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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칼럼] 복마전
  • 김덕권
  • 승인 2018.02.13 08:09
  • 수정 2018.02.14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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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산 김덕권칼럼니스트, 전원불교문인회장

복마전

작년 겨울 우리는 촛불광장에서「이게 나라냐? 나라다운 나라, 나라를 나라답게! 이게 나라다!」라는 외침을 목청껏 소리 질렀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나라가 나라다운 나라가 되어졌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며칠 전 정부는 중앙 공공기관 330곳 중 부정청탁 지시나 서류조작 등 채용비리 혐의가 짙은 33개 기관, 83건을 수사의뢰하고, 채용업무 처리과정 중 중대한 과실ㆍ착오 등 채용비리 개연성이 있는 66개 기관의 255건에 대해 징계ㆍ문책을 요구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장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공공기관 10곳 중 8곳은 채용비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복마전(伏魔殿)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북송(北宋) 인종(仁宗) 때 전국적으로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인종은 신주(信州)의 용호산(龍虎山)에서 수도하고 있는 장진인(張眞人)에게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한 기도를 올려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태위(太尉) 홍신(洪信)을 보냈지요. 홍신이 도착했을 때 장진인은 마침 외출 중이었습니다. 홍신은 다른 진인의 안내를 받아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위에 금색 글씨로 ‘복마지전(伏魔之殿)’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 있는 전각을 발견했습니다.

홍신이 문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이 전각은 뭐 하는 곳이오?” “이곳은 전대의 노조천사(老祖天師)가 마왕(魔王)을 가두어 둔 전각입니다.” “왜 위에 저렇게 첩첩이 엄청나게 많은 종이로 봉해 놓았소?” “이것은 대당동현(大唐洞玄) 국사가 마왕을 여기에 가두어 놓고 봉한 것입니다. 1대 천사께서 손수 봉하시면서 자자손손이 함부로 열지 못하도록 한 것이지요. 마왕이 도망하면 아주 문제가 커지니까요.”

그러면서 진인은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된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홍신은 더욱 호기심이 발동하여 진인을 거의 위협하다시피 하여 문을 열게 하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신전 한복판에 높이 5∼6척의 석비가 있는데 아래는 돌 거북의 좌대가 있고 태반이 흙에 묻혀 있었습니다. 석비의 앞면을 비춰 보니 온통 도가(道家)의 글로 가득 차 있어 아무도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석비의 뒷면을 비춰 보니 ‘홍을 만나면 열리리라.’라는 글이 큰 글자로 새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홍신은 자신이야말로 이 석비를 파낼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석비를 파내도록 했습니다. 한창 파내어 들어가자 갑자기 굉음(轟音)과 함께 검은 연기가 치솟았습니다. 이어 백 열 줄기의 금빛으로 변하면서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버렸습니다. 이런 괴변에 홍신 등은 놀라 혼비백산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수호전(水滸傳)》제1회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복마전’이 유래하여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의 온상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촛불시민의 혁명이 일어난 지가 얼마인데, 공공기관과 공직 유관단체 1190곳 가운데 946곳에서 4788건의 채용비리가 있었다는 것은 정말 공공기관들이 복마전임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지요? 정부의 발표에 공공기관 시험을 준비하던 2030세대는 허탈감을 드러냈습니다. 비교적 공정하다고 알려진 공공기관에서도 채용비리가 사실상 당연하게 이뤄져 왔다는 사실에 공공기관 지원을 포기하겠다는 청년들도 나타났습니다.

정부의 발표에 공공기관 채용을 준비하던 취업준비생들이 분노했습니다. 지난 30일 서울의 한 사립대학 커뮤니티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 차라리 사기업이 더 공정하겠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토익 점수와 학점 등 계량적인 평가가 주를 이루는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채용이 더 공정할 줄 알았는데, 사기업만도 못하다는 내용이었지요.

작성자는 “경제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사기업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있는 사람들끼리는 부정한 방법으로 자기 자식을 좋은 직장에 넣으면서 다른 지원자들에게는 ‘눈을 낮춰야 한다.’는 소리를 해왔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공공기관 등에 취업을 준비하던 다른 취업준비생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 금융 공기업에 취업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 송모(29) 씨는 “이제는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채용비리가 당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동안 내가 다른 합격 내정자들의 들러리를 서줬던 것 같아 화가 난다”고 했습니다.

실제 강원랜드에 지원했었다가 탈락했다는 배모(28) 씨는 “비교적 공정하다고 생각했던 공기업마저 채용비리가 만연하다는 사실에 허탈감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며 “심지어 지역 주민이라 지나가며 강원랜드 건물을 자주 마주치는데 대한민국 자체에 대한 신뢰까지 잃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시민단체들도 정부의 발표에 분노를 나타냈습니다. 청년참여연대와 청년유니온 등 청년단체들은 공기업 채용비리 사건 직후 강원랜드 채용과정에서 인사 청탁을 한 의혹을 받은 권성동ㆍ염동열 자유한국당 의원 등을 직접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이번 채용비리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불공정성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선량하고 힘없는 청년들의 취업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요.

공기업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사회 모든 분야가 거의 다 복마전인 것 같습니다. 범죄를 다스려야 할 검찰에서도 성범죄가 만연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는 분노를 넘어 슬픔을 느낍니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세상까지 바뀐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바보같이 착한 사람들만 법을 잘 지키고 살지, 빽 좋은 사람은 지금도 온갖 편법과 수단을 동원해서 다 해먹으면,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은 어이 살라는 것인지 이만저만 걱정이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그러한 방법이 자랑거리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이만큼 힘이 있다는 과시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누구도 그러한 것을 문제시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러워하기도 하고 그러한 것을 못하는 나만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라다운 나라는 그동안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국가시스템을 정상화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정치권에서는 ‘적폐청산’ 이라는 작업을 통해 과거의 그릇된 국가운영의 틀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복마전을 뛰쳐나온 온갖 비리의 마왕들을 다시 복마전으로 몰아넣고, 엄중히 문을 봉해야 나라다운 나라가 오는 것이 아닐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2월 1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김덕권  http://cafe.daum.net/duksan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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