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과학기술자 묵자

  

▲ 이은영 묵자학회 이사

‘내가 알아야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로버트 풀검이란 사람이 쓴 책 이름이다. 인간이 현재 느끼고 배우고 믿고 있는 문화, 학문, 종교 등 거의 모든 사상이 이미 기원전 5세기경에 그 토대가 완성됐다는 학설이 있다. 칼 야스퍼스는 1949년 펴낸 <<역사의 기원과 목표>>란 책에서 이런 주장을 하며 기원전 900년에서 기원전 200년 사이를 ‘축의 시대’(Axial Age)라 명명했다. 이 시대가 인류에게는 유치원 시절이 되는 셈이다.

동양에서는 주나라 문왕이 기원전 11세기에 썼다고 전해지는 <<주역>>(周易)이 현존하며, 서양에서는 그리스에서 기원전 7세기경에 활동한 이오니아학파의 탈레스를 학문의 시조라 부르기도 한다. 탈레스는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는 학설을 내세웠고, 그의 제자인 아낙시만드로스는 무한자(Apeiron)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이라 했다. 기원전 5세기경에 활동했던 데모크리토스는 만물의 구성물질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原子)라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묵자 역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것을 단(端)이라 이름 지어 설명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 유럽에서 일어난 과학혁명과 18세기 말엽부터 19세기 초반에 걸쳐 역시 유럽에서 진행된 산업혁명의 결과로 서구사회는 다른 지역에 식민지를 개척함으로써 오늘날 과학기술과 경제력 측면에서 동양보다 우위를 점하게 됐다. 서구가 승자가 된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한다. 그러나 참된 역사는 패권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그 평가는 다를 수 있겠으나 사건 자체의 존재마저 지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동양의 사상은 서양의 그것보다 그 시원이 더 오래고 동시에 더 심오한 것임을 서양의 사상가나 학자들 중에도 인정하는 추세가 늘고 있다. 물론 서양 지성인들의 인종차별적 민족우월주의를 지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학문적 양심의 발로이기도 하지만 동양학의 발전에 기인하는 부분도 크다 할 것이다. 반면에 동양의 과학기술에 대한 과학사(科學史)적 연구가 아직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양에는 과거에 과학이랄 것이 아예 없었던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묵자의 글에는 여러 분야에 걸쳐 그 당시 그리스 학자들과 대등한 수준의 과학기술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다만 17세기에 와서야 묵자의 글이 발견되고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중국에서 묵자의 주해서가 체계를 갖추어 나왔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20년 전인 1991년야 묵점 기세춘선생의 번역으로 묵자의 과학기술에 대한 기록인 <경>(經)과 <경설>(經說)이 소개됐기 때문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 글에서는 <<묵자>> 원전 중 제 40~43편인 <경>과 <경설> 각 상,하편을 중심으로 거기에 나오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자료를 소개하고자한다.

1. 필요충분조건

故, 所得而後成也

小故, 有之不必然, 無之必不然

大故, 有之必然, 無之必無然 若見之成見也

조건, 그것을 얻으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필요조건, 그것이 있다 해도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없으면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는다.

충분조건, 그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렇게 되고, 그것이 없으면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는다.

어떤 것이 나타나면 그것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묵자의 <경 상편>에 맨 처음 나오는 항목이 고(故)로서 논리학에 나오는 필요충분조건을 설명한 것이다. 19세기에 이르러 독일의 수학자 칸토어가 집대성한 집합론은 이 필요충분조건을 근간으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중학교 교과서에 집합이론이 처음 실린 후 현재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이 이론을 가르친다. 필요충분조건과 같은 논리학 또는 수학적 기초이론이 묵자시대에 왜 필요했을까. 그리고 왜 이것을 맨 앞에 소개했을까. 앞으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2. 힘과 운동

力, 刑之所以奮也

力, 重之謂下 與重奮也

 

힘, 형체가 움직이는 원인이다.

힘이란 무게가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무게를 들어 올리는 운동이다.

動, 或從也

動, 偏祭從 若戶樞免瑟

운동, 공간이 이동하는 것이다.

운동, 기울어 이동하는 것이다. 마치 문고리가 잠금을 벗어나는 것과 같다.

