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85회

신기루

‘결혼 후 이런 감정 처음이다.’

‘아, 내가…?’

인간의 마음이란 알 수 없었다. 송 박사의 마음에 돌연 찾아온 사랑의 열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사랑의 화살을 맞은 듯 송 박사는 눈만 뜨면 온 천지에 은 기자로 가득 찼다.

“선생님 다음은 장애아 교육시설 방문입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짓는 은 기자, 그녀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송문학은 가슴이 설레었다. 청바지에 하얀색 남방을 걸친 여체는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점심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면 은 기자는 커피를 적당히 조절하여 자신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맞선 자리에 다소곳이 미소를 지으며 앉았다.

“어느 정도 자료정리가 되고 있나요?”

“네, 아마 크리스마스 전까진 모든 것이 완료될 것 같습니다.”

은 기자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모습은 동작 하나하나가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은기자도 자신의 옆에만 붙어 다니는 듯했다. 그들은 방문 내내 한 쌍의 부부처럼 함께 움직였다. 그는 호텔에 투숙하는 동안에 은 기자가 조금 떨어진 1004호에 침실이 마련된 것을 기억했다. 자신은 1020호 맞은편에서 좀 떨어진 거리였다. 그는 하루일과를 마치고 정리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에서 은 기자와 함께 섹스를 하는 몽상에 젖으며 밤을 맞이하곤 했다. 지선과 통화하면서도 그는 머릿속에서 은 기자를 떠올릴 때가 있었다. 그는 핸드폰에 지선의 문자 메시지를 보았다.

〈당신의 출국과 함께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를 위해서 우리는 훌륭한 연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취재가 되길 바라며…. -아내가 올립니다-〉

그는 아내의 문자 메시지에 답신을 보냈다.

〈염려 마오. 아마 12월 20일경에 고국에 도착할 예정이오. 모델하우스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운영되리라 믿소. 자세한 것은 귀국해서 말하리다. 그럼 행복한 꿈꾸고 잘 자오 -내사랑하는 아내에게-〉

이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는 가슴이 떨렸다. 마음에선 은 기자이길 바라면서 그는 문을 열었다. 아! 빨간색 슬립을 걸친 은 기자였다.

“박사님….”

“아, 아니…!”

“너무나 보고 싶어서…, 박사님을 사모하는 맘 아시지요?”

“은 기자…, 이러… 이러면 안 되오….”

그는 자신이 좌절과 위기의식에 빠질 때면 항상 하나님을 불렀고 그 다음엔〈모델하우스〉를 외쳤다.

“난 모델하우스….”

“그 따윈 잠시 접어두세요. 모처럼 찾아온 사랑의 기회를 버리지 마세요. 제발….”

송문학은 아찔했다. 마귀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었다.

‘딱 한 번인데 뭘 그래. 사회 명사들은 모두 그 정도의 로맨스는 있다고…, 하나님도 이해하실 거야. 감정도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그러나 마음속 이성의 양심은 자신을 꾸짖었다.

‘이 사람아, 자네 정신 차려. 자네가 이 순간을 범하면 자네는 큰 수치와 낭패를 보게 되네. 더구나 자네는 이제〈모델하우스〉를 입으로만 외치는 위선자가 되고 아내 앞에서나 사회적으로 자네는 떳떳하지 못하게 되네. 명심하게….’

은 기자는 송문학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었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가슴에 기댄 은 기자를 일으켰다.

“은 기자. 우리 선을 넘으면 서로가 부끄럽고 수치스러울 뿐이오. 잠시 냉정하게 이성을 찾읍시다.”

은 기자는 끝까지 자신을 지키려는 그의 자제력에 감동하면서 야속하기도 했다. 한번 남자가 돼주면 안되나! 그의 깊은 사랑의 애무가 그리웠다.

‘사나이답지 않은 착한 바보!’

은 기자는 송 박사가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자신이 그를 황홀하게 할 만큼 아름답지 않았나? 그 원인을 추측해 보며 매우 섭섭하고 무시당한 듯했다. 자신을 원하는 그의 욕망과 그를 사랑했던 자신의 탑이 허상처럼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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