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잘 만든 법정영화 한편이 2년 만에 관객을 만난다. 바로 영화 '소수의견'이다.

영화 '소수의견'(감독 김성제/제작 하리마오픽쳐스/배급 시네마서비스) 언론시사회가 지난 6월18일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진행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소수의견'이 촬영 종료 2년여 만에 첫 공개되는 자리였다. 수많은 취재진이 영화를 확인하기 위해 자리했다.

누군가에겐 민감한 소재이고 누군가에겐 꼭 이야기하고 싶은 소재이기에 영화 '소수의견'을 향한 관심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그 기대에 보답하듯 영화는 높은 완성도와 차분한 연출, 배우들의 호연이 더해져 잘 만들어진 한 편의 법정물로 기대감을 충족시켰다.


'소수의견'은 '혈의 누' 각색과 프로듀서를 맡았던 김성제 감독 작품으로 지난 2009년 1월 실제 벌어진 서울시 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 사건, 즉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한다. 영화는 강제철거 현장에서 일어난 열여섯 철거민 소년과 스무 살 의경 두 젊은이의 법이 외면한 죽음을 둘러싸고 대한민국 사상최초 100원짜리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변호인단과 검찰의 진실공방을 그린다.

서대문구 북아현 13구역 6블록. 뉴타운 재개발을 위한 강제철거 현장에서 진압작전 중 철거민 박재호(이경영)의 중학교 3학년 아들 박신우와 의경 김희택(노영학)이 사망한다. 김희택은 둔기로 뒤통수를 가격당해 사망하고 박신우는 구타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진 뒤 병원으로 이송된 후 역시 사망한다. 이에 박재호는 김희택 살해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되고 당시 현장에 있던 철거용역 김수만(조재윤)은 박신우 살해 혐의로 사건 이후 체포된다.

아들을 잃은 피해자이자 경찰을 죽인 가해자인 박재호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이가 경찰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과 함께 무슨 일인지 한국최대 법무법인 '광평'은 무료 법률자문 중이던 철거민 단체 '민생살림'에서 의뢰한 박재호 변론을 국선변호인 윤진원(윤계상)에게 이관한다.

이때부터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검찰과 경찰 그리고 그보다 더 높은 윗선까지. 모두가 틀어막으려 했던 사건은 윤진원의 참여와 함께 수면 위로 떠오른다. 여기에 사건을 파헤치던 민완 기자 공수경(김옥빈)은 언론을 통해 사건의 화제성을 키운다.

'소수의견'을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윤진원 캐릭터에 대한 현실감이다. 지방대 출신에 변변찮은 인맥 하나 없이 국선변호사 2년 경력이 전부인 그에게 굴러 들어온 사건. 윤진원은 처음엔 늘 그렇듯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공수경을 통해 박신우를 죽인 진범이 실제 경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이 과정에서 검사 홍재덕(김의성)이 사건송치자료 열람을 거부하자 사건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을 품게 된다.

애당초 '소수의견'의 윤진원은 정의감에 똘똘 뭉친 캐릭터가 아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윤진원은 처음엔 권력 앞에 무시당했다는 열등감과 그로 인한 오기로 사건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한다. 오히려 사건이 커지고 주목받을수록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기도.

하지만 윤진원은 자신 또한 다수의 권력집단 속에 섞이지 못하는 소수이기에 소수의 편에서 자신과 김재호를 위해 변호한다. 그동안 법정물의 주인공들이 정의를 외치며 뛰어난 두뇌와 기지로 사건을 척척 해결하는 것과 달리 윤진원은 무너지기도 하고 뒤통수도 맞고 현실에 굴복하기도 한다. 뛰어난 능력을 지니지도 않았다. 하지만 결국 끝까지 내달린다. 누군가 하나 작살을 낼 때까지 말이다.

이렇듯 복잡하고 힘겹고 또 길게 이어지는 법정공방을 김성제 감독은 촘촘하게 그러면서도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유해진이란 배우를 활용해 자칫 무겁기만 할 수도 있었던 분위기를 유머로 환기시키는가 하면 '울어라' '웃어라' 강요하지 않는 담백한 연출로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인다. 또 영화 전체적인 톤을 차갑게 조절해 사건과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냉정하게 유지한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김재호에 대한 판단은 관객에게 맡긴다.

특히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이 송강호의 변론 장면을 롱테이크를 사용해 극적 긴장감을 높였다면, '소수의견'은 실제 법정을 보듯 객관적인 시선에서 변호인단과 검사 측의 변론을 대비되게 보여준다. 국민참여재판이란 상황에 맞게 이에 특화된 차분한 말투와 감정에 호소하는 여검사와 악질 검사 홍재덕 그리고 김재호를 변호하는 윤진원 장대석(유해진)의 대립은 긴 탁구 랠리를 보는 듯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변호인'처럼 인상적인 그리고 감정이 폭발하는 클라이맥스는 없다. 대신 길고도 긴 싸움을 보여주듯 잔 펀치를 날려대는 '소수의견'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법정신. 그러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이 법정신은 어느 하나를 논하기 힘들 정도로 모두가 인상적이다. 앞으로 한국 법정영화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기라도 하듯 말이다.

대체 왜 이런 영화가 2년 동안 관객을 만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했던 걸까. 아니면 지난 2년 동안 김성제 감독이 공들인 덕에 이 같은 웰메이드 작품이 나온 걸까. 이제야 빛을 보게 된 '소수의견'은 지난 2013년 6월 크랭크업 후 CJ E&M에서 시네마서비스로 배급사를 변경해 촬영 종료 2년 만인 오는 6월24일 개봉한다. 관객들은 과연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참으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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