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I미술관 김을 초대전 ...가식 부수는 드로잉 정신 형상화
우직한 벌거숭이 정신..."거짓 물든 회화 감옥에 가두고 싶다"

김을  작가.  옷에 새겨진 '그림이 필요없는 즐거운 세상'글귀가 이색적이다
김을 작가. 옷에 새겨진 '그림이 필요없는 즐거운 세상' 글귀가 이색적이다

[서울 =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전시장에 들어서면 작업실을 옮겨 놓은 듯한 공간이 눈길을 끈다. 미니어처 같은 작업실 안에는 망치들이 한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위층 전시장엔 철창안에 그림 한 점이 감금(?)된 상태다. 오는 6월4일까지 열리는 OCI미술관 김을 초대전 풍경이다. 그 곁으로 드로잉과 생각하는 손으로 만든 다양한 소품들이 아이들 장난감처럼 너저분하게 널려 있다. 얼핏보면 자신의 작업을 맨얼굴로 드러내며 처철한 메타비평을 하는 모습처럼 읽힌다. 전시제목 ‘김을파손죄’가 그렇다. 기획자는 ‘틀을 깨는 망치! 뻥을 잡는 감옥!’이라 표현했다.

“아무튼 내 일의 요체는 나의 몸(정신과 육신)이 만들어 내고 있는 어떤 세계를 구축하는데 있어 보인다. 그 세계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핵심요소는 나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 작품은 작업의 완성체가 아니라, 어떤 세계 구축을 위한 구성요소로서 역할을 하게된다”

이런 이유로 작자(作者)인 그는 개별 작품의 완결성도 중요하나, 그 자체에 집착하기 보다는 그것들로 이루어질 구조적인 미적 세계를 보는것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가 작품을 통해서 꿈꾸는 궁극적인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명확하진 않지만 나의 내·외면과 삶자체, 그리고 세포들의 꿈까지도 온전히 드러난 어떤 한 생(生)의 자화상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그의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글귀 ‘그림 이 새끼’가 심상치 않다. 그 뿐이 아니다. 그림을 집어던지는 사람, 날아가다 철퍼덕 처박혀 벽타고 흘러내리는 그림, 그림과 아웅다웅 핏발 선 눈겨룸, 잘 마무리하다 냅다 긋고 찢은 캔버스까지… 유독 그림에 모질고 야멸차다. 노골적인 푸대접에 대놓고 찬밥이다. 정말 화가인가 싶을 정도다.

“그냥 장난이다. 그리기 싫으면, 그려주는 장난감 만드는 거지. 하하-“

스스로 그림을 정말 못 그리는 화가라고 하면서도 그는 하루에 12시간씩 그림을 그린다.

기획자는 회화에, 미술에 염증을 느낀 이들을 치료할 초강력 항생제라고 평했다.

” 사는등 마는등 살고, 그리는등 마는등 그릴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

그가 미술 세계를 짓는 핵심 재료는 ‘정직’이다. 그럴듯한 거짓을 파하고, 자기만의 드로잉적 사고와 태도를 따른다.

”드로잉에서는 발가벗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잘그려야 한다는 관념은 백해무익하니 무조건 그냥 그려야 한다. 무조건 그리다보면 (많은 시간, 많은 양) 어느날 무언가가 찾아올 것이다“

그의 드로잉은 굳은 틀을 ‘깨는’ 것. 거짓에 물든 회화는 ‘감옥’에 가두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아이콘은 틀을 깨는 망치와, 뻥을 잡는 감옥이다. 드로잉은 ‘두드려 깨는 것’이란 메시지가 강하다. 그리는 것만이 드로잉이 아니라 묵은 생각을 틀을 깨는 것이 드로잉적 태도라는 것이다.

어쨌든 전시장은 수많은 조각과 오브제, 드로잉이 재미를 더한다. 특히 자화상이 도드라져 보인다. 바로 높은 좌대위에 놓인 커다란 새 한 마리다. 부리를 가졌지만 사람얼굴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커다란 눈물 한 방울이 당장에라도 떨어질 듯 하다. 새(乙) 한 마리는 곧 작가 김을(金乙) 작가다. 우직한 벌거숭이 작가의 숙명이다. 극적인 일화, 각별한 영감, 근사한 작업관 등 뻔한 기대에 작가는 ”에스프레소나 한 잔 마셔야겠다“고 한다. 거짓말 한 켤레, 신화 한 벌 없는 벌거숭이로 살겠다는 각오다. 작가는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했다.

27일 오후 7시에는 직장인을 위해 작가와 함께 하는 전시투어가 있다.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