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기획자가 ‘워홀식 비즈니스 아트’ 전시
작가 31인의 희귀 템 출품...29일까지 승빌딩

[서울 =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젊은 공공미술 기획자들이 ‘시장미술’을 슬로건으로 전시를 열어 화제가 되고 있다. 센터코퍼레이션(대표 박지인)과 갤러리로이(대표 로이 양)가 주최하는 아트쇼 ‘레어아이템(RARE ITEMS)’이다. 전시는 프린트베이커리가 입주해 있는 압구정 승빌딩 1·4·7층에서 29일까지 진행된다.

기획의 출발은 여느 때보다 앤디 워홀이 더욱 더 중요한 만큼, 비즈니스 아트가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작가 31인에게 기존의 작품이 아닌 시장지향성 작품을 요구(?)해서 마련된 전시다. 작가 31인의 희귀 템 전시(Rare Items Exhibition)라 할 수 있다.

참여작가는 강석호, 고재욱, 구본정, 김송이, 김수철, 김윤아, 김유의, 김태형, 라킴, 민찬욱, 박명래, 박영훈, 박유아, 박지훈, 손석기, 신이피, 안옥현, 윤혜진, 이병찬, 이은, 이지송, 이태욱, 이페로, 임도원, 장한나, 정기엽, 정세인, 진기종, 차규선, 한석경, 한정수 등 미술계에서 나름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들이다.

전시에서는 31명의 작가들이 ‘제품’으로 만든 희귀 템 150점을 선보인다. 장식적이며 눈에 즐거운 매력을 뿜어내는 작품들이다. 마치 관객을 보고 ‘이래도 사지 않을래?’라고 넌지시 말을 거는 듯하다.

박유아 에포케프로젝트
박유아 에포케프로젝트

지난해 남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진행한 박유아 작가의 12간지 시리즈는 12마리의 동물을 디즈니 만화 캐릭터보다 생동감 있게 구현한 ‘에포케 프로젝트’를 보여주고 있다. 세련되고 화려한 색감으로 배색을 넣은 족자에 담기긴 작품은 작가의 이전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작품과 상품에 대한 작가의 상념과 긴장을 담아낸 모습이다.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유아는 동양화 전공인 수묵을 넘어 세라믹, 메탈, 섬유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조각이나 멀티미디어, 설치,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작업 영역을 확장해왔다. 1990년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뒤 서울, 도쿄, 뉴욕, 시카고, 모스크바, 베니스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수묵 중심의 서체 작업을 다양한 매체로 확장시켜 온 작가는 2000년대 초반부터 탐구의 주제를 자신의 이야기로 구체화하여, 가족을 포함한 주변의 다양한 대상을 초상으로 담은 프로젝트를 지속하며 정체성 탐구를 심화하고 있다

표면장력 때문에 생겨난 현상을 조각 작품으로 제작하고 전시해 온 한정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는 평면 위에 그려진 도상이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매우 옵아트스러운 시각의 착난을 이번 전시작품으로 출품했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만드는 작업들을 주로 진행해온 고재욱은 이번 레어아이템에서는 아카데미에서 배운 모더니즘 회화의 특징, 특성을 한 화면에 구현한 페인팅을 보여준다.

집단의 규칙 속에서 발견되는 개별 구성원들의 관계를 미시적으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진행해 온 신이피는 스스로의 작업을 ‘실험실’로 표방하며 과학자의 전지적 시점을 모티브로 대상을 관찰하고, 이를 영상을 기반으로 풀어내고 있는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죽은 사람의 뼈를 실제로 만져보는 생경한 경험을 물성으로 재현해보고자 ‘피머’ 작업을 선보인다. 영상 작업에서 물성을 다루는 작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고재욱 '평면회화 4'
고재욱 '평면회화 4'

기획을 총괄한 박지인 대표는 “우리시대 상품 소비 자체가 우리의 정서와 행위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는 인식을 공유하며 전시가 기획되었다”며 “작품을 상품처럼 팔고자 시늉을 하는 퍼포먼스 같은 전시”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상품이 아무리 작품 같아도 상품이듯이, 작품도 아무리 상품 같아도 작품일 수밖에 없다. 이번 전시 타이틀을 ‘레어아이템’이라고 정한 이유다.

이번 전시기획은 미술생태계에 대한 근본적 통찰에서 출발했다. 모던 아트가 국가의 지원을 탈피하여 그 존립 근거를 마켓에서 발견한 이래, 아이러니컬하게 미술품이 비평과 담론의 매개없이 시장에 직접적으로 상품으로 거래되는 상황은 매우 반미술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반시장적인 레토릭과 제스처 속에서 미술품은 거래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미술의 현실 속에서 미술의 비평과 담론은 매개적이기보다는 독립적으로 작동하여 마켓과 별개로 존속해 마치 담론 지향적 미술과 시장 지향적 미술로 이원화되었다.

‘레어아이템’은 담론 지향적으로 활동했던 미술가들이 시장 지향적인 작품을 마치 퍼포먼스를 하는 태도처럼 의도적으로 제작하여 이원화되어있는 미술적 지향을 통합하려는 시도에서 기획되었다. 국가나 공공기관의 지원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미술과 시장에서 거래되는 미술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원대한 시도다. 미술이 미술일 수 밖에 없다는 미학적 원리와 그에 따른 열망을 확인하려는 전시다.

