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칼럼] 권성동 체제 등장은 테르미도르의 반동, '역 세대교체' 기획

장강의 앞물이 뒷물을 증발시킨 ‘K-세대교체’

윤석열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장사가 어려워진 영세 자영업자들이 가게 보증금 까먹듯 야금야금 줄어들고 있다. 30퍼센트 고지가 무너져 효과적 국정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단계인 20퍼센트 대에 접어드는 상황이 시간문제인 걸로 보일 지경이다.

임기 초반, 전임 문재인 정부가 남긴 시행착오의 후유증을 조기에 수습하고 변화와 개혁에 힘차게 나서야 할 신생 정부가 원활하고 성공적인 국정운영의 동력이자 디딤돌인 민심의 지지를 잃어버리는 사태는 윤석열 대통령 개인의 불운이기 이전에 국가적 차원의 불행이다. 밖으로는 신냉전 시대의 도래와 급격한 기후변화의 난제에 직면하고, 안으로는 심각한 경제난과 인구절벽의 재앙에 맞닥뜨린 대한민국의 절박한 현실을 생각하면 윤석열 정부의 때 이른 붕괴와 몰락은 설령 야당 지지자 입장이라 하여도 마냥 즐겁고 반가운 일만은 아닐 터이다.

예로부터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관계라고 일컬어져왔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려면 세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다. 둘째는 창의적 혁신의 시도이다. 셋째는 불요불굴의 도전정신이다.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선행돼야 당면한 문제의 획기적 해법이 발견된다. 창의적 혁신을 시도해야만 위기의 근원으로 지목된 기존의 낡고 오래된 습속들과 분연히 결별할 수 있다. 불굴의 도전정신이 뒷받침될 때에야 창의적 혁신과 과감한 발상의 전환에 비로소 착수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작금의 총체적 위기국면을 대담하고 슬기롭게 무사히 돌파·극복할 수가 있을까? 전망은 솔직히 무척이나 암울하다.

창의적 혁신과 과감한 발상, 불굴의 도전정신은 젊은 미래세대의 중요하고 고유한 특성들이다. 윤석열 정권 수뇌부의 이준석 퇴출 결정은 단순히 차기 총선의 공천권으로 이어질 당권을 탈취하는 데만 목적이 있지 않았다. 30대 0선 당대표의 선출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분출되기 시작한 청년세대의 세대교체 열망을 무자비하게 압살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았다. 장강의 앞물이 자신들의 강고한 기득권 체제를 미구에 뒤흔들 뒷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말려버리려는 무모한 ‘역(Reverse) 세대교체’ 기획이 윤석열 정권을 빼도 박도 못하는 고립과 곤경으로 밀어 넣고 있다.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왼쪽)과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오찬 회동을 한 뒤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왼쪽)과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오찬 회동을 한 뒤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준석을 축출하고 집권여당의 당권을 접수한 친위쿠데타는 대부분의 쿠데타가 항시 그렇듯 대다수 민중이 잠자리에 들어가 있는 동안인 야심한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윤리위원장 이양희 교수가 이준석의 당대표직을 박탈하는 6개월간의 당원권 정지 징계안을 기자들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는 시각에 맞춰 발표한 음습하고 으스스한 모양새는 윤석열 대통령이 그 배후에 똬리를 틀고 있을 국민의힘 내의 수구반동세력이 민심의 매서운 눈초리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역설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자기들의 행동이 만약에 떳떳하게 생각됐다면 당대표 이준석의 견장을 매몰차게 뜯어내는 짓을 굳이 야밤을 틈타서 자행할 필요가 없었으리라.

쿠데타 직후 흔히 꾸려지기 마련인 ‘혁명평의회(Junta)’의 의장에 해당할 당대표 직무대행에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어린 시절 강릉 외갓집을 드나들 때부터 친구였던 권성동 원내대표가 취임했다. 권성동 직무대행이 당권을 장악하자마자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윤석열 대통령의 존영, 즉 사진을 중앙당사의 벽에 걸라는 지시를 내리는 일이었다. 윤 대통령의 추종세력인 윤핵관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구태의연한지를 보여주는 한심하고 씁쓸한 일화이다.

권성동 대행은 이준석이 주요하고 핵심적인 정당혁신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채택한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PPAT)」 시험제도를 당장 폐지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지방의원 등의 선출직 공직자에게 불가결하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지적 역량을 측정하기 위해 도입·작동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검증장치마저 이참에 아예 무력화하겠다는 노골적 의사 표시였다.

