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국어교육, 한국어교육 관련 학회/단체 연합 성명서

▲사진: 국어교육 관련단체가 집회를 하고있는 모습 ⓒ뉴스프리존

[뉴스프리존=김현태기자] "(국어 문법을) 수능 과목에서 제외하는 것은 곧 한글, 우리말을 가르치지 못한 일제 강점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일제 총독부 밑에서 조선어와 과목은 사라졌습니다. 그때를 우리는 떠올립니다."

'2021 대입 수능' 국어 과목 시험 범위에서 '문법'을 제외할 가능성이 있는 설문조사가 교육부에 의해 진행되고 있어 논란이다.

최근 교육부의 위탁을 받은 연구팀은 2021 대학 수능 국어 시험범위에서 ‘언어(=문법)’을 제외할지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연구팀이 제시한 선택 방안은 1안과 2안이다. 1안은 <화법과 작문>, <독서>, <문학>, <언어(=문법)와 매체> 4과목을 시험범위로 하는 것이고, 2안은 <화법과 작문>, <독서>, <문학>의 3과목을 시험범위로 한다. 그런데, 2안인 '3과목안'을 선택했을 때 국어 시험에서 빠지는 과목은 다름아닌 <언어(=문법)와 매체>이다.

무슨 선택지를 이렇게 황당하게 작성했는지 어이가 없다. 만일 '언어와 매체'가 배제된 '2안'이 선택된다면 앞으로 국어 시험에서는 '문법'이 없어지는 것이다. 더 이상 한글의 우수성도, 한글 맞춤법도, 우리말의 언어예절도 가르칠 수 없는 기상천외한 사태가 벌어진다.

한글학회, 국어국문학회, 국어학회, 한국어학회 등 대표적인 우리말 연구 기관은 물론, 고려대, 경희대, 한국외대 언어교육원과 연세대 한국어학당 등 연간 수만 명의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육기관 대표들, 한글문화연대 등 다수의 시민단체들, 국어 교사와 한국어 교사 등이 당장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31일 서울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교육부의 너무나 황당맞은 이번 행태에 대해 큰 분노를 표시했다.

한글학회 총무를 맡은 고려대 이관규 교수는 “우리 선조들은 일제의 조작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목숨을 빼앗기면서도 우리말과 글을 지켜왔다. 그런데 해방된 대한민국에서 교육부가 나서서 우리말과 글을 교육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교육부는 과연 어느 나라 교육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라며 교육부를 질타했다.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 교사는 “한글과 한국어는 우리의 현재이자 미래이며,  한류의 든든한 자산이다. 외국인들도 극찬하는 한글과 한국어의 원리를 가르치는 ‘언어(문법)’ 과목을 한국인이 고등학교에서 배우지 않게 된다면 한국어의 미래가 어찌될 것이며 어떻게 외국인들이 한글과 한국어의 원리도 모르는 한국인에게서 한국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겠는가?”라며, “고등학교에서 한글이나 한국어 원리에 대한 교육이 폐지된다면 좋은 한국어 교사를 기를 수도 없고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한글과 우리말을 자랑스러워 할 수도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교육부가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수능을 2021년부터 적용하려다가 2022년으로 연기하는 과정에서의 진행된 과목 개편 추진이 발단이 됐다.

기존 적용된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국어과 과목은 <화법과 작문>, <독서와 문법>, <문학> 3과목이다. 그런데,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수능이 2022년으로 연기되면서 국어 과목이 <화법과 작문>, <독서>, <문학>, <언어(=문법)와 매체> 4과목으로 달라졌다. 문제는 학습 부담을 줄이려면 3과목을 유지해야 한다며, 교육부가 4과목을 다시 3과목으로 줄이는 과정에서 <언어(=문법)와 매체> 과목이 제외될 수 있는 설문조사안을 일방적으로 강행하며 시작됐다.

