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중인 서울신문 가판 좌우단행본도 수십만권 팔렸다
여주인공이 바람나 가출하지만 베드신은 없는 교훈적 결말
하지만 겉보기와 다른 속내 당대 특권층 치부와 정경유착·선거부정 까발겼다
소설가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의 ‘나는 너를 싫어한다’ 소설과 함께
 제 발 저린 이들의 반발을 불렀다
그 무렵 한글 세대·여성 등 독자층 커지며 ‘주부생활’ ‘여원’ 등 여성잡지가 등장했다

대형 베스트셀러 ‘자유부인’의 오해와 진실 

 

전쟁이 끝난 뒤 일본어 교육을 받지 않은 ‘한글 세대’가 등장하면서 대중잡지들이 잇달아 창간됐다. 1956년 무렵 한 소년이 차 안에 있는 승객에게 잡지를 사라고 권하고 있다.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정비석의 <자유부인>(1954) 이야기로부터 그 시대의 독서문화와 한국사회를 말하는 것은 사실 좀 상투적이고 피곤한 일이다.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이 실제로 얼마나 이 소설을 읽었는지는 모르되, <자유부인>은 정말 많이 그리고 쉽게 이야기돼 왔기 때문이다. <자유부인>은 1956·57년, 1981·86년 등 4번 이상 영화화됐고 바람난 유부녀가 벌이는 외설적인 대중서사의 대표가 됐다. ‘애마’ ‘젖소’(심지어 ‘김밥’) 따위의 어휘와 어울린 각종 ‘부인’과 그들의 외로움(?)을 다룬 대중서사의 원조인 것이다. ‘자유부인사’를 쓸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1950년대 중후반 한국 사회에서의 <자유부인>이 가진 문화 정치적 함의는 그런 것을 넘어선다.

<자유부인>은 연재 중이던 당시 <서울신문>의 판매부수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단행본도 수십만권이 팔렸는데, 기실 좋은 의미의 인기라기보다는 시끌벅적한 논란·스캔들 등을 수반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알다시피 논란은 고매한 대학교수(국어국문학과의 국어학 전공 교수!)의 부인이 바람이 나서 급기야 집을 나가고, 교수도 젊은 여성 타이피스트의 종아리 같은 데에 관심을 갖는다는 줄거리에 심히 불쾌감을 느낀 서울대 법대 교수 황산덕의 공격으로부터 시작된다.(<대학신문> 1954년 3월1일치) 1956년에 처음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도, 늘 점잖고 고뇌가 많았던 문교부가 키스 및 포옹 장면(정사가 아니다) 약 100피트 정도를 잘라내는 바람에, 표현의 자유 논쟁을 야기하고 대중의 관심을 더 크게 만들었다. 이런 견지에서 <자유부인>은 진정한(?) 의미의 현대적인 베스트셀러다. 책이나 영화가 대규모로 흥행하기 위해서는 텍스트 그 자체나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한 이슈화(오해, 논란, 법정 공방 등)가 수반된다. 그것은 거의 필연적인 것이며, 논란과 잡음은 때로 출판사나 영화자본에 의해 일부러 조직되기도 한다. 유명인이나 정치인들도 의도적으로 거기 개입한다.

 

정비석 <자유부인> 표지.  <자유부인>은 단지 여성의 욕망을 남성의 시선으로 과장하여 ‘시전’하는 포르노의 기본 골조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점<자유부인>은 단지 여성의 욕망을 남성의 시선으로 과장하여 ‘시전’하는 포르노의 기본 골조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점은 약하다. 주인공 오선영은 남자들의 유혹에 이끌리고 집을 나갔으면서도 소설 속에서 끝내 ‘외간 남자’와 섹스하지 못한다. 영화에도 베드신은 없다. ‘결정적인 순간’에 꼭 뭐가 나타나 방해한다. 남자였던 작가나 당대의 ‘상식’은 그녀의 ‘자유’를 심히 제약했던 것이다. 사실 작가는 당시의 ‘된장녀’로 지목된 오선영과 그 친구들을 꾸짖기 일쑤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여성 ‘혐오발화’에 비교될 수 있는 것도 많다. 더구나 결말에서 작가는 오선영을 ‘민족-남편’ 앞에 무릎 꿇린다. 이승만이 주창한 맞춤법 간소화 반대 학술 세미나에 나타난 남편이 얼마나 훌륭한 민족주의 학자인가를 깨닫고 참회한다는 황당한 귀결이다.

