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석가모니 부처님만 부처인가요? 아닙니다. 저도 부처이고 우리 모두 부처입니다. 그래서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해야 하지요.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란 말은 ‘곳곳이 부처요, 일 일마다 부처님께 불공 드리듯이 잘 모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곧 부처이니 그야말로 내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니까요.

초기 불교 경전에 의하면, 붓다는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나자마자 북쪽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나서 곧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다시 태어남은 없다.”

그런데 이 말씀은 석가모니 부처님 자신을 두고 말씀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진리를 깨달은 모든 사람이 부처라면, 그야말로 나도 불공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나’는 ‘아상(我相)’에 붙잡힌 ‘나’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은 ‘진아(眞我)’를 가리키는 말씀이지요.

원불교 교조(敎祖) 소태산 부처님은 “남에게 존대를 받으려면 먼저 남을 존대하고 위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다른 사람도 나를 함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에게 대우받으려면 먼저 다른 사람을 잘 대접해 주어야 하는 것이 정한 이치입니다. 이 세상에 자신보다 더 귀한 사람은 없습니다.

‘내 절 부처를 내가 잘 위해야 남이 위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를 잘 대접해 주어야 합니다. 자신을 대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찌 남으로부터 훌륭한 대접을 받겠습니까? 자신에게 갊아 있는 부처를 발견하여 정성 들여 불공하면, 세상에 이루지 못 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 보기를 초개(草芥)같이 알면 아래 사람이 윗사람을 원수같이 안다.’라고 하였습니다. 나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도 그만큼 소중한 것이지요.

여기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금산 권도갑 교무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 덕화만발 카페 <금산 마음공부 방>의 주인이시지요.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소중한 당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렇습니다. ‘This is me!’ 내가 부처입니다. 이게 바로 나입니다. 노래 제목이 ‘This is me!’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원래 이 노래는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의 OST 곡입니다. 어둠에 익숙해진 서커스 단원들이 ‘광대’라는 멸시와 편견을 뛰어넘어, 용감하고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노래가 바로 “This is me! 이게 나야!”입니다.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 이상 숨지 않고, 나 자신을 멋진 존재로 받아들입니다. 부끄러움과 상처도 모두 씻어버리고, 나 자신이 스스로 쌓아 올린 벽을 허물고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나 자신을 믿고, 세상의 온갖 어려움을 헤쳐나가자는 노래입니다.

어떻습니까? 세상을 살다 보면, 눈물이 날 때가 있고, 고갤 떨굴 때가 있습니다. 힘에 겨워 지칠 때,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 이 눈물과 아픔도 다 이겨내고 보면, 내가 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멋진 부처 아닌가요? 조금은 늦더라도, 중간에 크고 작은 어려움이 나를 가로막더라도 내가 부처라는 확신만 있다면, 우리는 당당히 부처님의 세계에서 살 수 있습니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베살리’의 원숭이 연못 옆 중각강당에 있을 때에 ‘아난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난다야, 큰 바다에 눈먼 거북이 한 마리가 살고 있다. 이 거북이는 백 년에 한 번씩 물 위로 머리를 내놓았는데, 그때 바다 한가운데 떠다니는 구멍 뚫린 나무판자를 만나면 잠시 거기에 목을 넣고 쉰다.

그러나 판자를 만나지 못하면 그냥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때 눈먼 거북이가 과연 나무판자를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다는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래도 눈먼 거북이는 넓은 바다를 떠다니다 보면 서로 어긋나더라도 혹시 구멍 뚫린 나무판자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중생이 ‘육도윤회(六道輪回)의 과정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란 저 거북이가 나무판자를 만나기보다 더 어렵다. 왜냐하면 저 중생들은 선(善)을 행하지 않고 서로서로 죽이거나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헤쳐서 한량없는 악업을 짓기 때문이니라.”

정말 그렇지 않은가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어렵게 인간으로 태어나 역겁난우(歷劫難遇) 덕화만발을 만난 우리입니다.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부처가 되는 것이니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6월 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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