유심히 살펴보면, 기존 3과목으로 구성된 국어 교육과정의 수능 범위에는 '독서와 문법'이라는 단일 과목이  있다. 이 과목이 2022년으로 1년 연기해서 적용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수능에서는 '독서' '언어(=문법)와 매체' 두 과목으로 분리된다. 이렇게 분리된 2개 과목중에서 어느 하나를 다시 줄여할 할 형편이 되자 교육부 연구팀이 언어(=문법)을 빼겠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했다는 것이 문제의 요지다.

4과목으로 늘어난 과목을 다시 살펴보면 '독서'가 분리됐고, 문법은 '언어와 매체'라는 다소 모호한 과목명으로 신설되어 있다. 누군가가 인문학적 소양 향상을 강조하며 '독서'와 '매체(언론)' 교육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과목 분리인 것으로 보인다.

의도가 어떠했든 이렇게 4개 과목으로 세분화가 된 후에, 막상 장학사들이 4과목은 안되고 3과목만 된다고 가로막고 나서자 일이 복잡해졌다. 혼란을 야기한 누군가의 책임 문제 등 여러 상황 전개가 예상되는 가운데 교육부는 이를 가장 단순하게 피하고자 '설문조사를 통한 과목 수 선택'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설문 문항 설계에서 제외 대상으로 하필이면 '언어(=문법)와 매체' 과목을 지목해 국어 교육에서 문법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이런 기막힌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 논란의 원인을 제공한 교육부는 한글의 우수성과 우리말 맞춤법 등을 가르치는 <언어(=문법)와 매체>를 제외해야 할 어떠한 합리적인 이유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그런 중요한 결정을 심도 있는 연구가 아닌 단순한 설문조사 만으로 결정하려는 태도를 교육부가 고수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져, 마침내 국어 교육자와 학자들이 눈쌓인 정부종합청사 앞에 나가 장외 집회를 해야하는 어이없는 사태까지 불러오고 말았다. 책상과 강단에 서야할 이들 교육자와 학자들을 눈쌓인 정부청사 앞으로 불러낸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이들 학자와 교육자들은 "교육부의 위탁으로 설문조사를 맡은 연구팀도, 설문에 앞서 개최한 전문가 협의회에서 교육부는 이유는 설명해 주지 않고 장학사들이 국어과의 선택 과목을 4개로 하면 안 된다고 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전했다.

회의에 참석한 교수와 국어 교사는 국어과의 선택 과목이 몇 개이든 국어과 시수 안에서 해결하면 되므로 4과목을 선택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교육부는 전문가의 의견은 무시하고 설문을 강행하고 있다. 특히 설문의 직업 분류에 국어과 전공자도 아닌 일반 전공자들이 다수인 ‘장학관/장학사’가 따로 설정되어 이들의 의견을 빌미로 <언어와 매체>의 제외를 강행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니 기가막힐 일이다.

수능에서 <언어와 매체>를 제외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고등학교 교육이 수능에 의해 좌우되는 우리의 현실을 고려하면, 우선 자라나는 세대들이 자랑스러운 제 나라 문자인 한글 창제의 원리, 한글 맞춤법과 같은 우리말 규범을 공부할 필요가 없게 되며, 나아가 현재 우리사회 교육 환경에서 그나마 거의 유일하다고 할 '청소년 언어생활을 다듬어 줄 기회'도 상실하게 된다.

그렇지않아도, 게임과 휴대폰 중독으로 국어 해체와 파괴가 심각하고, 독서 능력이 떨어져 가고, 글쓰기와 말하기 등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국민이 많아져 가는 상황인데, 그나마 언어(=문법) 교육마저 사라진다면, 국민의 국어능력이 더욱 낮아질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묻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가히 알 수 있음)'이다.

이제 아무도 세종대왕을 자랑스러워하지 않게 되고, 한글을 자랑할 이유도 모르게 되며, 한류와 함께 전 세계인이 배우려는 한글과 우리말을 제대로 가르칠 교사 양성에도 큰 어려움이 예상되는 현실을 상상해보라. 암담하지 않은가?