그러니까 말하고자 한 것과 보여준 것이 서로 모순되는 대중서사의 전형적인 효과를 가진 것이 <자유부인>이다. 결말이나 표면적인 메시지는 상식적이고 교훈적인데, 그걸 말해 가는 과정은 해당 사회의 모순과 인간의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지배적인 규범과 윤리의 허위가 폭로되도록 한다. 이처럼 문제적인 베스트셀러는 등장인물의 입이나 행동을 통해 지배질서를 비판·공격하며, 여성·노동자·하층민 등 억압당한 존재들이 성적·계급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상황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이승만 정부의 정치인과 공무원, 그리고 교수·사업가 등 당대 특권층의 치부는 물론, 특히 정경유착과 여당의 선거 행태 등 총체적인 ‘정치 부패’를 까발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부인>은 암암리에 민중의 분노와 여성의 ‘해방’을 담고 있고, 일종의 ‘정치 포르노’로 수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프랑스 사학자들은 대혁명 전야에 발흥한 왕족과 특권귀족을 등장시킨 정치 포르노와 혁명의 관계를 밝히려 애쓴 바 있다. 그러니 우리도 <자유부인>이 혹 4·19혁명의 텍스트였는지 모른다 말하면 과도한 것일까?

‘자유부인’은 혼자가 아니었다

 

1956년 무렵 서울 소공동 책 가판대 풍경. 일본 잡지들과 영어 원서들이 보인다. 사진작가 한영수 작품집 <서울, 모던 타임즈>(한스그래픽, 2014)에 실려 있는 사진이다.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그왜 ‘자유’라는 엄숙한 단어와 ‘여성’이 결합하여 폭발적인 관심을 끌게 됐을까? 1950년대 ‘여성의 자유’ 또는 ‘자유 부인’은 한국이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세계에 편입되면서 생긴 일종의 가상이거나 문화적 변동의 부산물이다. 당시 한국인에게 아직 낯설었던 ‘자유민주주의’는 전쟁이 야기한 사회변동과 혼동되거나 겹쳤던 것이다. 전쟁 탓에 많은 남성이 죽거나 전통사회적인 가족이 붕괴되며, 여성의 경제·사회활동이 자연스레 확대되었다. 종래의 가부장적 질서는 약화되고 아프레걸 또는 아프레-주부들이 도시와 전선의 후방에서 등장했다. ‘아프레’는 ‘전쟁 후’를 뜻하는 신어였는데 특히 ‘아프레 걸’은 도덕적인 관념에 구애되지 않고 성적으로 자유로운 여성을 의미했다. 남자들의 로망에 맞게 순종적이고 희생적인 주부나 순애보를 실천하는 처녀도 여전히 많았겠지만, 남자들의 눈에 훨씬 잘 띄며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은 서구적이고 소비지향적인 여성들이었다. 그래서 많은 남성들은 여성들의 ‘자유’에 위협감을 느끼며, 이들을 한편으로는 ‘양공주’로, 다른 한편으론 유한·특권계층으로 지목했다.

장관 부인은 왜 김훈의 아버지를 핍박했나

그래서 특권계층 여성의 행태를 증오·비판하는 소설이 나오고 스캔들을 일으킨 것도 <자유부인>이 처음은 아니었다. 한때 김구의 비서였고 작가 김훈의 아버지이기도 한 소설가 김광주의 ‘나는 너를 싫어한다’는 1952년 <자유세계> 창간호에 실렸다. 이 작품에서 김광주는 ‘선전부 장관’의 부인이 성악가인 청년을 유혹한다는 설정을 통해 ‘총체적인 의미’의 특권층 여성의 부패를 비판한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에서 신경증적인 순결 콤플렉스에 걸려 있는 것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주인공 ‘나’는 여성의 춤 자체가 성욕의 표현이라 생각하고, 또 장관 부인이 자기에게 술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해서 호텔로 데려갔음에도 ‘아무 일’ 없이 ‘순결’을 지켰다는 것에 무한한 안도와 자부심을 느낀다. 성역할의 완벽한 역전이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소설 바깥에서 일어났다. 실제 이철원 공보처장(오늘날의 문화관광부 장관)의 부인이 소설 속 ‘선전부장관 부인’은 바로 자기를 모델로 한 거라 생각하고 심히 불쾌하게 생각한 나머지 김광주를 찾아가 따졌다. 1952년 2월17일 임시수도 부산 시내 록원다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김광주는 여주인공이 가상의 인물일 뿐이라 항변했으나, 장관 부인은 굽히지 않고 소설을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 이미 배포된 잡지의 지면에 실린 소설을 취소하라니 들어줄 수 없는 요구다. 대화가 공전하자 공보처장의 부인은 집에까지 김광주를 데리고 갔고, 공보처장의 측근이 김광주를 느닷없이 폭행했다. 당시 <경향신문>에 따르면 김광주는 “머리털이 수없이 빠지고 다리에 타박상을” 입는 “백주테로를” 당한 채 할 수 없이 사과장을 써야 했다. “소설 여주인공이 당신과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이 일부에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본의는 아니었으나 사과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져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김광주 소설을 영화로 만든 <나는 너를 싫어한다> 포스터.

