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예술의 본질을 향한 사유의 공간”
‘색으로 만들어 낸 수묵’맛 호평
7월 6일까지 유진갤러리 개인전

[서울 =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산 같기도 하고 물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는 산 등 특정대상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심상풍경이라 했다. 산 정상에 올라 저 멀리 광활하게 첩첩히 펼쳐진 산세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을 준다. 가없는 깊이감을 주는 ‘색으로 만들어 낸 수묵’의 맛이다. 7월 6일까지 강남 유진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는 김상열 작가의 작품 이야기다.

자연풍경에서 내면의 심상을 캐내는 김상열 작가

어떤 풍경에는 이름이 있게 마련이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차이의 체계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하나의 잊지 못할 풍경을 저 숱한 무명의 풍경으로부터 차별화시키는 일일 것이다.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어떤 풍경을 무한한 자연으로부터 차별화시키고, 풍경은 비로소 관조자에게 유의미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풍경(현상)들은 각각의 고유한 '차이'성을 지니고 있고 이로 인해 상호 구별되는 특징을 지닌다. 하지만 이와 같은 '차이'는 그 외피에 덫붙여진 형식적이거나 상징적인 의미들을 걷어내는 해체작업을 거치면 더 이상 다른 어떤 것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원래의 의미를 드러내게 된다. 이러한 본질적 의미는 그동안 차이가 있다고 알려졌던 다른 현상들과 다를 바 없는 동질성을 갖게 되고, 이러한 관계를 데리다는 '차연' 이라고 개념지었다. 심상풍경에 이르는 것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 ‘차연(différance)’인 이유다.

“나에게 있어 자연은 작업의 시작점이며 지극히 보여지는 가시적 의미를 넘어 나를 알아가고,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는 경전과 같은 것이다. 자연에서 작업의 길을 묻고 이치를 깨달아 간다. 작은 나뭇잎 하나에서도 놀라운 우주의 이치를 깨닫게 하고, 작은 바람 한 점 구름 한 조각에서 사유적 유희를 만난다.”

전시에서는 그의 시그니처인 ‘비밀의 정원(Secret Garden)’과 ‘바람의 정원(Wind Garden)’ 시리즈의 신작들을 비롯하여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온 그의 작품 세계를 다채롭게 보여준다. 500호가 넘는 대형 트립틱도 선보인다.

“풍경을 바라본다는 것은 무언가를 읽어내는 일이다. 일망무제의 바다와 첩첩 산맥 앞에서 대체 풍경이 무엇이기에 저 깊는 곳으로부터 눈물을 만들어 내는가 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마도 숭고미의 모습일 것이다”

그의 ‘Wind Garden’시리즈는 겨울철 화목난로를 때고 남은 재를 캔버스에 미디엄과 함께 섞어 발라 바탕을 만든 후, 물감을 묻힌 붓으로 결을 만든다. 그리고 에어브러시로 색의 레이어를 만들면 첩첩이 쌓인 산줄기의 형상이 천천히 드러나는 작업이다. 서로 다른 농도의 색면(色面)이 중첩되어 완성된 그의 회화는 물성의 시각화보다 근원적 질문을 향해 나아간다. 자연에 대한 경외가 만든 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은 인내심 강한 예술가다. 억겁의 시간이 녹아든 창조물이 곧 자연이다. 동양철학에선 마음과 사물의 하나 된 기운을 ‘심물합일(心物合一)’이라고 한다. 자연의 도(道)가 곧 마음의 도인 셈이다”​

그의 작품의 큰 틀은 언제나 자연이다. 작품 속 자연은 단순한 재현을 위한 대상이 아니다.

“예술의 본질을 향한 사유의 공간이 되길 원해요.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自然)’의 이치처럼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발현되기를 바라며,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스며들 듯이 피어나길 바랍니다. 청명한 하늘, 잎사귀 위로 떨어지는 반짝이는 햇살, 춤추는 수양버들, 가을 달빛을 품은 댓잎, 겨울의 움츠린 나뭇가지, 바람소리, 하얀 눈밭, 이른 아침 피어오르는 물안개, 연못에 담긴 물그림자 등 미묘하고 신비로운 자연에 대한 경외심은 내가 오랜 시간 자연을 주제로 작업하는 가장 큰 이유다”

​자연은 적어도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고 미술 형식이 생겨난 출발점부터 함께하고 있다. 수많은 예술가들은 그 자연의 모티브를 나름의 방식으로 옮기려 독창적인 조형 어법을 만들어 왔다. 그도 마찬가지다.

비밀의 정원 시리즈는 마치 창호지 너머로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지켜보는 것처럼 아스라하다. 블랙 캔버스 바탕에 자연물을 올려 놓고, 힌색 물감을 에어브러시로 분사하는 작업방식에서 나오는 이미지다. 작업실 기물에 오랜세월 동안 먼지가 쌓여가는 모습에서 착안한 작업방식이다.

“바람결에 몸을 실은 수양버들이 달빛에 비친 모습을 보았는가. 더없이 한가롭고 여유로우며 여여(與與)하다. 자연의 모든 얼굴엔 제각각의 아름다운 사연이 담겨 있다. 그 자연의 세계에선 단지 몇 소절의 음만으로 세상에 없는 음률을 선사하거나 몇 개의 단어로 세상의 모든 감성을 함축할 수도 있다”

비치고 우러나오는 몽환적 풍경이 수묵의 깊은 맛을 연상시킨다. 세상에 없던 고요를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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