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칼럼] 안철수 의원만 행복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지지율 추락은 국민의힘의 자업자득

히틀러의 나치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다. 그런데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이탈리아 역시 2차 대전에서 패전한 국가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용감한 일부 장병들이 몇몇 국지적 규모의 전투에서 개별적으로 분전한 사례들을 예외로 한다면 이탈리아군 전체적으로 워낙 수준 이하의 졸전을 거듭하다 전쟁 중간에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때문이었다. 이탈리아의 일찍부터 예견되어온 전열 이탈이 전세에 미치는 영향이 오죽이나 미미했으면, 교전국인 영국이나 미국이 아니라 동맹국인 독일이 오히려 더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겠는가?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은 언론과 여론의 집중적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독일의 패배에 비견된다. 반면,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의 지지도 하락은 상대적으로 크게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추축축의 일원이었던 이탈리아의 몰락에 빗댈 수가 있으리라.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선거에 또 나올 경우는 없지만, 국민의힘은 각종 선거전에 자당의 후보자를 계속 출마시켜야만 한다는 데 있다.

용산의 대통령실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해도 내심 나름 상당히 심각한 위기의식에 휩싸여 있는 분위기이다. 김건희 여사가 스페인 왕국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부군인 윤 대통령과 나란히 참석했다가 귀국한 이후로 사실상의 칩거에 돌입한 씁쓸한 현실은 이러한 위기감을 반영하는 뚜렷한 증좌라고 하겠다.

국민의힘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계기로 정당 지지도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앞지르기 시작한 터였다. 그와 같은 우위는 윤핵관으로 흔히 불리는 윤석열 대통령의 심복들이 당대표 이준석을 야밤에 군사쿠데타 자행하듯이 찍어내면서 완전히 사그라졌다.

이준석 대표가 억울하고 부당하게 숙청당했다는 대중적 공감대가 점점 더 확산되면서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에게 오차범위를 훨씬 웃도는 정도로까지 정당 지지도에서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7월 2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32.1퍼센트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41.9퍼센트로 각각 집계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에게 더더욱 뼈아픈 대목은 대구경북 지역을 제외한 전국 모든 곳들에서 지지율이 추월당했다는 것이다. 이준석 대표가 극우 유튜브 상업방송 가로세로연구소가 동을 뜬 것으로 보이는 미심쩍고 근거 불분명한 의혹에 걸려들어 축출당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국민의힘은 광주와 호남을 뺀 나머지 지역 전부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압도하는 상황이었다.

안철수의 ‘생각 없음’을 생각한다

이준석이 비열하고 조직적인 정치공작에 당했다고 판단하는 민심이 나날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음은 무미건조한 통계수치 바깥에서 보다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이준석 대표가 전국을 누비며 벌이는 번개팅 모임 형식의 장외집회에 대한 민중의 열렬한 호응과 뜨거운 참여 열기가 뭘 말하겠는가? 국민의힘은 윤리위원회에서 이준석을 무모하게 중징계한 후과로 민심에 의해 파문당하는 대가를 단단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 이준석 대표 숙청을 정당화하려는 목적으로 제시한 명분이 윤석열의 걸림돌로 작용해온 이준석을 제거해야만 윤 대통령이 국민들 앞에서 자신의 실력과 청사진을 제대로 펼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허나 이준석 징계를 기준으로는 한 달이 가깝도록, 신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한 날짜로 계산한다면 100일이 다가오도록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뭐 하나 깔끔하고 시원하게 내놓은 게 없다. 보여준 것이라곤 민심의 반감만 잔뜩 사고 만 대통령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현란한 의상과 장신구들이 고작이었다.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오른쪽)이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합당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 두번째는 이준석 이준석 대표. (사진=연합뉴스)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오른쪽)이 지난 3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합당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 두번째는 이준석 이준석 대표. (사진=연합뉴스)

새로운 정권이 변변한 비전을 내놓지 못한 사태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대통령 본인이 져야 마땅하다. 그 다음으로 책임이 막중한 인물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역할을 맡았던 안철수 의원이다. 집권 5년간 주안점을 두고서 추진할 주요한 정책과 중요한 국정과제들을 준비하고 입안하는 작업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핵심적 책무인 탓이다.

그럼에도 안철수 의원은 요즘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연일 싱글벙글한 표정이다. 그에게는 눈엣가시처럼 여겨진 이준석 대표가 숙청돼서 기쁜 것일까? 아니면, 윤핵관 중의 윤핵관으로 손꼽히는 장제원 의원으로부터 차기 당수로 전폭적으로 밀어주겠다는 언질을 받아서 행복한 것일까? 이도저도 아니면 2017년 조기대선 국면에서 덜커덕 떼버린 금배지를 다시 달게 된 일이 너무나 만족스러운 걸까?

대다수의 서민들과 중산층이 이 지독한 경제난에 어떻게 먹고살지를 걱정하느라 밤잠을 쉽사리 이루지 못하고, 심지어 현직 대통령의 배우자마저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무서워 행방이 묘연한 상태에서 나 홀로 승승장구하는 안철수를 바라보는 일반 유권자들의 속이 편할 리가 없으리라.

나라의 심급으로 비유한다면 이준석의 국력이 안철수의 국력을 능가한 지 이미 오래이다. 단지 당사자인 안철수 의원 본인과 안 의원 주변의 측근 인사들만이 이를 줄곧 인식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해왔을 뿐이다.

이준석 대표는 2021년 4월의 보궐선거, 2022년 3월의 대통령 선거, 동년 6월 지방선거를 3연속 승리로 이끌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안철수 의원은 2017년의 대통령 선거, 2018년의 지자제 선거, 2020년 총선에서 세 차례 연거푸 궤멸적 참패를 겪었다. 안철수 카드로는 이준석의 공백을 성공적으로 메우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함을 입증하는 결정적 물증일 게다.

‘안철수의 생각’이 무엇일지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던 시기가 과거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도 안철수의 생각을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는다. 오직 필자처럼 안철수와의 모진 인연을 여전히 차마 단호히 끊어내지 못하는 극소수의 인간들만이 안철수의 생각 없음을 안타가운 심정으로 시시때때로 생각할 따름이다.

작금의 안철수는 엘리트주의의 대표적 신봉자가 시나브로 돼버렸다. 그는 스펙 빵빵한 전문가들과,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전·현직 고관대작들 사이에서만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전남 진도에서 평범한 민초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며 가수 송대관과 박상철의 히트곡을 즐겁고 유쾌하게 노래하는 이준석의 소탈하고 대중친화적 면모는 이른바 범생이 안철수가 흉내 내려야 도저히 흉내 낼 수가 없는 야성적이고 개방적인 능숙한 프로 정치인의 경지에 다다른 모습이다.

민심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무리하게 쫓아내고 당심이 선호하는 정치인을 그 자리에 내리꽂은 정당들은 에누리 없이 망했다. 안철수도 한때는 민심이 가열 차게 응원하는 정치인이었다. 그가 보편적 민심이 지지하는 정치인에서 폐쇄적 당심이 선호하는 정치인으로 그 위상과 비중이 쪼그라든 원인들을 여기에서 구태여 꼬치꼬치 규명하고 논의할 필요는 없으리라.

다만, 한 가지 확실한 부분은 ‘안철수 현상’을 아름다운 호시절의 추억으로 오래전에 떠나보낸 오늘날의 안철수로는 이준석을 대신할 수도 없거니와 대신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 필자는 '메시지버스' 운영자(공희준.co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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