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공력을 믿는 '사랑의 펜던트' 최지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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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공력을 믿는 '사랑의 펜던트' 최지윤 작가
  • 편완식 기자
  • 승인 2022.06.21 2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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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로 만든 보석이미지 캔버스에 부착...사랑의 가능태 부각
황창배 파격적 화맥 계승...27일까지 갤러리 라메르 초대전

[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꽃을 배경으로 새와 말, 여우 등이 한가롭고 정겹다. 화조화의 형식을 떠올리게 해준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꽃과 새 등의 몸이 보석을 박은 것 처럼 영롱하다. 게다가 여백은 배경색을 다섯 번 정도 반복해서 올려 맑은 기운이 감돈다. 색깔있는 여백의 미다. 바위같은 형상은 3가지 미디엄을 섞어 질감 표현을 했다. 괴석도를 연상시킨다. 공력이 엄청 들어간 작업이다. 27일까지 갤러리 라메르 초대전을 갖는 최지윤 작가의 작품이야기다.

보석같은 사랑의 가능태를 그리는 최지윤 작가
보석같은 사랑의 가능태를 그리는 최지윤 작가

“나는 시간의 공력을 믿는다. 내가 좌절했던 시간들, 어둠속에서 하나의 빛을 향해 걸어온 시간들, 내가 붓을 들고 있었던 시간들, 고뇌 우울 눈물 분노 사랑 기쁨의 시간들. 이 모든 시간들의 힘을 믿는다. 내가 붓을 들고 있던 시간들은 때론 과역(課役)을 수행하는 것처럼 고통과 눈물도 따랐으나 그 고뇌 또한 공력의 시간들이었음을……. ”

작가는 보석이미지를 일일이 만들어 화폭에 붙인다. 우선 장지에 형상을 스케치한 후 묽은 먹을 칠해 스며들게 한다. 여기에 아크릴 분채를 섞어 올린다. 그리곤 잘라내 캔버스에 부착시키는 방식이다. 전체화면을 바니쉬로 마감하고, 보석부분에 크리스털레진을 더 얹은후 24시간 굳힌다. 보석부분에는 조금 두텁게, 꽃부분은 얇게 올린다.

그의 이런 노력들은 이왈종과 더불어 한국화의 당시대성을 추구했던 황창배 스승의 영향이 컸다. 수묵과 채색이라는 전통회화의 이분법적 구분 체계를 융합한 것은 물론 전통적인 수묵과 서구적인 아크릴의 병치, 혼합을 통해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화면을 구축한 예술 세계를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1992년 첫 개인전 때 나의 주된 관심사는 빛의 변화로 나타나는 일상의 풍경이었다. 거대한 산의 골짝을 휘감아 도는 생명의 두드림임을 그때는 몰랐다. 내 안의 잠재된 그 무엇은 바람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잡히지도 않았다. 다만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사람과 자연과 사물을 감싸고 싶었다. 어쩌면 열망에서 오는 지독한 갈망이었지도 모르겠다. 그 잠재된 자유로운 영혼과 충족되지 않은 갈망이 내 작업의 근간이 되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30여 년 간 작업 내용과 형식이 조금씩 달라졌지만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그 실체가 사랑의 열망이었고, 그 사물이 ‘꽃’이라는 소재로 피어나게 된 것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보기보다 좀 우울한 사람이라 말한다. 스무세살, 자신을 찾기도 힘들었던 시기에 아버지의 죽음은 영혼 저편의 웅덩이를 만들었다. 불쑥 길을 걷다가 싱크홀에 빠지는 듯한 비현실을 느끼곤 했다. 마음의 우울의 바닥이 거기에 있었다. 웅덩이는 좀처럼 메꿔지지 않았다. 그만큼 아버지는 그에게 모든 걸 기대게 하는 산 같은 존재였다.

“누구에게나 눈물나도록 그리운 순간들이 있다. 그 시절로 그 과거로 갑자가 뛰어가고픈 충동이 일어날 때가 있다. 그것들은 잔잔한 바람으로 혹은 태풍처럼 나의 마음을 밀고 들어온다. 그렇게 나의 마음을 밀고 올라오는 모든 종류의 감정들을 흰 공간에 뿌려나가는 것으로 나의 작업은 시작된다”

그는 현실이 버겁고 힘들때 사람들이 행복했던 과거를 소환하여 잠시 머무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일이 위안이기도 하고, 역으로 깊은 슬픔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한동안 그는 그러한 모든 감정을 화면에 쏟아내며 스스로 황폐해지는 시기도 겪었다.

“어느날 우연히 들꽃과 마주하게 되었는데 그 시기부터 내 작업의 근본은 사랑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실개천 뚝에 바람을 머금은 들꽃 한송이가 떨궈져 물에 실려가듯이.....”

그는 2012년부터 화면에 보석같은 질감을 보여주고 있다. 원석이 풍화와 퇴적을 거듭하고 가공되어 영원한 빛으로 탄생함을, 그리고 풍화와 퇴적된 부드러운 흙은 ‘꽃’을 잉태함을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별과 상실의 아픔 속에서 변하지 않는 영원한 무엇을 찾고자 했던 나는 자연이라는 환(幻)의 고리 속에서 최고의 아름다운 ‘꽃’과 ‘보석’으로 영원히 존재함을 사랑의 서사로 풀어내게 되었다. 결국 나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살아있는 온갖 감정을 농축시켜 주는 것이며, 그 행위 자체에서 모험, 사랑, 갈등, 초조, 뿌듯함, 노동의 희열, 창조적 기쁨, 견딜만한 인생의 고통과 비애, 만족 등을 접하고 그래서 ‘작업’ 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던져진 나의 육체와 정신을 그나마 충족시켜주는 유일한 그 무엇이 되는 것이다”

그는 얼마 전 엄마와 작별을 했다. 엄마의 죽음이 아니라 엄마와의 작별이었다.

“스무세살 그때처럼 씽크홀이 크게 생기지 않은 건 엄마가 아버지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서였다. 첫 개인전 때 엄마의 노고를 힘 삼아 작품을 걸 수 있었다. 그저 아무것도 드릴 수 없는 미안한 마음을 눈물로 대신할 수 밖에 없었음을..... 평생, 단 한 순간 내 편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던 두 분. 화업 30년을 맞아 잠시 작별한 두 분께 이 전시를 바치는 마음이다. 두 분은 내게 영원한 꽃과 보석이다”

전시제목도 ‘사랑하놋다(MUCH be in LOVE)’다. 현대어로 풀면 ‘사랑하는구나’이다. 작가는 동양화의 경향적 구성에 충실하고 있다. 선적 구성을 통해 설명적이 아닌 암시적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 존재상태를 나타내지 않고, 가능상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다실의 꽃꽂이가 영겁의 가능태이듯이, 사랑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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