이들은 "교육부는 요식 행위에 불과한 설문조사를 즉각 중단하고 최초 약속한 대로 2021 수능 범위를 기존의 국어 시험처럼 <화법과 작문>, <독서>, <문학>, <언어와 매체>(언어만 포함)로 결정하는 것이 모든 논란을 피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라며, "만일 국어과 수능 선택 과목 수를 달리 하고 싶다면 충분한 연구를 통해 2022년 수능부터 바꾸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교육부가 일제 조선 총독부처럼 한글과 한국어를 가르치지 못하게 막아섰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수능 국어 교과의 '문법' 제외 논란을 넘어서, 제발 교육부는 잦은 수능 과목 변동으로 세상을 혼란에 빠트리는 일 좀 자제할 수 없을까?  국가 발전을 일궈낸 뿌리이자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의 성공 브랜드 '백년대계 교육'이 왜 요즘들어 십년은 커녕 3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발전은 커녕 오히려 커다란 사회적 혼란과 논란만 부추키는 것인가? 교육부 당국자들과 이들 주변 관계자들은 제발 '전문가'라고 유난떨지 말고 '상식적'으로 좀 살자.

▲사진: 서울대 구본관교수와 고려대 이관규교수를 비롯한 참여 교수단이 교육부에 잘못 된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뉴스프리존

최근 교육부의 위탁을 받은 연구팀은 2021 국어 과목 시험 범위에서 ‘언어(문법)’을 제외할지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다. 연구팀이 제시한 선택 방안은 1안과 2안이다.

1안: 4과목안(<화법과 작문>, <독서>, <문학>, <언어와 매체>)
2안: 3과목안(<화법과 작문>, <독서>, <문학>) 

설문 의도를 모르는 응답자라면 과목수가 적은 2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리 된다면 사실상 국어교육에서 ‘언어(문법)’에 대한 교육은 사라져, 한글 창제 원리, 한글 맞춤법, 올바른 어법, 우리말 예절 등은 가르칠 수 없게 된다.
문제의 발단은 2021년 수능 시험부터 적용되기로 했던 2015 개정 교육과정 적용이 2022년으로 1년 연기되면서 시작되었다. 교육부는 2021년 수능의 경우 기존 수능시험의 성격을 유지하겠다고 하였다. 기존의 수능 국어 선택 과목은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화법과 작문>, <독서와 문법>, <문학>의 3개인데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은 <문학>, <화법과 작문> 외에 <독서와 문법>을 <독서>와 <언어와 매체>로 분리해 4과목이 되었다(‘언어’는 ‘문법’에 해당함). 교육부는 기존 국어 수능 과목이 3개였으니 2015 개정 교육과정 4과목 범위에서 <언어와 매체>를 배제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1안처럼 4과목으로 하되 <언어와 매체>는 <매체>를 제외하는 조건을 달면 4과목이라도 기존 범위인 3과목과 동일 범위 효과가 나오므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본다.

교육부는 연구팀을 꾸린 후 1월 12일과 15일 두 체례 전문가 협의회를 개최했다, 참석한 국어 전공 교수와 교사는 2021 수능이 현행대로 시행된다면 4과목인 <화법과 작문>, <독서>, <문학>, <언어와 매체>로 하되, ‘매체’는 지금까지 수능 시험에 출제한 적이 없으니 ‘매체’만 제외하도록 고시하면 된다고 건의하였다. 그런데 교육부나 연구팀은 학생들의 선택권이나 수업 시수 등을 말하면서, 장학사들이 국어 선택 과목은 3개여야 한다고 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에 참석한 국어 전문가들은 국어 과목은 국어과 시수 내에서 선택하는 것이라 4과목 선택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단락된 줄 알았던 과목 문제가 설문조사 방식으로 다시 살아났다. 설문 문항을 검토해 보면 교육부와 연구팀의 의도가 읽힌다. 설문 조사의 앞부분에는 참여자의 직업을 묻는 항목이 있는데, ‘교수, 고등학교 교사, 장학관/장학사, 학부모/시민단체, 기타’로 되어 있다. 갑자기 장학관/장학사가 하나의 범주로 제시되어 2안을 선택하려는 교육부와 연구팀의 의도가 엿보인다. 장학사/장학관은 국어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더 많고 각자의 전공 교과 이익을 대변해 전혀 국어교육 전문가라 볼 수 없다.