이준석이 과격하고 급진적인 자코뱅당의 지도자였던 로베스피에르는 당연히 아니다. 그럼에도 확실한 대목은 윤석열 일행은 프랑스 혁명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버리고 만 ‘테르미도르(Thermidor)의 반동’과 하등 다름없는 퇴행적이고 반개혁적 역할을 무람없이 자청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제동' 트리오의 맹활약에 윤석열 정권이 멍든다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을 상대로 누리던 유일한 비교우위 요소였던 세대교체의 속도감 있는 진전이 강제로 돌연히 차단당한 자리에서 3인의 존재감만이 가일층 두드러지고 있다. 나는 그들을 ‘김제동 트리오’라고 호명하련다. 김건희 여사의 ‘김’, 장제원 의원의 ‘제’.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의 ‘동’을 합성한 필자 나름의 다소 식상하면서도 불가피한 조어법이다.

19세기 중후반 무렵에 집중적으로 발호한 여흥 민씨 척족의 무능하고 부패한 외척정치가 조선의 망국을 재촉했음은 우리가 수많은 역사책들을 통해 지겹도록 학습해온 내용이다. 단지 임금의 처갓집 태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탐관오리들이 배출돼 매관매직을 쉬지 않고 행하니 나라가 성하려야 성할 재간이 없었다.

지금 세간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영부인 김건희 여사를 명성황후에 빗대어 비판하는 흉흉한 풍설이 인구에 파다하게 회자되고 있다. 대통령 위에 영부인이 있고, 영부인 위에 그의 친정 가족들이 있다는 공공연한 수군거림이다. 4차 산업혁명이 운위되는 이 개명한 첨단 디지털 시대에 한국정치는 구한말 외척정치로 회귀한 양상을 띠고 있으니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도 수치가 날개 없이 추락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셈이다.

김건희 여사가 외척정치의 씁쓸한 기억을 소환했다면 장제원 의원은 조선 초기의 악명 높은 총신을 대표하는 인물인 한명회와 유자광, 또는 임사홍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당혹스러운 모멸감과 자괴감을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안겨주고 있다.

더군다나 이준석 제거 작업에는 부산경남 지역에 연고지를 두고 있는 네 사람의 현역 여당 정치인이 깊숙이 관여돼 있다는 의혹이 차츰차츰 고조되고 있다. 장제원 의원과 박수영 의원, 박성중 의원과 안철수 의원이 그들이다. 장제원과 박수영은 부산에 지역구가 있고, 박성중 의원과 안철수 의원은 각각 경남 김해와 부산이 고향이다. 한국정치의 무대를 오랫동안 을씨년스럽게 배회해온 '우리가 남이가'의 영남패권주의의 망령이 관뚜껑을 열고서 다시금 슬금슬금 부활하는 분위기라고 하겠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구온난화 현상이 아무리 걱정된다고 한들 이런 종류의 저질 납량특집극을 국민들은 제발 더는 보고 싶지 않다.

권성동 대행 또한 박물관으로 사라진 조선을 부지런히 불러내는 중이다. 권성동이 현재 구사하는 정치의 본질은 영락없는 세도정치이다. 그가 대통령실의 인사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윤석열 정권 들어와 엄청난 권세를 만끽하게 된 배경은 유일무이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권성동 의원이 집안 대대로 친분이 두텁다는 것이다. 유권자의 위임이 아닌 권력자의 신임이 권성동이 손에 쥔 강대한 권력의 근거라는 측면에서는 권성동의 세도정치나 김건희의 외척정치나 피차일반일 게다.

세도정치와 외척정치는 아첨꾼들이 득세하고 창궐할 수 있는 최적의 토양을 제공한다. 이와 같은 풍토에서 ‘공정과 상식’의 복원을 기대하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고, 대박을 꿈꾸는 것만큼이나 허망한 백일몽에 불과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야심차게 선보인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도어 스테핑)이 평범한 일반 국민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관객모독으로 점점 더 느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수백 명에 달하는 근무자 가운데 대통령의 면전에서 사람이 아니라 소신과 양심에 충성해 '아니오!'라고 단호히 말하는 직원이 하나도 없는 용산 대통령실의 처량하고 참담한 자화상은 이준석 숙청 이후 한층 더 거세게 극성을 부리고 있는 '김제동' 트리오의 위세가 윤석열 정권을 종국에는 어디로 이끌어갈지 극명하게 알려주는 예고편이다. 그나마 박근혜 정권은 본편의 80프로까지는 그럭저럭 상영하고서 중도에 막을 내렸다. 윤석열 정권은 박근혜 정권과 견주어 과연 더 긴 상영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사람들이 이미 마음속으로 짐작하고 있는 대로일 것이다.

* 필자는 '메시지버스' 운영자(공희준.com)입니다. 

관련기사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