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무문 (大道無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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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무문 (大道無門 )
  • 김덕권
  • 승인 2022.08.01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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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남송(南宋)의 무문 혜개(無門慧開 : 1183∼1260) 선사가 불교 수행을 모아 쓴 <무문관(無門關)>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 무문관 첫 문장에 이런 말이 나오지요.

                     「대도무문(大道無門) : 큰길에는 문이 없어서

                      천차유로(千差有路) : 천 개의 다른 길이 있으니,

                      투득차관(透得此關) : 이 관문을 꿰뚫을 수 있다면

                      건곤독보(乾坤獨步) : 하늘과 땅을 홀로 걸으리.」

‘대도무문’은 무문관의 빗장을 뚫고 나가면, 하늘과 땅을 홀로 걸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도를 닦는 것은 쉽게 보이지만, 옳은 길을 찾기는 어렵다.’라는 의미로 고된 수행의 길을 은유(隱惟)적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이렇게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습니다. 그 길 중에 <에움길과 지름길>도 있지요.

‘에움길’의 뜻을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빙 둘러서 가는 멀고 굽은 길’이라는 뜻입니다. ‘둘레를 빙 둘러싸다’라는 동사 ‘예우다’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름길은 질러가서 가까운 길이고, 에움길은 에둘러 가는 먼 길입니다. 길은 순전히 우리말입니다. 한자를 쓰기 전부터 우리는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신라 향가(鄕歌)에도 나옵니다. 그런데 길 이름에는 질러가거나, 넓은 길보다 돌아가거나, 좁고 험한 길에 붙은 이름이 훨씬 많습니다. 마치 우리 인생 사처럼 말입니다. 집 뒤편의 뒤안길,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고샅(길), 꼬불꼬불한 논두렁 위로 난 논틀길,

거칠고 잡풀이 무성한 푸서리길, 좁고 호젓한 오솔길, 휘어진 후밋길, 낮은 산비탈 기슭에 난 자드락길, 돌이 많이 깔린 돌서더릿길이나, 돌너덜길, 사람의 자취가 거의 없는 자욱길, 강가나 바닷가 벼랑의 험한 벼룻길,

또 ‘숫눈길’도 있습니다. 눈이 소복이 내린 뒤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사람의 첫 발자국을 기다리는 길이지요. 이렇게 길이란 단어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참 문학적이고 철학적이고 사유적(思惟的)인 것 같습니다. 길은 단순히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니는 것 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길이 없다거나, 내 갈 길을 가야겠다.’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길은 삶에서의 방법이거나 삶 그 자체라 할 수도 있습니다. 불가(佛家)나 유교, 도교 등, 동양 사상에서의 공통적 이념도 ‘도(道)’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우리는 평생 길 위에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헤매고, 누군가는 잘못된 길로 가고, 누구는 한 길을 묵묵히 걸어갑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길도 있습니다. 탄탄대로가 있으면 막다른 골목도 있지요. 세상에 같은 길은 없습니다. 오직 나만의 길이 있을 뿐입니다.

제가 어려서 본 영화에 그 유명한 흑백 영화 ‘길(La Strada, 1954년)’이 있었습니다. 야수 같은 차력사 ‘잠파노(앤서니 퀸)’와 순진무구한 영혼을 가진 ‘젤소미나(줄리엣 마시나)’는 평생 서커스 동반자로 길을 떠돕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젤소미나의 죽음을 알고, 잠파노는 짐승처럼 울부짖습니다.

길이 끝나는 바닷가에서 말입니다. 애절하게 울려 퍼지는 ‘니노 로타’의 그 유명한 트럼펫 연주 테마 음악이 이 나이가 되어서도 생생합니다.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는 명시 <가지 않은 길>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길은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도 존재하지만 떠나기 위해서도 존재합니다. ‘길을 간다’라는 말보다 ‘길을 떠난다.’라는 말이 왠지 낭만적이거나, 애잔하거나, 결연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우리는 길 위에서 길을 물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입신양명의 길이거나, 고행의 길이거나, 득도의 길이거나, 산티아고 길이거나, 바이칼 호수의 자작나무 숲길이거나, 동네 둘레길이거나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네 인생이 곧 길이요, 우리의 발이 삶입니다. 결국은 ‘나의 길’을 가는 것이지요.

지름길을 택할 것인가? 에움길로 돌아서 갈 것인가? 인생 길은 결국 속도와 방향의 문제입니다. 지름길로 가면 일찍 이루겠지만, 그만큼 삶에서 누락 되고 생략되는 게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움길’로 가면 늦지만, 많이 볼 것입니다. 꽃구경도 하고, 새소리, 바람 소리도 듣고, 우리 도반(道伴) 동지(同志), 동반자와 대화도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가는 지름길이 아니고, 수만 갈래의 에움길을 돌고 돌아서 이루어지기 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특히 우리는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衆生相) · 수자상(壽者相)’ 이 네 가지 상을 가지고는 대도무문의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아상은 자기 본위의 자존심이고, 인상은 인간 본위의 국한됨이며, 중생상은 타락하여 향상이 없음이고, 수자상은 연령이나 연조를 앞세우는 마음이지요.

이 사상(四相)만 여의면 부처라 했습니다. 대도에는 문이 없으니 그 어떤 길로도 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상을 여의고, 조건 없이 베풀며, 이 큰 ’대도무문‘의 길을 함께 가면 어떨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8월 1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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