<언어와 매체>가 수능과목에서 배제되면 고교 <언어와 매체> 선택은 약화되고 일부 학교에서 선택해도 한글이나 한국어의 원리에 대한 교육은 사라질 것이다. ‘언어(문법)’를 가르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선 한글 맞춤법과 같은 국어 어법과 우리말 예절을 공부하지 않게 된다. 청소년의 말과 글을 다듬어 줄 우리말의 원리를 가르칠 수 없게 되어 청소년의 말과 글은 비문(非文)과 무례가 넘치고 더욱 거칠어지게 될 것이다.
조선 망국 후 주시경 선생과 제자들의 우리말 연구와 교육 그리고 그 결실인 한글 맞춤법 제정(1933)은 민족 말살의 총독부 정책에 항거하여 이루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옥사를 당하면서까지 우리말과 글을 수호하였던 선열들의 피가 배어 있는 한글 맞춤법은 국어교육의 근간이 되어 왔지 않은가? 이제 국어능력이 성숙해질 고교 국어교육에서 우리말과 글에 대한 교육이 사라지면 고교생들의 국어능력과 그 미래가 걱정스러울 뿐이다. 나아가 고등학교에서의 우리말과 글에 대한 교육의 약화는 국어교육과 국어국문학의 발전을 저해함은 물론 한국어 세계화의 기초가 되는 대학에서의 한글이나 한국어의 원리에 대한 교육의 약화도 초래해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육 발전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래도 된단 말인가? 우리는 묻는다. 교육부가 나서서 한글과 한국어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려는 지금이 일제 강점기인가? 2안을 의도적으로 결정하려는 교육부와 연구팀의 설문 방식은 조선어 말살을 획책하고 한글을 가르치지 못하게 한 일제강점기 시대의 국어 말살정책과 같은 폭거일 뿐이다. 우리는 교육부의 수능 정책 주무자들의 의식 수준이 일제 총독부 수준의 의식을 가진 것에 경악과 비탄을 금치 못한다.
이에 전문가들과 전국 교사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3과목, 4과목의 숫자 놀음으로 국민을 속여 ‘언어(문법)’를 포기케 하려는 교육부와 연구팀의 폭거 앞에 우리 국어교육계와 한국어교육계 그리고 국어국문학계의 연구자와 교육자들은 우리말을 다듬어 맞춤법을 만들고 사전을 만들어 우리말을 지키려 했던 일제강점기 선열들의 국어 수호 정신을 되새기며 강력하게 다음 사항을 밝힌다.

1. 국어교육 하위 학문의 균형 있는 발전과 <문학, 독서, 화법, 작문>의 기초 영역이기도 한 <언어(문법)>는 고교과정에서 교육되고 수능 평가에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2. <언어(문법)>를 배제하면 국어교육의 핵심이 빠진 국어교육이 되어 학생들은 우리말과 우리글의 원리와 어문규범을 배울 기회가 사라지고 국민의 국어능력은 더욱 저하될 것이다.
3. 2015 교육과정의 <언어와 매체>는 포함하되 수능 범위에서는 ‘매체’ 부분만 제외하면 현행 수능체제와 연속성도 유지해, 교육부의 당초 입장과도 일치하고 현장의 혼란도, 학습 부담도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2018년 1월 31일
국어, 국어교육, 한국어교육 관련 학회/단체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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