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고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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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고찰(1)
  • 김덕권
  • 승인 2022.08.08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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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생각해 보면 오래 살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정말 ‘고려장(高麗葬)’을 당할 나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온갖 풍상(風霜) 다 겪었습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이만하면 한 생, 잘 살다 가는 것 아닌가요? 요즘 들어 갑자기 평생 함께해온 아내가 너무 힘들어합니다.

그런데 마침 소설가 김훈(74세) 선생의 글 <죽음의 고찰>이라는 글을 읽고 여러모로 공감이 가, 미구에 닥칠 죽음에 대비하자는 뜻에서 2회에 걸쳐 이 글을 올립니다.

【팔십을 바라보게 되니까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벗들한테서 소식이 오는데, 죽었다는 소식이다. 살아 있다는 소식은 오지 않으니까, 소식이 없으면 살아 있는 것이다. 지난달에도 형 뻘 되는 벗이 죽어서 장사를 치르느라고 화장장에 갔었다. 화장장 정문에서 부터 영구 차와 버스들이 밀려 있었다.

관이 전기로 속으로 내려가면 고인의 이름 밑에 ‘소각 중’이라는 문자 등이 켜지고, 40분 쯤 지나니까 ‘소각 완료’, 또 10분 쯤 지나니까 ‘냉각 중’이라는 글자가 켜졌다. 10년 쯤 전에는 소각에서 냉각까지 100분 정도 걸렸는데, 이제는 50분으로 줄었다. 기술이 크게 진보 했고, 의전 관리하는 절차도 세련되었다.

‘냉각 완료’가 되면 흰 뼛 가루가 줄줄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서 나오는데, 성인, 한 사람 분이 한 되 반 정도였다. 직원이 뼛가루를 봉투에 담아서 유족들에게 하나 씩 나누어 주었다. 유족들은 미리 준비한 옹기에 뼛가루를 담아서 목에 걸고 돌아갔다.

원통하게 비명횡사 한 경우가 아니면, 요즘에는 유족들도 별로 울지 않는다. 부모를 따라서 화장장에 온 청소년들은 대기실에 모여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제 입으로 “우리는 호상(喪)입니다”라며 문상객을 맞는 상주도 있었다.

그날 세 살 난 아기가 소각되었다. 종이로 만든 작은 관이 내려갈 때, 젊은 엄마는 돌아서서 울었다. 아기의 뼛가루는 서너 홉쯤 되었을 터이다.​ 뼛가루는 흰 분말에 흐린 기운이 스며서 안개 색깔이었다. 입자가 고와서 먼지처럼 보였다. ​아무런 질량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체의 먼 흔적이나 그림자였다. ​명사라기 보다는 ‘흐린’이라는 형용사에 가까웠다.​ 뼛가루의 침묵은 완강했고, 범접할 수 없는 적막 속에서 세상과 작별하고 있었다.​ 금방 있던 사람이 금방 없어졌는데, 뼛가루는 남은 사람들의 슬픔이나 애도와는 사소한 관련도 없었고,​ 이 언어도단(言語道斷)은 인간 생명의 종말로서 합당하고 편안해 보였다.​

죽으면 말 길이 끊어져서 죽은 자는 산 자에게 죽음의 내용을 전할 수 없고,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인지할 수 없다.​ 인간은 그저 죽을 뿐,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다.​ 화장장에 다녀온 날 저녁마다 삶의 무거움과 죽음의 가벼움을 생각했다.​ 죽음이 저토록 가벼우므로 나는 남은 삶의 하중을 버티어낼 수 있다.​

뼛가루 한 되 반은 인간 육체의 마지막 잔해로서 많지도 적지도 않고, 적당해 보였다.​ 죽음은 날이 저물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자연현상으로, 애도할 만한 사태가 아니었다.​ 뼛가루를 들여다보니까, 일상생활 하듯이, 세수하고 면도를 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 들이지 말고 죽자,​ 건강보험 재정 축 내지 말고 죽자,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지 말고 가자, 질 척 거리지 말고 가자,​ 지저분한 것들을 남기지 말고 가자, ​빌려 온 것 있으면 다 갚고 가자,​ 남은 것 있으면 다 주고 가자,​ 입던 옷 깨끗이 빨아 입고 가자, ​관은 중저가가 좋겠지.​ 가면서 사람 불러 모으지 말자,​ 빈소에서는 고스톱을 금한다고 미리 말해두자….​

가볍게 죽기 위해서는 미리 정리해 놓을 일이 있다.​ 내 작업실의 서랍과 수납 장, 책장을 들여다보았더니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의 거의 전부가 쓰레기였다.​ 이 쓰레기 더미 속에서 한 생애가 지나갔다.​ 똥을 백자 항아리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둔 꼴이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표가 안 나게 이 쓰레기들을 내다 버린다. ​드나들 때마다 조금씩 쇼핑백에 넣어서 끌어낸다.​ 나는 이제 높은 산에 오르지 못한다.​ 등산 장비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은 모두 젊은이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나머지는 버렸다. 책은 버리기 쉬운데, 헌 신발이나 낡은 등산 화를 버리기는 슬프다.​

뒤축이 닳고 찌그러진 신발은 내 몸뚱이를 싣고 이 세상의 거리를 쏘다닌, 나의 분신이며 동반자이다.​ 헌 신발은 연민 할 수밖에 없는 표정을 지니고 있다.​ 헌 신발은 불쌍하다. 그래도 나는 내다 버렸다.​

뼛가루에 무슨 연민이 있겠는가.​ 유언 하기는 쑥스럽지만 꼭 해야 한다면 아주 쉽고 일상적인 걸로 하고 싶다.​ “딸아, 잘생긴 건달 놈들을 조심해라.​ 아들아, 혀를 너무 빨리 놀리지 마라.” 이 정도면 어떨까 싶다.​】 -(2회에 계속)-

어떻습니까? 김훈 선생의 이 죽음에 대한 관조(觀照)가요! 저도 진 즉, 유언 해 둔 지 오래 입니다. 김훈 선생의 유언처럼 유언은 간략한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저 <인생을 조금은 바보같이, 무조건 베풀며, 세상을 위해 맨발로 뛰라> 정도로 할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8월 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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