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의 메시지버스] 4대 위기 극복을 위한 협치의 계기를 어떻게든 마련해야

섬나라 여왕이 한국정치에 제공한 뜻밖의 기회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며칠 전 서거했다. 필자는 외신 전문기자가 아닌 터라 고인에 대한 평가를 단정적으로 내놓을 만한 위치에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세 가지 사실만큼은 확언할 수 있을 듯하다.

첫째, 여왕은 엄청나게 긴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 왔다는 점이다. 그가 화려한 공주용 드레스 대신에 칙칙한 색깔의 군복을 입고서 운전병으로 화물차를 몰 무렵에는 히틀러의 나치스 독일군과 스탈린의 볼셰비키 소련군이 우크라이나 대평원에서 2차 대전의 격전을 치르고 있었다. 당시는 독일군이 침공군이었다.

그가 영면할 즈음에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끄는 우크라이나 장병들과 푸틴 휘하의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 영토 곳곳에서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는 중이다. 현재는 소련의 법통을 승계한 러시아가 침략자이다.

둘째, 흐릿한 잔재 형태로 존재했던 대영제국(Great Britain)이 드디어 끝났다는 점이다. 엘리자베스 시대에 영국은 처칠과 대처라는 두 명의 걸출한 보수주의 정치인의 경험과 책략, 의지와 인맥 덕택에 비록 말석이나마 강대국의 반열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대처가 개전을 결단한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제도 전쟁은 늙은 노제국의 위용을 지키려는 최후의 단말마적 몸부림이었다.

이제 영국은 왕실 역사를 통틀어 독보적 장수를 누렸던 군주의 죽음을 계기로 버거운 제국의 왕홀을 내려놓고, 그들의 실질적 국력에 걸맞은 연합왕국(United Kingdom)의 위상에 계속 만족해야만 할 게다. 별세한 모후와 비교해 민중의 지지와 개인의 도덕성 양면 전부에서 터무니없이 부족한 찰스 3세 시대에 들어서까지 시효 다한 제국으로의 생명 연장에 집착한다면, 영국은 기존의 국제축구연맹(FIFA)에 뒤이어 조만간 국제연합(UN)에마저 잉글랜드(England)란 이름으로 가입해야만 할지 모른다.

셋째, 저 멀리 유럽에서 전해져온 다른 나라 국가 원수의 부음이 우리나라 정치권에 전연 예상하지 못했던 데탕트 즉 화해의 기류를 선물해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9월 19일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거행될 예정된 엘리자베스 2세의 국장에 참석할 계획임을 발표했다. 이번 장례식에는 전 세계 수많은 나라들의 국가원수와 정부수반이 조문사절 신분으로 몰려올 게 확실하다. 주요한 국제 외교무대의 하나인 조문외교의 마당이 펼쳐지는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많은 여론조사에서 데드크로스(긍정평가보다 부정평가가 높음)가 일어나며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주요 언론은 이런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을 두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순방효과가 묻혔다는 취지의 보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나토 정상회의 참석도 실익은커녕 우리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이 전망되는 분위기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엘리자베스 2세의 국장에 참석한다. 야당 지도자와 함께 참가하면 협치의 가능성을 더 높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과 일본 수상도 만나고,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동도 추진하고, 심지어 북한 최고 지도자와의 고위급 회담 가능성도 신중하게 타진하는 상황에서 유독 같은 나라 야당 대표의 얼굴을 보려면 오래전 헤어진 애인 다시 만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란 배포를 발휘해야 한다는 데 있다. 집권여당의 사실상의 수장인 대통령을 만나는 일에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하기는 야당 대표 역시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고인이 된 여왕의 장례식에 올 외국 정상들의 상당수는 부부 동반으로 참석할 확률이 높다. 부정적 국내 여론에도 불구하고 김건희 여사 또한 윤 대통령과 동행해 영국으로 날아가야만 하는 입장이다. 김건희 여사의 속내를 필자가 감히 짚어본다면 세기의 이벤트로 기록될 영국 여왕의 국장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분명 굴뚝같을 개연성이 짙다.

