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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했으면 ‘미투(metoo)’를 선언했겠습니까?
  • 박지영 문학마당 편집장
  • 승인 2018.02.21 12:46
  • 수정 2018.02.21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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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metoo)’운동으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세상의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저 또한 세상의 이러한 일들이 당연히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곪은 옳지 않은 것에 대한 관습적 행위처럼 행여라도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묵시와 압력을 적시 하지 못한 것으로 스스로에게 굴레를 씌우고 질책을 하고 있다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박지영 문학마당 편집장

아직도 자신의 상처가 새삼 떠오를 때마다 소스라치고 몸서리칠 순간들을 힘겹게 지나가고 있을 많은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계획된 함정과 의도된 상황에 놓인 자신에게 닥친 억압과 공포, 심리적 충격을 잘못된 성적행위에 적시하며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사실만으로도 자신을 용납하지 못해 자존감을 상실하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에 이어지는 진행형의 자명한 사건입니다.

가해자가 그날을 잊어버리고 늘 그랬듯이 새로운 먹이감을 향해  인면수심을 드러내고 일상을 영위하는 동안 당한 피해자는 종교심이나 정신과 치료를 통하여 극복하려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을 가해자는 알까요?

상황은 사회적 우위에 선 성적 모랄 때문인데 내 탓으로 돌리며 자신을 학대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면 지나온 시간에 대한 허망함은 물론이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얼마나 두려울지 생각해 봤습니다. 사회적 악습이 한 개인의 성적 정체성과 모랄 자체를 파괴하는 사회적 폭력으로까지 진화를 거듭한 것은 아직 개인의 인격보다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어른이니까, 스승이니까, 외면으로 비춰지는 그럴 분이 아니니까 즉 ‘ ~니까‘라는 편견으로부터 ’미투‘는 현장에서 적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남성위주의 사고가 팽배한 가정과 사회에서 묵인된 폭력을 당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평생 트라우마를 갖거나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왜곡하고 살거나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저항력이 부족한 객체로서 수난과 모욕에 익숙해지는 것에 노출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모두는 우리의 딸이고 누이고 아내고 어머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해법은 남성 자신들의 ‘인식개선‘ 과 ’선언‘이 필요합니다. 거기에 부합된 여성의 제도에 대한 평등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결국 이것은 ’사회적 함의’ 즉 공직으로부터 그리고 시민사회로부터 위와 아래, 남성과 여성, 좌와 우에서 시작된 담론에서 비롯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촛불’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다양한 욕구가 국가 구성원의 의견수렴으로 이어지며 숨가쁘게 지나온 것이 사실입니다. ‘미투운동’이 피와 아의 저격이 아닌 여성과 남성이 존중받는 사회에 대한 폭발적 욕구가 비롯된 시민운동이라고 본다면 지금 세상에 많은 불평등 상황에 노출된 현실은 남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라는 전제로 가해자도 치료해야 하고 그로인한 피해자는 더더욱 사회로부터 보호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서 서로가 놓였던 그 시절에 대한 잘못된 관행해 대한 제도적 엄벌을 수긍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이라면, 더불어 살아가야 할 세상이라면 누군가를 향한 폭력 자체가 국가와 국가간, 사람과 사람간, 세대와 세대간, 남성과 여성이라는 전제의 관습적 사고보다는 사회의 공평무사한 교육과 합리적 사고로 관철된  제도로 바로 잡아 억울한 사람이 없길 바랍니다.

박지영 문학마당 편집장  newsfreezon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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