그런데 남편인 공보처장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해서 외려 문제는 커졌다. 잡지 <자유세계>를 발매금지·압수처분하고 각 신문사에 ‘김광주 수난 사건’에 관하여 쓰지 말아달라는 공문을 장관 직인을 찍어 돌렸다. 공보처장 자신이 가진 검열 권력을 남용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문학계와 시민사회는 크게 반발했다. 장관의 ‘갑질’과 특권층 여성에 대한 혐오(‘나는 너를 싫어한다’)와 표현의 자유 문제 들이 겹친 복잡한 사건이다.
4·19와 5·16 이후에 급격히 고갈되는 1950년대식 여성의 ‘자유’는 ‘도시-고학력-여성-문학’의 요소들을 통해 ‘대표’된 게 아닌가 싶다. 광범위한 농어촌 지역뿐 아니라 도시에도 봉건적 젠더 질서의 힘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이 허다했고 순결 이데올로기나 축첩제 등 여성의 ‘자유’와 정반대 방향에 있는 힘도 여전했다.

한국문학 독자의 재구성

해방을 기점으로 문학을 중심으로 교양과 독자층은 새롭게 재생산된다. 이는 식민지 말기의 독서와 독자의 상황으로부터 연속된 면과 단절된 면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일본어로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한글세대’ 독자가 형성된 것은 단절적인 문화적 지층을 만들었다. 김현 같은 4·19세대는 이런 점을 늘 강조했다. 해방 이후의 학교교육과 문학제도는 다량의 독자를 신속히 길러냈다. 학교교육 이수자의 수와 대중문학·대중잡지의 발흥이 그 증거다.

여성 독자의 성장도 그 일환이다. 그것은 대중 성장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여성 독서는 그 자체로 독자성도 갖고 있다. 여성 독자층의 성장과 재구성은 중요하다. 여성이 책을 읽고 교육을 받아 뭔가 인식하고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전체 인민의 교육평등 문제와 젠더 관계의 시험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오늘날의 박용성이나 장동민 같은 남자뿐 아니라 여성 교육 및 여성지성에 대한 남성 공포와 혐오의 전통은 강했다.

1950~60년대에 걸쳐 새로운 여성 독자와 작가 그리고 그들을 위한 <주부생활> <여원> <여학생> 같은 매체가 등장했다. ‘문학소녀’라는 말과 그 이미지도 확고해졌다. 전혜린·손소희·한말숙 같은 최고급 교육을 받은 작가들 외에도 박계형·최희숙 같은 신세대 여성 작가가 나타나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식민지시대로부터 연속된 독서문화의 요소도 많았다. 식민지 엘리트들이 공식제도를 장악하고 있었고 일본 책과 일본어 교양은 여전히 영향이 컸다. 그리고 사회적 심성의 ‘장기지속’을 보여주는 증거도 있었으니 1950~60년대 출판시장에서 이광수·심훈 등을 위시한 1920~30년대의 작가들의 <흙> <사랑> <상록수> 같은 소설이 독서문화의 일각을 담당했다.

1955년 이후 출판자본주의와 독서

출판문화는 1950년대 중반부터 ‘발전’과 ‘회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50년대 초중반에는 한국 문화사에서 잊을 수 없는 중요한 잡지가 여럿 새로 나왔다. 1952년에서 56년 사이에 <학원> <사상계> <문학예술> <아리랑> <여원> <현대문학> <자유문학> <명랑> 등이 창간됐다. 그리고 전후 베이비붐의 상징처럼 돼 있는 개띠 해 1958년은 독서 문화사에 있어서도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상시적인 자금난과 용지난을 겪던 출판계가 다소간 안정되며 성장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전체 간행물의 규모 자체도 전년에 비해 20%나 늘어났다. 규모와 구조의 호전은 출판 전영역에 걸친 것이었다. <우리말 큰사전> <과학대사전> <이조실록>처럼 대자본과 대규모 집필·편집진이 필요한 책들이 발간되는가 하면 ‘문학전집’도 다시 나타났다. 정음사·동아출판사·을유문화사 등이 각각 대규모 세계문학, 한국문학 전집 발간에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1950년대 후반의 이런 정황은 한국 출판자본주의의 새로운 국면을 넘는 중대한 문화사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음을 뜻한다. 첫째, 출판시장의 규모와 메커니즘이 달라져 대형 기획출판과 함께 외판·할부판매라는 1960~70년대의 지배적인 마케팅 방식이 정착했다. 둘째, 한국 출판계가 거대한 일제 출판시장의 일개 지역이었던 식민지 상황, 또한 미국의 재정과 용지 원조에 의해서 지탱 가능하던 전후 상황으로부터 문화적·경제적으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 출판문화의 점진적·실질적 ‘독립’은 우리말로 된 문학과 학문 활동의 본격화와 조응하는 과정이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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