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0일 자 <중앙일보>에 우리 덕화만발의 <금산 마음공부 방>의 주인이신 ‘금산 권도갑 교무’의 인터뷰기사가, 종교전문 백성호 기자의 대담으로 실려 이를 요약하여 전합니다.

【원불교 권도갑(73) 교무는 지난달 퇴임했다. 45년 간 종교에 몸담으며 그는 ‘마음공부’에 매진했다. 거기서 얻은 통찰을 권 교무는 가족 문제에 대입했다. 지금껏 꾸려온 ‘행복한 가족 캠프’는 153차에 이른다.

종교와 관계없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부모와 자식의 문제, 부부의 문제에 대해 나름의 해법을 내놓았다. 권 교무의 캠프를 거쳐 간 사람만 약 4,000명이다. 퇴임으로 홀가분해진 그를 지난 23일 서울 서소문에서 만났다.

<공대를 졸업하고 다시 원광대 원불교학과에 편입했다. 왜 출가했나.>

“아버지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오셨다. 부산시청 수도과 주임으로 계셨다. 부하 직원의 부정이 드러나니까 본인이 사표를 내버렸다. 강직한 분이었다. 가족을 살리려고 사업을 했는데 쫄딱 망했다. 우리는 단칸방에 살면서 갖은 고생을 했다. 아버지는 가끔 폭력도 행사하고, 늘 불화의 중심이었다. 나는 무능한 아버지를 증오했다.”

<그런 갈등이 왜 출가의 씨앗이 됐나.>

“나는 갈등이 없는 삶을 살고 싶었다. 집집이 들여다보면 사연이 있고, 가족끼리도 갈등이 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냥 즐겁고 행복하게 살면 될 텐 데. 당시에는 그게 나의 화두였다. 그 답을 종교에서 찾고자 했다. 대학생 때 부산 원불교 초량교당에서 새벽 좌선을 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출가 후에 갈등에 대한 답은 찾았나.>

“소태산 부처님(원불교 창시자)의 가르침에 ‘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돌리자.’라는 대목이 있다. 머리로는 되는데 가슴으로는 안 되더라. 그래서 엄청나게 고민했다. 더구나 원불교에서는 ‘은혜’를 강조하는데 말이다.”

<어떤 은혜인가.>

“하늘과 땅의 은혜, 부모 은혜, 동포 은혜, 법률 은혜의 고마움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런 은혜 속에 사는데도, 살다 보면 원망이 툭툭 튀어나온다. 원망의 마음을 감사의 마음으로 돌리고 싶은데 돌려지지 않더라.”

<그래서 어찌했나.>

“출가하고 한참 뒤였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나를 불렀다. 그리고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쭉 들려주셨다. 내가 몰랐던 사연도 꽤 있었다. 듣는 내내 나는 펑펑 울었다. 아버지가 왜 그랬는지 알겠더라. 그때 깨달았다. 아버지가 내게 준 아픔이 없었다면, 나는 출가의 동기가 없었겠구나. 그때 원망 자체가 감사라는 걸 깊이 깨쳤다. 고난이 축복이란 말처럼 말이다.”

권 교무는 “나는 그동안 원망이 나쁜 것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그걸 버리려고 만 했다. 그런데 아무리 버려도 버려지지 않더라”라고 했다. 거기서 그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무한수용’을 택했다.

권 교무는 “이 세상은 음과 양으로 돼 있다. 음은 버리고 양만 취할 수는 없다. 우리가 살면서 어둠은 버리고 밝음만 취하고 살 수는 없지 않나. 원망과 감사도 그렇더라. 나는 원망의 바닥까지 내려갔다. 거기서 원망 자체가 감사임을 보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는 열반하셨다. 그런데 가장 원망했던 아버지가 지금은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로 돌아섰다.”라고 했다.

권 교무는 자신의 깨침을 ‘행복한 가족 캠프’에도 대입했다. 특히 부모와 자식, 부부의 문제에 집중했다. “70억 인구 중에 부부가 된다는 건 기막힌 인연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건강한 결혼 관이 무너져 있다. 이 프로그램을 꾸리다 보니 가끔 주례를 서게 된다. 나는 예비 신혼부부를 만나서 결혼 관을 바꾸어준다.”

<어떤 식으로 바꾸나.>

“예비 부부에게 ‘결혼이 뭐냐?’고 묻는다. 그럼 대개 ‘좋은 배우자 만나서 잘 사는 것’이라고 답한다. 나름대로 백마 탄 왕자, 아리따운 공주를 꿈꾸더라. 나는 이게 얼마나 허황한 것인 가를 일깨워준다.”

<왜 그게 허황한 것인가.>

“결혼 전에 두 사람이 만나면 서로 최고의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자기에게 좋은 것만 이야기한다. 자랑하고 싶은 것만 말한다. 그럼 그것에 넘어간다. 그런 결혼은 깨지기가 쉽더라. 재산이 대단하다고 해서 결혼했는데, 신혼여행 다녀와서 보니까 빚이 더 많더라.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이 좋았는데, 어느 날 술 한잔하더니 말로도 폭력을 행사하더라. 그럼 신뢰가 깨진다. ‘내가 속았다.’라는 생각이 든다.”-하략-】

어떻습니까? 한 성직자가 출가 후부터 은퇴 시까지 평생 마음공부 한 우물을 팠다는 것은 ‘위대한 일생’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아마 그래서 금산 교무님이 마음공부의 대가(大家)로 이 사회에 우뚝 서신 것이 아닐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7월 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