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김훈 작가 '하얼빈', "동양평화 지금이 더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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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김훈 작가 '하얼빈', "동양평화 지금이 더 위기"
  • 김예원 기자
  • 승인 2022.08.07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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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프리존]김예원 기자= 김훈,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인간 안중근의 고뇌가 소설로 재현됐다.  "안중근을 말할 때 민족주의적 열정과 영웅성을 뺄 순 없죠. 하지만 그의 청춘과 영혼, 생명력을 묘사해보려고 한 게 제 소망이었어요.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가 운명적으로 하얼빈에서 만나 파국을 이루는 그런 비극성과 그 안에 든 희망까지도요." "안중근 시대 중국은 다 무너져가고 일본과 서양 제국주의의 먹잇감이 돼 있었어요. 지금 중국은 세계 최강국으로 미국과 쌍벽을 이루죠. 중국은 북한과 군사동맹을 만들고 있고, 일본은 대응하기 위해 군사 대국을 지향하고 있고요. 동양 평화론은 그때보다 더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 안중근 시대의 문제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뜻이에요."

수많은 문학과 예술 작품에서 다뤄진 안중근 의사, 김훈(74)은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을 쓴 소설가 짧고 강렬한 삶을 살았던 안중근 의사에 관한 소설을 쓰고자 오랫동안 고민한 이유는 명료했다.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는 김훈은 100%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짐을 내려놓은 듯 보였다.

김훈은 지난 3일 안중근 의사의 생애 가운데서 거사 직전과 그리고 그 후의 짧은 시간을 압축적으로 다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신작 장편소설 '하얼빈'(문학동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젊었을 때 안중근 소설을 쓰기로 한 다음 방치했다. 밥벌이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안중근을 감당해내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는 지난해 건강이 나빠졌고 올해 봄이 돼서야 회복했다. 몸을 추스르며 여생의 시간을 생각했고, 더는 미뤄둘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소설을 써 내려갔다. 안중근은 자신에게 '필생의 과업'은 아니고 '방치한 작품'이라고 했다. 원래 그가 처음에 정한 책 제목은 '총의 노래'도 '하얼빈'도 아닌 '하얼빈에서 만나자'다. 하지만 소설의 주제를 과도하게 노출하는 것 같다는 생각, 한국인들에게 맺힌 이미지 등을 고려해 도시에 주목하고자 '하얼빈'으로 바꿨다.

안중근 의사가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서 하얼빈으로 가는 가는 일주일, 그동안 또 이토는 하얼빈으로 오고 있었고 두 사람이 거사를 하고 사형을 당하기까지 5개월 정도의 시간 배경을 소설에 담았다. 안중근과 이토의 갈등, 문명개화와 약육강식이란 시대적 갈등, 안중근이란 천주교 신자와 제국주의에 반쯤 발을 걸친 신부 간 갈등이다. 다른 대목보다 특히 김훈이 공들여 쓴 부분이다. 그는 "일본인들이 작성한 안중근 신문조서를 우연히 읽고 말도 못 할 충격을 받았다"며 '칼의 노래' 집필 동기가 된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함께 이 신문조서를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책으로 꼽았다. '칼의 노래'가 2001년 5월에 나왔으니 21년 만에 과제가 마무리된 셈이다.

김훈은 안중근과 동지 우덕순이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허름한 술집에서 이토가 하얼빈에 온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거사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언급하며 "가장 신바람 나고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대의명분'에 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젊은이다운 에너지가 폭발한다. 시대 전체에 대한 고뇌는 무겁지만, 처신은 바람처럼 가벼웠다"며 "청춘이 아름답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거구나 싶었다. 가장 놀랍고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소설은 안중근의 심리 변화에 초점을 맞추지만, 안중근과 대척점에 있는 이토의 심리도 곳곳에서 보여준다. 이토는 을사늑약 이후 조선 내 소요 사태를 걱정하고, 조선의 초라함을 드러낼 수 있는 사진 촬영을 지시하며 흡족해한다. 하얼빈으로 떠나기 전엔 "조선이 평화와 독립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길은 제국의 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훈은 "일본에서 이토의 성장기와 소년기, 전성기의 족적을 찾아 여러 곳을 돌아봤는데 (분량을) 극도로 줄이느라 소설에 반영하지 못했다"면서도 "이토란 인간의 분위기를 아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안중근을 쉽게 쓰지 못한 이유도 이토의 내면을 제대로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안중근의 총에 맞아 죽어 마땅한 쓰레기 같은 인물이란 게 이토에 대한 지배적 시각이었다"며 "한 인간 안에서 문명개화란 큰 과업과 약육강식이란 야만성이 동시에 형성되고 존재한다는 것과 이토가 그것을 이 세계에서 어떻게 실현하려고 한 것인가를 묘사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김훈은 이토와 달리 안중근 취재를 좀 더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올해 초 하바롭스크와 하얼빈, 대련으로 이어지는 철도를 타고 안중근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자 준비하다가 무산됐다. 그는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자신 있게 글을 써낼 수 있는데 이번에는 그런 장악력이 전혀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그는 소설을 쓰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는 안중근의 가족 이야기를 쓸 때라고 했다.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이토를 저격하는데, 그의 부인과 자녀들은 다음 날인 27일 하얼빈에 도착한다. 안중근은 면회 온 동생 정근에게 "내가 내 처에게 못 할 일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김훈은 "그런 끔찍하고 거대한 고통을 뭉개고 갈 수밖에 없었다"며 "이걸 다 표현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안중근의 부인 김아려는 조선 여성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생애를 산 사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가의 말'에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고 쓴 것을 두고 "안중근이 자기 시대에 이토를 적으로 생각해서 쏴 죽였다고 사명을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동양 평화의 명분은 지금도 살아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중근은 결국 문명개화로 위장된 약육강식에 저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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