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뉴스프리존]김소영 기자= 선선한 가을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 빨갛게 익어가는 단풍의 계절을 맞아 9월의 추천도서를 소개합니다.

1. [문학] 소설 만세│정용준, 민음사

독자들에게 『선릉 산책』이라는 단편과 동명의 소설집, 지금까지 국내 문학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인상적인 ‘엄마’ 캐릭터를 보여주었던 「사라지는 것들」이란 단편으로 잘 알려진 정용준 작가가 첫 번째 산문집을 펴냈다. 그 책 『소설 만세』의 주제는 이렇게 말해도 될까. 읽다, 쓰다, 살다. 그리고 미래를 믿다!

총 4부의 모든 산문에 소설 쓰기와 살아가기에 관한 작가의 경험과 사유가 담겨 있는데 평범한 한 청년이 뒤늦게 문학-살면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어려운 시간을 견뎌 마침내 작가가 되고 작가로 지속해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는가, 하는 성장 과정이 그 안에 펼쳐져 있다. 읽고 쓰는 모든 자발적 행위에 그는 마지막에 ‘만세!’를 적는 마음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런 고백 때문에도 이 낙관적이고 언제나 타인을 놓치지 않는 소설을 보여 주었던 작가의 삶을 응시하는 태도에 함께 만세를 외치고 싶어진다. 반복의 힘과 반복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은 신뢰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물론 이 책은 시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한시적 기록이다. 글쓰기를 독려하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책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오직 문학청년만을 위한 것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글쓰기, 혹은 문학을 지금 자신이 하는 일, 용기를 내서 더 가보지 못한 그 일로 어느새 치환시켜 읽게 된다. 자연스럽고 신기하게. 그러므로 이 얇지만 묵직한 산문집은 더불어 삶을 더 좋아하고 살아가고 싶은 모든 사람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어떤 장르의 글을 써도 정용준은 독자를 외롭지 않게 만들 줄 아는 사려 깊은 작가라는 점을, 이 책이 증명하고 있다.

_조경란 위원, 소설가

2. [인문예술] 식민지/제국의 그라운드 제로, 흥남│차승기, 푸른역사

“흥남”이라고 하면, 아마 많은 이들에게는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오래된 가요에 나오는 한 대목이 떠오를 것이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바람찬 흥남 부두에~” 더욱이 남북 분단 이후 흥남은 지리책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실감하기 어려운 도시명이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에 쓰인 흥남이라는 단어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보다는 오히려 낯선 거리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라운드 제로”라는 다소 낯선 개념이 흥남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낯선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책은 상당히 야심적이면서 그 지적 야심의 정당성을 훌륭하게 입증하고 있는 주목할 만한 저작이다. 선생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1930년대 새롭게 발명된 흥남이라고 하는 식민지 조선의 중화학 공업 도시가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지 조선의 다면적이고 중첩된 지배/피지배 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 최대의 질소비료공장과 주변 산악지대에 건설된 거대한 수력발전소들은 일본-조선-만주로 이어지는 일본 제국주의의 산업적 중심지로서 흥남의 위상을 잘 말해준다. 선생은 동시에 흥남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사이의 중첩된 차별과 지배 관계의 실험장이었다고 지적한다. 계급적 지배는 일본 노동자와 조선 노동자 사이의 민족적 차별과 결부되었고, 이는 한층 가혹한 규율권력을 불러왔다. 아울러 선생은 흥남은 자본주의적 노동력 착취가 어떻게 생태적 파괴를 수반할 수밖에 없는지 명백하게 보여준다고 말한다. 중화학공업단지 및 수력발전소의 건설 자체가 생태계를 일정하게 파괴했을 뿐 아니라, 각종 소음과 매연, 오염 물질의 배출은 자연환경의 파괴와 아울러 수많은 식민지 백성들을 질병의 고통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선생이 말하고 싶은 것은, 이처럼 착취와 차별, 생태계 파괴로 이어진 그라운드 흥남의 유산이 해방 이후에 모두 사라졌는가 하는 질문이다. 한국의 식민지 근대를 이해하는 독창적이고 신선한 시각을 제시해주는 좋은 저작이다. 깊은 사유를 전달하는 명료한 글쓰기가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많은 인문학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_진태원 위원, 성공회대 연구교수

