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 입체 넘나들며 삶의 본질 사유케 해
29일~ 10월 23일 가나아트 보광 개인전

[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조각 작품의 근원이 되는 작가의 회화는 입체 작품에서 발현되는 밀도와 부피감을 지닌다. 아크릴 물감과 목탄을 사용하여 거칠고 균일하지 않게 처리된 작품의 표면은 시간의 흐름 그 자체를 물리적으로 표현한다. 세상의 삼라만상이 탄생하기 전의 아득한 어둠과 무(無)의 상태를 상징하는 흑과 백은 모든 것의 시작과 소멸을 암시하며, 관객을 명상적 상태로 이끈다. 선과 면으로 단순하게 표현된 작품 속 요소들은 화면을 넘어 뻗어나갈 듯 솟구치며, 보이지 않는 근원적 에너지를 표출한다. 29일부터 10월 23일까지 가나아트 보광에서 개인전을 갖는 히로유키 하마다(54)의 작품 이야기다.

뉴욕 이스트 햄프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는 도쿄에서 태어나 18세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회화와 조각을 넘나들며 추상적인 작업을 보여주고 있는 그는 2018년에는 구겐하임 펠로우십을 받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마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감지되는 기계로 재단한 듯한 매끈한 곡선, 동적 운동을 연상케 하는 반복적인 패턴은 현대의 기계문명과 과학의 발전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작가는 표면에 구멍을 내거나 의도적으로 바랜 듯한 효과를 더하여,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지의 시간과 과거가 교차된 듯 모호하고 생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중력을 거슬러 위로 뻗어나가는 듯한 작품의 상단부와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순백의 덩어리는 이성과 감각의 영역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고요함을 가시화한다. 공상과학적 미학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원형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의 작품은 미래에 발견된 고고학적 유적처럼 선지적인 아우라를 발현한다.

회화작가로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하마다는 전통적인 회화의 재료를 넘어 에나멜, 레진, 플라스틱,왁스, 타르 등 산업적 소재를 캔버스 표면에 칠하며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내는 기법을 탐구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적 효과를 입체감과 부피를 통해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조각에 몰두하며 자연스레 두 매체의 경계를 오가고 있다.

평면작품은 조각에서 발현되는 밀도와 부피감을 화면에 담아내고, 입체 작품은 회화와 드로잉에서 감지되는 부드러운 선과 각 요소의 조화와 충돌을 조각적으로 표현한다.

구체적인 이야기나 상징, 레퍼런스가 철저히 배제된 추상적 형태를 추구하는 하마다의 작품은 우주선이나 신체의 일부, 또는 일상의 사물이나 동물을 연상시키며 낯선 감각을 일깨운다. 작가는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작품의 제목에도 별다른 수식없이 오로지 번호로 이들을 구분하여 순수한 추상이 불러일으키는 미적 경험을 선사한다.

그의 미니멀한 태도는 색채의 사용에도 반영된다. 낮은 채도의 절제된 색과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덩어리들은 이성과 감각의 영역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고요함을 암시한다. 근원적인 침묵이다. 먹과 종이처럼 흑과 백으로 구분된 채 서로 분리되거나 결합하는 모습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연기(緣起)적 세계관에 맞닿아 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다른 이들의 경험에 일부가 되고, 미지의 누군가의 심장에서 계속해서 공명한다”

그의 작품 속 요소들이 빚어내는 관계는 형식적 미를 넘어 인간의 본질과 삶에 대한 사유를 촉발하며, 관객을 명상적 상태로 고요히 이끈다. 미래와 과거, 부분과 전체 등 대조되는 특성들의 공존을 시각적으로 담아내면서 공상과학적 미학과 태초의 원형적인 에너지를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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