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그중에 자연 고수(高手)와 하수(下手)의 도반(道伴)이나 동지(同志)들을 보게 됩니다. 고수를 보면 감탄과 존경심이 일고, 하수를 보면 참 민망하기 짝이 없지요.

공자는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編)>에서 하수를 면하는 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군자는 모름지기 일을 민첩하게 하되, 말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진짜 고수는 이런 사람이 아닐까요?

원불교의 2대 종법사를 역임하신 정산(鼎山) 종사께서는 스승님께서 어떤 일을 시킬지라도 한마음으로 받드셨습니다. 저 역시 소태산 부처님과 정산 종사, 그리고 저의 스승의 말씀을 제 생명과 같이 받들 뿐, 단 한 번도 의심하거나 명을 어겨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재주가 늘고 힘이 생기면 스승을 자기 잣대로 재고, 사사로운 마음으로 대하기 쉽습니다. 그러하면 법맥(法脈)이 끊어지고 큰 사람이 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야말로 스승을 의심하지 않고, 스승의 지도에 순응하며, 어떤 지시도 다 달게 받고 불평이 없으며, 스승에게 자기의 허물을 도무지 숨기거나 속이지 않으면 그야말로 능히 불조(佛祖)의 법기(法器)라 할 수 있지요.

아마 이 정도의 인물이라 야 진정한 고수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만약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그 결정이 눈앞의 작은 이익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전체 국면을 살펴보고 내린 결정이어야만 하지요.

예전에 박정희 대통령이 ‘소양강 댐’을 건설하려고 국내 대표 건설사 4곳을 불렀습니다. 각 건설사는 어떻게 하면 수주(受注)를 받을 것인지 고민할 때, 한 건설사는 서울 지도를 펼쳐 놓고, 상습 침수 구역 중, ‘소양강 댐’이 건설되면, 침수되지 않을 지역을 찾아 그곳의 땅을 싸게 매입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상습 침수 구역’이라 거들떠보지도 않는 땅이라, 그 건설 회사를 투기꾼이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 땅이 바로 지금의 ‘서울 강남구 압구정’ 일대이지요. 지금도 압구정에는 현대건설사 땅이 많이 있고, 백화점도 있습니다. 남들이 댐 공사로 돈을 벌려고 치열하게 경쟁할 때, 한 단계 더 멀리 본다는 것, 이것이 진정한 고수이고, ‘성공하는 비결’이 아닐까요?

어느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얼음이 녹으면 뭐가 되는지 물었더니, 대부분이 물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대답하길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우리는 남들보다 한 단계, 한걸음, 더 멀리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고수입니다.

‘임계점(臨界點)’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이 끓는 온도가 100 도인데, 99도까지는 물의 성질이 변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1도가 더 올라가야 물이 끓고 성질이 변하지요. 이같이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1도, 마지막 남은 1도의 차입니다. 많은 수치도 아닌 1도의 차이가 고수와 하수의 차입니다.

하지만 고수와 하수의 격차는 엄청납니다. 모든 면에서 마지막 남은 고지를 눈앞에 두고 포기하느냐 아니면 정복하느냐 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법을 이어받는 사람이 고수입니다.

정산 송규 종사는 〈정산종사 법어〉 ‘기연편’ 4장 법문을 통해, “내 일찍 새 부처님께 물건으로 바친 것은 하나도 없되 ‘정(情)’과 ‘의(義)’에 조금도 섭섭함이 없었느니, 마음으로 한때도 그 어른을 떠나 본 일과 일로, 한 번도 그 어른의 뜻을 거슬러 본 일이 없었느니라.”라고 밝히셨습니다.

이러한 정산 종사에 대해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내가 송규(宋奎)와 그 아우 송도성(宋道成)을 만난 후, 그들로 인하여 크게 걱정하여 본 일이 없었고, 무슨 일이나 내가 시켜서 아니 한 일과 두 번 시켜 본 일이 없었노라.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그들의 마음이 되고, 그들의 마음이 곧 나의 마음이 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어찌 스승과 제자, 사제 간의 표본이 아니겠습니까? 도가(道家에서는 공부 인의 신성(信誠)을 으뜸 가치로 삼습니다. 신(信)이 바로 법을 담는 그릇이 되기 때문이지요. 법기란 금강산 같은 인품을 조성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금강산 같은 인품이란, 순실(純實)하고 순연(純然)하여 본래 면목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신성(信誠)과 의지(意志)를 변하지 아니하면 분명 훌륭한 인격을 이루고 인격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고, 스승의 법을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살아가면서 하수로 살 수 없습니다. 내가 못 배우고 비록 머리가 아둔하더라도, 신성을 바로 세우고, 성불제중의 서원(誓願)을 세워, <지성여불(至誠如佛)>의 정신으로 달려간다면, 아마도 인생 최고의 고수인 불 보살(佛菩薩)의 경지에 반드시 오를 것입니다.

저는 머리가 나빠 다른 도반이나 동지처럼 뛰어나거나 민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했지요. 그러나 《일원대도(一圓大道)》에 귀의한 후, 서원을 세우고, 스승의 가르침 대로 신앙과 수행에 일직 심으로 달려와 오늘날 안빈낙도(安貧樂道)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이렇게 삼세(三世)의 모든 스승을 내 부모처럼 추모하고 존숭(尊崇)하며, 그 가르침의 대의(大義)와 정신을 이어받아, 세상을 유익주며,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덕화만발 가족이 인생의 진정한 고수 가 아닐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8월 2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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