3. [사회과학] 근대 시민의 형성과 대한민국│이승렬, 그물

역사적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해석’은 시각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해석도 예외가 아니다. 반일 민족주의라는 망루에 올라가면 ‘친일파’들이 눈에 확연하게 들어오고 반공 자유주의라는 색안경을 쓰면 ‘빨갱이’들이 훤하게 보인다. 한국의 근현대사 해석은 그렇게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시각들 사이의 뜨거운 논쟁으로 점철되었다. 저자는 ‘민족사관’과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단선적 발전 사관들 사이의 적대적 공생관계에서 비롯된 파당적인 역사 인식을 경계하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선진국 대열에 오른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오늘의 상황에서 재해석한다. 대한민국을 중심에 놓고 동아시아의 일본, 중국, 북한을 그 주위에 배치하여 비교의 대상으로 삼는다. 오늘날 중국과 북한은 일당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일본은 자민당 독주의 부족한 의회민주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를 반복하면서 네 나라 가운데 가장 활발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저자는 그 이유를 네 나라의 근대화 과정에서 ‘상층 지주’들이 어떻게 역할을 했느냐에서 찾고 있다. 저자의 명쾌한 ‘설명’은 풍부한 ‘서술’과 어우러져 독자의 머리를 환하게 만들어준다. 독자에 따라 저자의 설명과 서술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 책은 독자의 생각을 더욱 분명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_정수복 위원, 사회학자/작가

4. [자연과학] 사이언스 픽션│스튜어트 리치 저, 김종명 역, 더난출판

사람들은 과학자가 금욕적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는, 과학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진위 규명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2005년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을 거치면서 그러한 믿음이 산산이 깨어지는 일을 경험한 바 있다. 그 이후로 소위 과학진실성과 과학부정행위에 대한 수많은 논의와 이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들이 갖추어졌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연구부정행위에 관한 소식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심리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스튜어트 리치의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들어 과학이 실은 자연현상에 대한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기술이 아닌, 사회적 활동이며 많은 과학자들이 무지, 실수, 고의로 인해 현대 과학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사고의 편향, 부주의, 과장, 조작, 잘못된 인센티브로 인해 현대 과학의 위기가 초래되었고, 논문 대량생산과 업적주의의 강조는 무엇이 진실인지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 과학계와 함께 과학계를 둘러싼 사회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과학은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활동임을 인식해야 하며, 연구비 시스템과 인센티브 제도를 개량해야 하며, 저널 출판 시스템도 손질해야 한다. 무엇보다 과학 정신의 바탕에는 건전한 회의주의자가 깔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_권복규 위원, 이화여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5. [실용일반] 반려공구│모호연, 라이프앤페이지

“좋은 공구란 어떤 일이든 시도해볼 만하다는 용기를 주는 공구다. 대단한 공구가 있으면 무슨 일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떤 일을 해내고자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공구를 든 사람이다. 사람이 의욕을 가지고 시도하지 않으면 공구는 아무 일도 해낼 수 없다.”

전동 드라이버, 수동 드라이버, 나사못, 자, 전동 드릴, 망치, 펜치, 렌치, 톱, 가위, 커터, 접착제, 재봉틀, 글루건, 접착제, 플라이어, 실리콘건, 샌딩기, 시계 공구 등등. 이 가운데 내가 사용해 본 공구는 몇이나 될까? 수동 드라이버, 망치, 펜치, 톱, 가위 정도인 것 같다. 누구나 공구를 써 본 기억은 있겠지만 수시로 공구를 활용해 뭔가를 직접 해내는 사람은 드물다.

이 책의 저자는 공구를 사용하고부터 일상의 불편을 그저 견디던 삶에서 벗어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시도해보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실패가 두려워도 망설이지 않고 공구를 집어 든다. 내 생활의 어려움을 나의 힘으로 해결한다는 효능감, 그리고 타인에게 기대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은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적응이나 ‘강제 긍정’은 그만두고, 문제를 해결하면서 조금씩 편해지기로 했다.”

못 박기는 나무, 콘크리트, 석고보드 등 소재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까? 나무에 구멍 뚫지 않고 나사를 박으면 어떤 일이? 공구 사용의 정석과 원칙을 실수와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과 함께 전한다. 공구라는 소재로 삶의 성찰에 이른다. 공구 실용서이자 에세이, 나아가 공구의 철학이라 할만하다.

“공구를 쓰는 일은 결국 몸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내 몸이 허락하는 만큼만 힘을 쓸 수 있다. 아무 때나 무한대의 공간으로 퍼져나가는 생각과 달리, 몸은 항상 제가 가진 한계에 묶여 있다. 몸의 그 명확한 한계가 때로는 안전하게 느껴진다. 몸을 쓰는 일이라면 어차피 내가 가진 에너지를 뛰어넘는 결과를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되새긴다. 샌딩을 할 때의 마음가짐은 하나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이 책을 읽고 나면 오랜만에 공구를 꺼내보고 싶어지거나 공구를 사고 싶어질지 모른다. 또 공구를 써서 뭔가를 해보고 싶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좋다. 설령 앞으로 공구를 쓸 일이 없다 하더라도 이 책은 이 책 자체로 재미있고 또 유익하다.

