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여로, 死學(2)

인생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여로(旅路)입니다. 세상에 죽지 않을 장사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생사는 거래(去來)이고 여수(與受)입니다. 즉, 인생이 죽음이 끝이 아니라 끊임없이 윤회 환생(輪迴還生)하며, 지은 대로 받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잘 죽어야 잘 와서 잘 살 수 있지요. 그래서 저 뿐이 아니라 나이 든 사람이나 젊은이라도 죽음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죽음에 관한 공부를 우리는 ‘사학(死學)’이라 합니다. 그 사학에 관한 공부를 10년 넘게 강의하고 있는 분이 ‘정현채’ 서울대 의대 내과 학 교수입니다. 그래서 전 회에 이어 그분이 밝힌 죽음 학에 관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다섯째, 세상을 떠난 가족, 친지와 만나고, 자신의 생을 회고합니다.

근사 체험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심장과 호흡이 멎은 죽음의 상태에서 체험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경험하고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죽음을 경험하는 동안 평화로운 마음으로 천장(天仗)에서 아래의 모든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섯째, 죽은 뒤 어떻게 되나요?

스웨덴의 ‘스베덴보리’, 그리스의 ‘다스 칼로스’, 덴마크의 ‘마르티누스’ 등, 신비 가들에 따르면, 인간은 육신이 죽은 후 소멸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파동의 에너지 체로 존재하게 된다고 합니다. 영혼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파동으로서 만 존재하는데, 비슷한 파동을 지닌 영혼들은 서로 모이게 됩니다.

즉, 영혼의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변화는 될지언정 생사는 아닙니다. 그런데 육신을 벗어나 비 물질 계로 옮겨 갔다고 해서 갑자기 깨달음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지상에서 성취한 영적인 발달 정도에 따라 각자의 영혼이 끌리게 되는 여러 수준의 차원이 있습니다. 영계(靈界)에는 비슷한 진동수를 가진 영혼들의 공동체가 수없이 존재하며, 이들과 계속 유대를 갖고 집단을 이뤄 존재하게 됩니다.

일곱째, 진동수와 같은 의미를 갖는 도덕적 특이 중력이 있습니다.

사후의 영(靈)이 처음 도달하는 장소는 이 중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이는 지상에서 사는 동안의 선함 정도나 결핍 등으로 형성되며, 에너지 장이나 기운으로 나타납니다. 영적인 발전 단계에 따라 어두운 색부터 휘황찬란한 광채까지 다양합니다.

도덕적 특이 중력에 따라 감당할 수 있는 빛의 양이 제각기 다르므로 위장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을 속이고 더 높은 궤도로 올라가면, 그 빛을 감당하지 못하지요. 하지만 낮은 도덕적 특이 중력을 지닌 사람들은 일단 낮은 수준으로 몰리지만, 발달한 영들의 도움으로 더 높은 수준으로 점차 진화해 갈 수 있습니다.

죽어서 육신을 벗어난 ‘신 참’ 영혼은 사후 1차 영역에 머물게 되는데, 고독 감· 무력감· 결핍 감· 고통· 환멸 같은 감정을 느껴 새로운 돌파구를 찾습니다. 이때 마음을 열고 간절히 기원하면, 수호 영혼의 도움을 받아 지상에서 사는 동안 오염되었던 삶을 정화하게 되고, 손상된 영혼을 치유하고 보고하는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해서 원래 맑고 순수했던 영혼을 회복하고 나면, 영혼이 주파수가 높아져 완전히 다른 상위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말기 암 진단을 받았거나 임종이 임박한 사람들이 깨닫고 불안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근사 체험이나 삶의 종말 체험을 알고 있으면, 죽음에 대해 막연히 품고 있던 불안과 공포가 크게 줄어드는 것이지요.

여덟째, 죽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많은 암 환자들이 암 진단을 받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의사가 하는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더라는 말을 합니다. 오히려 수많은 사망 원인 중에서 무엇이 나를 죽음으로 이끌지 예측할 수 없어 막연했었는데, 정작 암 진단을 받고서는 상황이 명확해지면서 죽음 준비에 구체적으로 집중할 수 있게 된 느낌이었습니다.

서울대 병원 9층에 있는 내 연구실에는 책이나 물건이 거의 없습니다. 훌훌 털고 떠나갈 수 있도록 계속 정리 작업 중이지요. 장기기증 서약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유언장은 이미 작성해 놓았습니다.

유언장은 두 딸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 말해주는 형식으로 작성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죽으면 분해돼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다른 차원으로 건너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일에는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포도주 한 잔 나누면서, 같이 살던 때를 추억 하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아홉째, 죽음의 실체는 소멸이 아니고 옮겨감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장례 준비가 부담스러울 필요가 없습니다. ‘지구 별에 잠시 소풍 왔다 가는 것’이니 주변을 깨끗이 한 후에 떠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음에 놀러 올 후손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은 먼저 왔다 가는 사람들의 신성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습니까? 이제 어느 정도 ‘영혼의 여로’ 사학에 대해 이해가 되는 가요? 아마 이 죽음 학의 영역은 끝도 없고, 한도 없을 것입니다. 하여간 우리 죽음에 관한 비밀을 조금이라도 풀어보는 것으로 만족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미 <사전 의료 거부 의정서>를 비롯한 모든 절차를 완료해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의 여로’ 끝에 다다라 종종 걸음을 치지 않기 위함이지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5월 2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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