영국에 가면 영국법을 따르라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다. 영국은 의원내각제의 시원이자 모범으로 통해온 국가이다. 미국이 한국처럼 대통령 중심제 국가로 출범했으면서도 입법부의 권한이 전통적으로 강력한 데에는 영국의 영향력이 막대했다.

의원내각제 체제에서 현직 총리의 중요하고 핵심적인 국정운영 동반자는 야당의 영수이기 마련이다. 그러한 연유로 말미암아 보수당 소속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할 최우선적 조치로써 클레멘트 애틀리가 영도하는 노동당과의 대연정, 곧 거국일치 내각을 조직했다. 내각제가 대통령제와 견주어 협치가 원활하게 작동하는 배경이다.

그러므로 윤석열 대통령이 히스로 공학에 도착한 대한민국 공군 1호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와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려도 영국을 비롯한 대다수 유럽 국가들은 하등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영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나란히 맞붙은 좌석에 앉는다면 두 사람은 억지로라도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을 테고, 어쩌면 수시로 텔레그램 메시지로 체리따봉 이모티콘을 주고받는 친밀한 관계로 이참에 발전할지도 모른다.

이재명이 윤핵관의 일원이 되고, 윤석열이 개딸의 한 명으로 자리하는 모습, 한국이 경제위기·안보위기·인구위기·기후위기의 4대 위기에 직면해 나라의 명운이 경각에 달린 절체절명의 와중에 조차 당리당략과 이전투구에만 무대포로 골몰하는 정치권에 혐오감을 넘어 증오심까지 느끼게 된 일반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색다른 감동을 주는 광경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작금의 남한의 제도정치권은 야당은 대통령 영부인을, 여당은 야당 당수의 배우자를 각각 볼모로 잡고 있는 기상천외한 인질극을 연출하고 있다. 이 엽기적인 인질극 소동은 상대를 죽이지는 못하면서 약만 올리는 소모적인 무한대치 양상으로 줄곧 이어져왔다. 이건 무시무시한 ‘공포’의 균형도 못 되는 비루한 ‘공갈협박의 균형’일 뿐이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의 상호 겁박이 완전히 종식되지 못하는 한에는 정치가 경제를 위시한 나머지 사회 모든 분야들의 발목을 잡는 한국 특유의 망국적 현상에도 마침표가 찍힐 수가 없다.

김건희 여사는 스페인 왕국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과정에서 검증되지 않은 무자격 민간인을 자신의 수행원으로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시켰다가 심각한 구설수에 휘말린 적이 있다. 필자는 김건희 여사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부인으로 지난 대선에서 여당과 언론에 탈탈 털리면서 검증되어도 너무나 혹독히 검증된 김혜경 여사에게 영국 여왕 장례식에 같이 가자고 제안하기를 바란다.

두 여인은 각자의 남편의 정치적 반대파로부터 죄 많은 인생이라는 모질고 몹쓸 손가락질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게다가 온갖 종류의 고소고발 공세에도 시달려왔다. 한마디로, 동병상련의 처지라 하겠다. 김건희 여사와 김혜경 여사가 기내의 옆 좌석에 연이어 붙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면 여당과 야당 간에 쌓여 있는 감정적 앙금과 날선 적대감을 완화하는 데 쏠쏠히 기여할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 바이다.

윤석열, 이재명, 김건희, 김혜경의 거국일치 4인조 조문단을 구성해 영국으로 파견하자는 필자의 주장이 생뚱맞고 뜬금없이 들릴 수 있으리라. 허나 진정으로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정치지도자는 국익을 증진하고, 국민통합을 이루는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어떠한 돌발적 파격과 과감한 발상의 전환도 마다하지 않는 법이다.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내막을 알고 보면 안에서는 다 서로 먼저 죽일 것처럼 싸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나라 밖에 나가면 선진국들은 화강암처럼 단단히 결속하고, 후진국들은 여전히 모래알로 남는다는 것이다. 안에선 박 터지게 싸우고, 밖에선 똘똘 뭉치기에 동네 건달들끼리 무겁고 거추장스런 쇠사슬 갑옷 착용하고 칼싸움하던 아서왕 시절 잉글랜드가 거함거포들을 내세워 전 세계 바다를 지배한 대영제국으로 웅비했었음을 우리 모두 기억하자.

* 필자는 '메시지버스' 운영자(공희준.co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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