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이 대에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웬만큼 아는 국회의원들과 육군 최고위 장군들 간 폭력사건이 있었다. 

1986년 3월 21일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과 참모총장 등 육군 수뇌부가 한 요정에서 폭탄주 술자리를 벌이다가 술잔이 날아다니고 이단옆차기가 나오고 그로 인해 국회의원 한 사람과 장군 한 사람이 피를 흘리는 등 대활극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에는 보도통제(혹은 협조)로 일반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내가 일하던 신문사 안에서는 ‘정보보고’를 통해 비교적 소상하게 진상이 알려졌다.

크게 보면 전두환 정권에서 기세등등했던 군인들과 그런 군인들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밑으로 깔아보려는 정치인들의 자존심이 부딪혀 (거기에 술기운이 더해져) 벌어진 난투극이었다.

그러나 직접적인 발단은 ‘이 XX’라는 욕설이었다. 육군 수뇌부가 초청한 이 술자리에는 여야 국회의원 10여 명이 참석했는데 이중 여당인 민정당 원내총무 이세기 의원이 지각을 했다.

약속시간에 조금 늦게 온 제1야당 신민당 원내총무 김동영 의원이 기분이 나빠져 “거 힘있는 거물은 하나도 없고 똥별들만 죽 앉아 있구만..” 이라고 말해 처음부터 분위기가 험악해졌다는 것이다.

이후 한참 술잔이 돌아갔음에도 이세기 총무가 나타나지 않자 술에 취한 김 총무가 박희도 육참총장에게 “이봐! 박 총장! 이세기 원내총무는 왜 안 오는 거야? 빨리 가서 불러와!”라며 시비조로 고함을 쳤다.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얼마 후 문상을 갔다가 약간 취한 상태로 술자리에 온 이세기 총무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와 평소 친분이 있었던 정동호 육참차장이 “이봐, 이세기 총무!”라고 크게 이름을 부르며 “당신이 늦는 바람에 야당 국회의원들에게 똥별 소리 듣는 거 아냐!”라고 술을 권했다. (‘이세기’라는 이름을 부를 때 ‘세’와 ‘기’ 사이에 기역자를 한두 개 더 넣어 좀 세게 발음하면 ‘이XX’로 들린다)

그러자 이미 취해있던 같은 민주정의당 남재희 의원이 정 차장이 일부러 여당 원내총무 이름을 빌어 여당은 물론 국회의원 전체를 능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술 쳐먹으려면 똑바로 쳐먹어!” 고함을 지르면서 갖고 있던 술잔과 물잔을 연달아 벽을 향해 던졌다는 것이다.

벽에 부딪혀 깨진 술잔 파편이 한 장군의 눈언저리를 찢어 유혈이 낭자해졌고 그 장군이 남재희 의원에게 이단옆차기를 날렸고(사커킥이었다는 말도 있음) 이어 장군들과 의원들 간 난투극이 벌어졌다는 얘기다. (말이 난투극이지 비리비리한 국회의원들이 어디 상대나 되었겠나!)

고문도 불사했던 그 엄혹한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에 야당 원내총무가 서슬퍼런 군 장성들을 ‘똥별’이라 부르고, 이에 열 받은 육참차장이 여당 총무 이름을 빌어 국회의원들을 능멸했다고 해서 한 국회의원이 술잔을 집어던지는 혈기를 보인 사건이었다.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의 여당 의원들은 동료 의원들이 통으로 ‘이XX들’이란 욕을 먹어도 끽소리 못하고 엄한 MBC에 가서 소리를 지르는 비겁한 시대가 됐다.

지금의 검사가 그 때의 군인들보다 훨씬 무서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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