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에 여백(餘白)이라는 기법(技法)이 있습니다. 여백은 한국 전통 회화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의 회화(繪畵)에서도 나타나며, 특히 문인화(文人畵)가 ‘여백의 미’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노년이 어느 때보다 ‘여백의 미’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노년은 생각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길입니다. 노년은 삶의 여정 중에서 마음을 비우며 살아가기에 가장 좋은 나이이기 때문입니다. 노년은 담담한 마음으로 삶의 여백을 마음에 담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노년은 시기와 질투가 떠난 자리에 사랑과 너그러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남의 잘못은 보이지 않고 잘한 것만 보여서 좋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점점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리고 가지고 싶은 마음보다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좋습니다. 또한 미워하는 마음은 떠나고, 축복하고 싶어 좋습니다.

또 원망은 사라지고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생겨나서 기쁩니다. 잘 된 것은 모두가 <네 덕>이고, 잘못된 것은 전부 <내 탓>이지요. 그리고 저는 사시사철 검정 바지와 흰 저고리, 조금 쌀쌀하면 조끼 하나 걸치고 다닙니다.

오래전에 그 많은 양복과 넥타이 등, 몽땅 기증한 지 오랩니다. 그래도 어디를 가든지 당당합니다. 다리가 아파 외출을 잘하지 못해 <덕산재(德山齋)> 창 너머 솟아오르는 둥근 달과 아침 햇살에 마냥 기쁩니다. 시간에 쪼들리지 않고 산 넘어 흘러가는 흰 구름을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마음으로 만들고, 극락은 내 가슴에 있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어 좋습니다. 마음을 비우면 더 많은 정을 담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모든 욕심 버리면 가슴 아파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빈 마음을 여백으로 채우고 담담하게 살아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늙어가는 사람은 ‘여백의 미’가 있어 존경스럽습니다. 어떤 사람이 공중화장실을 갔습니다. 우연히 눈을 들어 보니 앞에 짧은 글귀가 적혀 있었지요. 『당신에게 오늘 기쁜 일이 일어날 것이다.』 피식 웃고 나왔는데, 이상하게도 그 한 줄의 글귀가 계속 기억에 남았습니다.

왠지 정말로 자신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요. 그날은 매우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그 글귀가 생각이 났습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의 많은 사람이 짜증이 나지 않았고,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자신의 조그만 집이 자신이 쉴 수 있는 평화롭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약간 쌀쌀한 날씨가 시원하게 느껴졌고,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낡은 가로등이 친근하게 느껴지며, 그 위에 떠 있는 달이 환하게 웃으면서 자신을 맞아주는 그런 풍족한 느낌이 들었지요. 얼굴에 저절로 부드러운 미소가 새겨지고, 내일도 자신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희망이 솟아올랐습니다.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그럴 것입니다. 우리에게 매일 매일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밑져야 본전입니다. 그렇게 믿으면 우리에게 좋은 일만 생기지 않을까요? 바야흐로 단풍의 계절입니다. 낙엽 지기 전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봄꽃보다 고운 잘 물든 단풍>입니다.

우리 인생에 ‘여백의 미’는 봄꽃보다 고운 가을 단풍이고, 서산의 낙조(落照) 처 럼 장엄합니다. 그것은 ‘삶의 유혹(誘惑)’과 ‘죽음의 공포(恐怖)’ 이 두 가지에서 벗어나 죽음을 향해 가는 ‘여백의 미’가 완전한 해탈(解脫)을 성취하는 길입니다. 등산도, 인생도 오르는 길 힘들지만, 내려가는 길은 더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삶의 길을 멋지게 내려가기 위해, ‘여백의 미’를 찾는 것입니다. ‘여백의 미’에 대해 알아볼까요?

첫째, 비움의 미학입니다.

비움의 실천은 ‘버림’으로서 여백을 만드는 일입니다. 꽃이 비록 아름답지만,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노련의 미학’입니다.

‘노(老)’ 자에는 ‘노련하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랜 세월의 경륜이 있어, 노인은 노련한 경험의 결정체입니다.

셋째, ‘점잖음의 미학’입니다.

노인이 되면 언행이 무겁되 어둡지 않습니다. 품격이 고상하되 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점잖다.’ 라는 말이 성립된 것이지요. 점잖음 이란 중후한 인생의 완결이자, 노인이 보여줄 수 있는 장엄한 아름다움입니다.

넷째, ‘생각의 미학’입니다.

노인이 되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일념통천(一念通天)의 지혜의 샘물이지요.

다섯째, ‘3분의 2의 미학’입니다.

저는 늘 상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청춘이다.” 라고 큰 소리로 말합니다. 이 말은 사실입니다. 정신의 나이는 육신의 나이에 3분의 2에 불과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아름다움의 끝은 죽음입니다. 우리 마지막 인생의 끝을 ‘여백의 미’로 채워가면 어떨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10월 14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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