사실 미술이 품고 있는 가장 큰 미스터리는 돈으로 매긴 작품의 가치다. 다빈치가 그린 유화 소품 한 점이 고급 승용차 수천 대보다 더 비싸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근거는 없다. 한 작품의 미학적 가치가 금전적 가치로 환산되면, 그 작품의 가치는 더 이상 상대적이지 않고 절대적으로 된다. 예술가가 매기는 가격이 예술적 가치가 되었다.

이브 클랭(Yves Klein)이 그렇게 했고, 피에르 만초니(Piero Manzoni), 앤디 워홀(Andy Warhol), 제프 쿤스(Jeff Koons),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무라카미 다케시, 가장 최근에는 가브리엘 오로즈코(Gabriel Orozco)도 상업적으로 매겨진 상업적 가격을 예술의 작품으로 제시하면서 그 예술적 가치를 보여주는 전시를 열었고, 그 작품들을 팔아치웠다.

시장과 상품을 작품 대상이나 소재로 삼은 팝아트가 등장할 무렵, 팝아트에 대한 동시대 예술가들의 혐오와 증오는 매우 극심했다. 윌렘 드 쿠닝이 앤디 워홀에게 공개적으로 “예술과 미의 살인자”로 몰아붙인 사정도 이런 맥락이었다.

가치와 가격, 작품과 상품, 또는 순수 예술과 일상 사이에 그어진 선을 넘어 일상을 예술화하면서, 상품을 작품으로 가격을 가치로 대체하거나 전복시키는 시도야말로-아방가르드 예술이라는 게 오늘날에도 남아있다면- 예술의 최후 거처를 상업적 세계 속에서 예술의 영역을 확보하고, 확장하려는 예술의 종말적인 염원일지도 모른다.

1960년대 말, 앤디 워홀이 상업의 외장 아래서 새로운 예술에 대한 시도를 ‘비즈니스 아트(Business Art)’로 정식화하면서. 비즈니스 아트를 ‘예술 이후 다가올 단계’, 즉 예술 이후의 예술로 여겼다. 워홀이 미술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지만, 워홀이 막상 비즈니스 아트라고 선언한 이후 착수한 대부분의 아트프로젝트는 반비즈니스적이었다. 이익을 본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노골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듯한 퍼포먼스 자체가 사업적 이익보다 언제나 우선 고려되었고 더 중요했다. 워홀리언(warholian)이나 포스트 워홀리언(post-warholian)들도 상업적으로 거둔 엄청난 성공 때문에 오랫동안 논란의 가운데 있었지만, 미술계에서는 그 상업적 행위를 퍼포먼스로 받아주었다. 예술가 자신이 스스로를 홍보하는 광고를 작품으로 제작하거나(제프 쿤스), 수 백점이 넘는 자기 작품만을 소더비에서 스스로 경매에 부쳐 그 판매를 진행하거나(데미안 허스트), 자기가 디자인한 루이비통 백을 자신의 미술관 회고전에 그대로 판다든가(무라카미 하루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모든 물품에 자기가 드로잉 했던 문양을 붙여서 스스로 계산대에 앉아서 판매를 하는 행위(가브리엘 오로즈코)도 마찬가지다.

레어 아이템 쇼도 미술품을 대놓고 상품으로 판매하려는 듯이 조직된 전시다. 상당 기간 아티스트로 활동해왔지만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술시장에서 격리되거나 배제되었던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작품을 사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로 장식적으로 눈에 자극적인 작품을 목적적으로 제작하여 전시하는 프로젝트다. 뒤샹이 일찍이 폐기하라고 했던 ‘망막 예술(Retinal Art)’을 새롭게 제작하여 판매를 시도해 보려는 것이다. 대량 생산의 시대에 등장하는 상품 자체가 집단이나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시키면서 삶의 경험이나 교육의 형태를 매우 응축시켜 나타낸다. 제품이 삶의 양식 혹은 시대정신의 한 부분을 이루면서 우리들의 감정이나 행위, 나아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연출하여 우리를 허구의 세계에 밀어 넣는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상품이란 이미 사람들이 이입되어 사게 되는 가상이 된지 오래다.

상품 자체가 획득한 허구적 유효성은 과거 예술품이 획득했던 가치를 대체한 듯이 보인다. 구찌나 샤넬, 헤르메스가 작품처럼 전시되고 수집의 표적이 되는 것도 당연시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번 전시를 두고 미술평론가 김웅기는 “누구말대로 단군이래 최대 미술호황기의 정점에서 시도되는,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이 전시가 상업적으로 대박이 나야 기획의도가 달성되는 설계지만 이 전시를 빌미로 강도높은 갑논을박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센터코퍼레이션은 시각예술을 중심으로 사람 간 융합과 장르 간 융합을 기획하는 기획자 그룹이다. 을지예술센터를 운영하며 도심 속 예술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예술·과학 융복합 프로젝트인 AVS를 총괄 운영도 한다.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고 구현하는 가운데 최근에는 예술시장에 대한 근본 질문을 가지고 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확장해 가고 있다.

2022년 6월에 설립한 갤러리로이는 다양한 협업과 시도로 동시대 미술을 우리 사회에 보여주고자 한다. 다양한 작가를 프로모션하고, 지속적으로 신진 예술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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