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애 칼럼] '평화의 소녀상; 철거 요구하는 한국 수구보수단체의 지속되는 일상적· 종교적 일탈

한국은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다. 그때마다 백성들은 죽기 살기로 싸우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를 지켰다. 반면에 두려움으로 저항보다는 침략자들에게 어쩔 수 없이 동조한 사람들도 꽤 있다. 어느 누가 쉽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죽음을 불사하고 투쟁하여 나라를 지켜낸 선조들의 용기와 기백에 찬사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외세의 침략도 없는 지금, 스스로 외세에 머리를 숙이고 그들에게 굴욕적인 행태를 취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마음인 것인가?

한국의 보수단체 인사들이라 자칭하는 주옥순 대한민국엄마부대 대표와 ‘반일종족주의’ 공동저자인 이우연 낙성대연구소 연구위원 등은 이달 안에 독일 베를린을 방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이를 먼저 일본의 산케이 신문이 15일 보도했다.

나는 이 부분과 관련해 3가지를 말하려 한다.

첫째, 왜 그들의 행보에 대해 우리가 일본 언론을 통해 들어야 하는가? 이는 보수라 사칭하는 이들이 일본의 지원을 받아 행하고 있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만일 정말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위안부' 자체가 역사적 사기라면, 당당히 한국 언론을 통해 역사적 진실이 아님을 지속적으로 밝혀야 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독일 소재 소녀상 철거 요구로 독일을 방문하겠다는 것도 한국 언론을 통해 먼저 밝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과거 구한말 이완용 등 을사오적이 앞서서 행한 반민족적 만행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지난 2019년 8월에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한 제5차 기자회견'에서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9년 8월에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한 제5차 기자회견'에서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둘째, 주옥순씨는 전에 "아베 수상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언제까지 100년 전에 식민지배 당한 것 갖고 우려먹을 건가?”, “내 딸이 위안부여도 일본을 용서한다... 내 딸이 겁탈을 당하든, 성폭행을 당하든, 한 놈도 아니고 두 놈 세 놈에 당했다고 하자, (딸이 위안부였다면) 자살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딸을 자살시켜야 하나 아니면 빨리 잊고 미래를 생각하게 해야 하나?” 등의 소리를 내었다. (소리라고 한 것은 단순히 의미가 없는 한 형태의 소음에 불과하기에 사용한 것이다.) 결단코 정상적인 부모(특히, 엄마)라면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부당히 겪었던 피해들을 언제까지 우려먹을 것인가 하며, 한국 국민으로서 죄송하고 또한 일본을 용서한다고 하는 그들의 논리는 억지로 이해해보겠다. 그런데 이렇게 놀랍고 존경할만한 인류애를 가진 분들이 어째서 악에 받친 사람마냥 문재인 전 대통령과 조국 전 장관에 대해서는 그렇게 비난의 말과 욕설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우려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한 민족상잔을 일으켜 죄 없는 국민들을 죽이고 학살했던 북한 공산당에 대해서는 어째서 기를 쓰고 욕을 하고 죽여야 한다고 원수들에게 소리치는지 모르겠다. 일본을 향한 애정어린 그들의 '선택적 인류애와 원수사랑'은 스스로 자신들의 논리가 억지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또한 여기서 주씨는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의 딸의 경우 일본인들에게 겁탈을 당하면 분하고 수치스러워서 자살하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달에 돌아가신 김양주 할머니를 비롯하여 아직 생존해 계신 11분의 할머니께서는 자신의 오욕적인 인생을 드러내서라도 비인간적이고, 비인류애적인 그리고 인간으로 할 짓이 아닌 일본의 만행에 대해 모멸감과 분함을 뒤로하고 당당히 말씀하셨다. 그리고 전 세계에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없도록 하고자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또한 후대의 자손들은 그러한 비극적 인생을 살게 하지 않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당신들의 인생을 헌신하며 정말 지탱하기도 힘든 노구를 이끌고 미력하나마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계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협한 가치만 따지는 주씨와 그런 주씨에게 비상식적인 교육을 받은 딸의 상황이면 주씨는 자신의 딸이 자살할 거라 단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씨가 정상적이지 않은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위안부' 할머님들을 비교선상에 두어 말하는 것 자체는 매우 한심하고 어이가 없는 일이다.

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박영심 씨의 만삭 모습이 담긴 사진(1944년 9월 3일 촬영) [출처 서울시·서울대 정진성 연구팀]
'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박영심 씨의 만삭 모습이 담긴 사진(1944년 9월 3일 촬영) [출처 서울시·서울대 정진성 연구팀]

셋째, 주옥순씨는 개신교라고 알려져 있다. 성경의 누가복음 6장을 보면,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구절이 있다.

짙은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운 어느 한 교회의 모습
짙은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운 어느 한 교회의 모습. 사진=이인애

내가 볼 때, 성경에서 말하는 원수는 문맥상 먼저는 기독교의 복음을 반대하고 핍박하는 자라 할 수 있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이와 상응하는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적 기독교 적용점으로 확대하여, 살면서 인간관계에서 복수를 품을 수 있는 대상을 향한 말씀이라 할 수 있다.

즉, 주씨와 같은 보수단체에서 주장하는 가치는 성경적 문맥상의 정확한 신앙적 적용 논리점도 미약할 뿐만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에게만 정치적으로 적용하고, 자신들의 이념과 가치에 맞지 않는 사안들에는 다르게 적용하는 비신앙적·비성경적인 행태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주옥순씨와 같은 ‘비상식적’ 개신교인들에게 성경의 말씀처럼, 먼저 기도하는 자가 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기도와 행실보다 말만 앞세우는 소위 선데이 크리스찬들과 같은 ‘종교인’들에 대해 경종을 울리시는 마태복음 23장의 말씀을 주의 깊게 읽어보라고 간청한다.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선생)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리고 위에서 본 원수와 관련된 성경말씀에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마태복음 7장 12절에도 나와 있는 구절로 기독교의 황금률이라 한다. 왜 이렇게 좋은 성경말씀을 일본에만 적용하고, 피해를 입은 위안부 할머님들과 일본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적용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성경 말씀을 무작정 왜곡하며 적용하는 기독교인들로 인해, 때로는 다수의 교회에서 말만 앞세우는 성도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더 가르치고 침묵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인애/통일비내리는날 대표
이인애/통일비내리는날 대표

일본 언론은 주옥순씨가 속한 보수단체와 이우연 낙성대연구소 연구위원 등의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 요구에 대해 “뜻밖의 원군”이라고 표현하며 반색하고 있다. 나는 정의와 긍휼을 상실하고 왜곡하는 이들이 반민족자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종교적이고 위선적인 기독교인들에게 질타하는 마태복음 23장의 예수님의 말씀이 이들을 지칭함을 기독교인들은 잘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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