니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안전하다 느끼기 때문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나는 결국 제도정치에서 문제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정당민주주의의 한계다. 승자독식 선거제도에 따라 거대양당이 번갈아 독점하는 정당체제 하에서는 ‘당론’을 빙자한 집단주의적 사고가 정치인 개개인에게 강력한 압박을 줄 수밖에 없다. 정치인 개인의 소신보다는 모두가 한 마음으로 힘을 합쳐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것이 우선시 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상황은 똑 같다. 어차피 “쟤 아니면 우리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소신보다는 집단행동이 우선시 되는 덕목이 된다. 점점 당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단 비판보다는 이기고 나서 성찰하자는 심보다. 물론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사고방식이 거대양당의 디폴트(default)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제도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당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건강하게 자랄 수 없을 것이다. 과거 같으면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탈당해서 새롭게 창당하면 됐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 제3의 목소리는 결국 거대양당에 흡수될 수밖에 없는 제도적 한계를 우리는 지난 3·9대선에서도 목격했다. 

조경일 작가. 『아오지까지』저자

국회의원 100명이 넘는 정당, 때론 180명이 한 정당에 있는데도 다양한 목소리가 부재하다면 그것은 메마른 우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연히 생각이 다를 수 도 있다. 그런데 한 정당에 묶여 있으니 답답함을 느끼는 정치인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자기한테 맞는 옷을 입지 않은 정치인들도 한 둘이 아니다. 타협을 보는 대신 입을 닫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당선되려면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하니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이것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다시 정치개혁의 본질을 생각한다. “바보야! 문제는 제도야!”라고 외칠 수밖에 없다. 물론 제도가 만능은 아니다. 완벽한 제도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87년 체제 이후 30년이 넘었으면 바꿔볼 때도 되지 않았겠나. 소신정치를 위해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사고가 필요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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