힘과 운동의 법칙은 영국의 뉴튼이 집대성한 고전물리학의 기본명제이다. 힘을 운동의 원인으로 본 묵자의 생각이 뉴튼의 세 가지 운동의 법칙 중 두 번째인 ‘힘과 가속도의 법칙’과 일치한다. 또한 힘이란 무게를 낙하시키거나 들어 올리는 것이라 함은 뉴튼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발견한 지구의 중력과 만유인력을 떠올리게 한다. 묵자의 힘과 운동에 관한 이 설명은 힘이란 에너지이며, 질량(무게)과 가속도의 작용으로 보는 고전역학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3. 우주론

久, 彌異時也 宇, 彌異所也

久, 古今旦莫 宇, 東西家南北

시간이란 다른 시간까지 두루 가득 찬 것. 공간이란 다른 장소까지 두루 가득 찬 것이다.

시간이란 옛날부터 지금,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간이란 동서남북 상하를 말한다.

宇徒

長宇 宇或徒 說在久

長宇徒 而有處宇 宇南北在旦有在莫 宇徒久

우주는 이동한다

대우주, 우주 공간은 이동한다. 시간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대우주 공간은 이동하지만 역시 공간에 처해 있다. 공간의 우주는 남과 북이며 아침에도 있고 저녁에도 있다. 공간(宇)의 이동이 시간(久=宙)이다.

日中, 正南也

해가 중심에 올 때는 정남쪽이다.

묵자는 우주를 단순히 공간의 개념으로 보는데 그치지 않고 시간의 개념을 추가했다. 우(宇)는 공간, 주(宙)는 구(久)와 같은 의미로 시간을 의미한다. 묵자는 오히려 구(久)를 우(宇)보다 먼저 설명함으로써 시간의 우주를 더 중요시 했다. 현대 천문학계는 우주빅뱅설을 정설로 인정한다. 우주는 지금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팽창하고 있다. 또한 우주에 관한 시간의 개념은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 비로소 체계화된 개념인데 묵자는 그 시대에 시간으로서의 우주를 생각했다. 온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중세시대의 천동설에 비하면 얼마나 과학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천자문은 천지현황 우주홍황(天地玄黃 宇宙洪荒)으로 시작한다. 공간으로서의 우주는 무한히 넓고 시간으로서의 우주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길다는 뜻이다. 천자문에 묵자의 우주론이 담겨 있는 것이다.

4. 기하학

平, 同高也

平, 謂台執者也 若弟兄

평면, 높이가 같은 것이다.

평면은 축대의 높이가 같은 것을 말한다. 사다리의 평행과도 같다.

同長, 以缶相盡也

同長 楗與柱之同長也 正

같은 길이, 딱 맞게 같이 끝나는 것이다

같은 길이, 두 기둥은 길이가 같다. 그러므로 바른 것이다.

中, 同長也

中, 自是往相若也

중심, 같은 거리의 한 점이다.

중심, 이로부터 양단 또는 주변까지 거리는 서로 같다.

厚, 有所大也

後, 惟無所大

부피, 존재는 부피가 있다(입체)

부피, 없는 것도 있다.(선, 평면)

圜 一中同長也

圜, 規寫交也

원, 하나의 중심에서 같은 거리다.

원, 그림쇠로 그리면 겹친다.

方, 柱隅四讙也

方, 矩見交也

사각형, 기둥과 모서리 네 개가 모인 것이다.

사각형, 곱자로 재어보면 합치된 것이다.

端, 體之無序 而最前者也端, 是無同也

점, 개체가 공간이 없는 것이다. 극단까지 나누고 나누었기 때문이다.

점, 이것은 합동될 수 없는 것이다.

묵자는 목수였다. 그 당시로서는 가장 첨단 기술자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도구나 기계를 만들기 위해 기하학이 필요했을 것이다. 평면, 중심, 부피, 원, 사각형, 점 등 <<묵자>>에는 기하학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개념에 대한 정의가 기록돼 있다. 이러한 정의는 개념을 명확히 해놓음으로써 실제로 기계를 만들거나 성을 쌓을 때 응용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기원전 4세기와 3세기에 걸쳐 활동한 그리스의 유클리드를 기하학의 아버지라 부르는데 아마도 묵자시대에 그와 비슷한 기하학의 각론이 있었으리라 짐작하기에 무리가 없을 듯하다. 단지 그러한 내용이 전해오지 않음을 한탄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5. 광학

景到

在午有端與景長 說在端

景光之人 照若射 下者之人也高 高者之人也下 在遠近 有端與光 故景障內也

그림자가 거꾸로 됨

빛이 교차되는 한 점과 그림자 사이에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피사체를 비친 빛이 모이는 교차점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그림자, 사람을 비춘 광선은 화살처럼 직진하여 한 점에서 엇갈리므로 사람의 아랫부분을 비춘 빛은 높이 올라가고 사람의 윗부분을 비춘 빛은 아래로 내려간다. 그림자의 크기는 피사체의 빛과 그 빛이 모여 엇갈리는 구멍까지의 거리에 반비례한다. 그래서 그림자는 구멍을 지나 장애물 안에 생긴다.

