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추하게 늙을 것인가 아니면 아름답게 늙어 갈 것인가 가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학문(學文)’은 배우고 익히면 될 것이나, ‘연륜(年輪)’은 반드시 ‘성숙(成熟)’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지요.

이와 같이 ‘성숙’은 ‘깨달음’이요, ‘깨달음’은 바로 ‘지혜’를 만나는 길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노년은 베풀 줄 알아야 하고, 그것이 미덕(美德)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늙어 겸손할 줄 모르면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높음이’ ‘낮춤’을 모르면, 존경 받기 어려운 것입니다.

부(富)를 축적하고, 권력이 막강해지고, 명예까지 높아지면, 그 사람에게 쉽지 않은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겸손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둘째,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과 남에게 베풀며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셋째, 절제하며 검소한 생활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이 세 가지를 잘 지키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건 한마디로 겸손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제가 젊어한 때 엉덩이에 뿔이나 좌충우돌,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마구 날뛴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누가 사람 대접을 했겠습니까? 천만다행 하게도 <일원대도(一圓大道)> 정법을 만나 지옥에 퐁당 떨어질 인간이 구제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겸손이 최고입니다.

우리 속담에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 : 1360~1438)은 조선 시대 초기인 태조부터 세종 때까지 오랫동안 관직에 머물면서 청백리(淸白吏)로 칭송받았던 인물이지요.

그는 젊고 명석하며 패기에 찬 세종 임금을 황희(黃喜 : 1363~1452)와 함께 보필하며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다지고 문화적 황금기를 여는 데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맹사성은 높은 관직에 있었음에도 벼슬이 낮은 자를 대할 때면 관대를 갖추고 대문 밖에 나와서 맞아 들였고, 상대가 물러날 때도 손을 모으고 몸을 구부린 채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그가 거처하는 집은 초라했고, 바깥 출입을 할 때도 가마 대신 소 타기를 좋아해, 보는 이들이 그가 재상(宰相)임을 알지 못했다고 할 정도로 검소함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맹사성이 처음부터 그러한 인품을 지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명문가의 자손으로 뛰어난 학식을 지녔던 그가 겸손과는 거리가 멀었던 모양입니다.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군수 자리에 오른 맹사성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과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지요. 어느 날 고을을 돌아보던 중, 존경 받는 고승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절을 찾아갔습니다.

맹사성은 고승에게 “스님이 생각하시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최고로 삼아야 할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시오?”라고 물었지요. 고승은 가만 웃고 있다가 “그건 간단합니다.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많이 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맹사성은 화를 내며 “그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내게 해줄 말이 고작 그게 전부요?”라고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습니다. 그러자 고승이 차나 한잔하고 가라며 붙잡았고, 이에 맹사성은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습니다.

고승은 맹사성의 찻잔에 찻물을 따르는데, 잔에 찻물이 차고 넘치는데도 계속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맹사성은 놀라서 소리치며, “스님, 찻물이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승은 태연하게 찻잔이 넘치도록 계속 차를 따랐지요.

맹사성이 화를 내며 “찻물이 넘친다니까요!”라고 하자, 고승은 주전자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들고는 맹사성을 지긋이 바라보고 한마디 했습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치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고승의 말씀을 들은 맹사성은 흠칫 놀라며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고, 황급히 일어나 방문으로 나가려고 하다가 그만 문틀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고승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지요.”

그 이후 맹사성은 누구에게도 거만하지 않고, 겸손을 몸에 익히고 실천하며 선정(善政)을 베풀어 많은 이로부터 존경 받는 인물이 되었다고 하네요.

몽골의 전통 가옥 ‘게르’는 문이 낮아 들어갈 때 허리를 굽혀서 들어가야 합니다. 상대의 집에 갈 때는 사이가 좋든 나쁘든 고개를 숙인 채 겸손한 마음으로 방문하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겸손은 원만한 인간관계의 비결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귀하게 여기는 길이지요. 단군 대황의 《치화경(治化經)》인 《참전계경(參佺戒經)》에 ‘불교만(不驕慢)’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어짊이 풍부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에게도 교만하지 않고, 부유한 사람이라도 가난한 사람에게 교만하지 않으며, 존귀한 사람이라도 비천한 사람에게 절대 교만하지 않다. 어진 사람은 스스로 잘못되어 미혹(迷惑)될까 하여 염려하므로, 어진 사람은 스스로 낯빛을 친근히 하고 온화하게 하며, 말은 바르고 따뜻하게 하여야 한다.」

노년의 아름다움은 성숙입니다. 겸양 이상의 미덕은 없습니다. 우리 이 겸양과 성숙으로 노년의 아름다움을 꾸미면 얼마나 좋을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7월 1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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