_표정훈 위원, 평론가

6. [그림책/동화] 두더지의 여름│김상근, 사계절

‘두더지의 고민’, ‘두더지의 소원’에 이은 김상근 작가의 세 번째 두더지 그림책이다.

책장을 넘기면 두더지 할머니가 말한다. “얘야, 여름이 왔구나!”

이 말은 일종의 선언이다. 이 전의 두더지 이야기(두더지의 고민, 두더지의 소원)의 배경인 겨울을 지나 이제 여름이 왔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났다는 말이기도 하고, 두더지가 그만큼 자랐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오늘은 땅파기 연습이 있는 날. 하지만 두더지는 내일로 미룬다. “두더지라고 다 땅파기를 잘 하는 건 아니야”라며 여름 방학을 맞아 놀러 간 친구들을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도 숲 속으로 소풍을 간다. 그곳에서 거북이를 만난다. 그렇게 둘은 바다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밤이 오고 땅 위가 위험해지자 두더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곳, 바로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가 바다로 가는 길을 찾기로 한다. 물론 단번에 바다를 찾아낸 건 아니다. 바다인줄 알고 올라왔더니 목욕탕이기도 하고, 수영장이기도 하고, 분수이기도 한다. 그렇게 두더지와 거북이는 바다에 이른다. 유쾌한 모험서사이고, 거북이와 함께 만들어가는 우정이야기이며 한 뼘 자라는 성장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두더지의 고민’, ‘두더지의 소원’에 이어 ‘두더지의 여름’까지 세 번째 이야기를 만났다는 것이 기쁘다. 우리에게도 여러 편의 이야기로 만들어질 수 있는 캐릭터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반갑다. ‘두더지의 여름’을 보고 있노라면, 여름을 맞이하기 전의 두더지가 궁금해져 ‘두더지의 고민’, ‘두더지의 소원’을 찾아 읽고 싶어진다.

_최현미 위원, 문화일보 문화부장

7. [청소년]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백정연, 유유

넷플릭스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는 한국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화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라는 용어도 낯설지만 아스퍼거 증후군에 해당하는 천재 변호사 우영우는 더 어색하다. 장애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고 이해의 폭을 넓힌 드라마의 순기능을 부정할 생각은 없으나 현실은 드라마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대략 5%, 250여만 명의 장애인이 살아간다. 비장애인 4,750만 명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해당하기 때문일까. 여전히 우리는 장애인과 그들의 삶에 무지하다.

발달장애 관련 기관에서 일하다가 세상의 모든 정보를 쉽게 만들어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 ‘소소한 소통’을 설립한 백정연은 척수장애인과 결혼했다. 내 삶의 일부, 아니 장애인이 가족일 때 일상생활은 이전의 삶과 전혀 다르다. 저자는 결혼과 일상을 통해 장애인과 사는 법을 비로소 알게 된다. 동료로, 친구로 조금 더 알아야 할 일들이 일반 시민들의 책무라면 저자는 조금 더 세심하고 깊은 곳까지 헤아리며 장애인의 문제를 짚어내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다른 책과 달리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을 질타하지도 않고 분노를 표출하지도 않는다.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동료, 친구, 남편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그 갈피마다 숨어 있는 비장애인들의 시선과 제도적 문제점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정책 변경, 시설 개선을 촉구하는 대신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이라는 제목의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마지막 부분에 제시한 장애인과 경계를 허물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 매우 현실적이다. “모든 집마다 장애인이 있으면 좋겠어.”라는 문장을 한참 들여다봤다. 이해와 공감은 경험에서 나온다.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없다. 장애인 문제가 그렇다. 행복한 사회는 다수가 행복한 사회보다 소외된 소수가 행복한 사회에서 더 빨리 실현된다는 저자의 말은 울림이 크다. 공평하지 않은 사회에서 장애인 또는 장애인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차별 또는 폭력을 감수하며 사는 것과 같다는 주장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부한 문장이 때로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어린이, 노인에 대한 배려가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다를 바 없다. 건강한 성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장애인과 노약자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사는 법을 고민할 만큼 충분한 경제력 토대를 마련했고 성숙한 시민의식도 갖추고 있다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에 대해서도 좀 더 관심을 기울여 볼 때다.

_류대성 위원, 『읽기의 미래』 저자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