景之小大 說在杝正遠近

景, 木杝景短大 木正景長小 光小於木則景大於木 非獨小也 遠近

그림자는 작아지고 커진다. 비스듬한가, 바른가, 먼가 가까운가에 달려 있음을 말한다.

그림자, 나무가 비스듬하면 그림자는 짧고 짙다. 나무가 바르면 그림자는 커지고 옅어진다. 빛이 나무보다 작으면 그림자는 나무보다 커지고 빛의 크고 작은 것만이 아니고 나무와의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鑑位 景一小而易 一大而正 說在中之外內

오목거울, 그림자는 한편으로 실물보다작고 거꾸로 보이며, 또 한편으로는 실물보다 크고 바르게 보인다. 피사체의 광채가 초점 안이냐 밖이냐에 달려 있음을 말한다.

鑑圃, 景一大一小 而 必正 說在不過正

볼록거울, 그림자는 한편으로는 크고 또 한편으로는 작으나 반드시 바르다. 빛이 거울의 초점을 통과하지 않기에 그림자가 바르다.

빛은 5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다. 직진, 반사, 굴절, 분산, 합성 등이다. 묵자는 이중에서 직진성과 반사성을 파악하여 이를 빛과 그림자, 빛과 영상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오늘날 사진기 발명의 원리인 피사체에 반사된 빛이 아주 작은 점을 통과하면 영상이 거꾸로 보이는 현상까지 설명한다. 오목거울과 볼록거울의 특성을 기술해 놓았다. 오늘날 렌즈와 같은 특성을 거울을 통해 연구했음을 알 수 있다.

6. 지렛대, 저울

負, 衡木加重焉而不撓 極勝重也 石校交繩 無加焉而撓 極不勝重也

짐, 저울대가 무게를 더해도 기울지 않는 것은 중심이 무게를 감당해 내기 때문이다. 우물물을 긷는 길고(길고)는 한쪽에 돌을 매달아 놓았으므로 무게를 더하지 않아도 기운다. 그것응 중심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衡, 加重於其一旁 必捶 權重相若也 相衡 則本短 標長

저울, 한쪽 편에 무게를 더하면 반드시 그쪽이 내려간다. 저울추와 무게가 같다면 저울대는 평형을 이루어 서로를 단다. 저울의 중심점에서 물건을 매다는 뿌리 쪽은 짧고 저울추를 매다는 눈금 쪽은 길다.

전자저울이 발명되어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천칭과 막대저울은 그 당시에 이미 사용하고 있었나 보다. 이 두 가지 저울 모두 지렛대의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묵자는 지렛대의 원리를 설명한 뒤에 저울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했다. 기원전 3세기에 아르키메데스는 “나에게 긴 지렛대와 받침목만 있으면 지구라도 움직여 보겠다”고 말했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지구가 허공에 떠서 움직이고 있는 공 모양이란 생각은 없었으니 커다랗고 무거운 땅이라 생각했을 터이다. 묵자가 성을 쌓는 일에 지렛대를 사용했을 것이라 상상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묵자>>는 총71편으로 구성됐다. 그 중 제22편 절용 하, 23~24편 절장 상하를 비롯한 8개 편은 제목만 전해올 뿐 내용은 전해오지 않는다. 제51편을 비롯해 10개 편은 그 제목과 내용이 모두 전해지지 않는다. 묵자의 과학기술에 관한 이론 또는 생각이 경과 경설 각 상하로 4개 편에 걸쳐 기술되어 있다. 내용이 전해오지 않는 부분에 또 다른 과학기술에 관한 언급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전해온 <<묵자>>에는 과학기술 분야를 4개의 편으로 별도로 구분했다. 기원전 4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학(Physica)과 후자연학(Metaphysica)로 구분하여 오늘날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으로 나누기 1세기 전이다. 철학자이며 사상가이자 반전 평화를 실천한 운동가였던 묵자는 목수이자 기술자이며 과학자였다. 묵자시대의 과학기술 수준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면 서양중심의 과학사를 고쳐 써야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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