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특히 죽음과 언론의 관계에 대하여. 죽음에는 개인적 죽음과 집단적 죽음이 있다. 개인적 죽음에도 자연적인 죽음이 있고 불의에 당하는 죽음이 있다.

언론은 자연적인 죽음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다만 생전에 큰 흔적을 남긴 사람에게는 부고기사(obituary)까지 써서 그 죽음을 기린다. 언론은 특히 불의에 당하는 죽음에 관심이 많다. 사건, 사고, 범죄에 의한 죽음은 일종의 사회적 죽음이기 때문이다.

사건, 사고의 경우 그 원인을 상세히 밝히고 죽은 이의 신원도 가급적 보도한다. 그러나 범죄 희생자의 경우는 좀 다르다. 범죄 내용과 희생자의 신원을 상세히 밝히는 것이 조심스럽다. 흉사(凶事)이기 때문이다.

범행을 저지른 자의 신원마저 모호하게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집단적 죽음은 거의 모두가 사회적 죽음이다. 언론이 특히 주목하는,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가 원인인 경우도 그렇지만 사회적 구조가 잘못되어서, 국가권력의 개입(학살)이나 방조 혹은 부재로 인해서 집단 죽음이 발생할 경우 언론은 그 원인을 따져 묻고, 책임을 추궁해야 마땅하다.

현장 중계로 언론의 역할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편 죽은자들이 누구인가를 개별적으로 밝혀내고 그들의 사연을 취재 보도해 인격화함으로써 억울하고도 황당한 죽음에 대한 전 사회의 추모분위기를 모으고 필요하다면 책임자(들)에 대한 책임 추궁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

지금까지 집단적 죽음(그러므로 사회적 죽음)이 발생했을 때, 우리 언론은 늘 그렇게 해 왔다. ‘참사’라 이름 붙이고 그 원인을 파헤치고 책임자들을 찾는 동시에 희생자들의 신원을 밝히고 그 억울하고 아픈 사연들을 보도해 왔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그런데 ‘10.29용산참사’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원인규명도, 책임추궁도, 희생자들의 신원을 취재해 그 억울하고도 황당한 죽음의 사연을 밝히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다.

이런 와중에 참사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은 모호해지고 책임져야 하는 자들이 책임을 떠넘기려는 조짐이 보이고 사회적 추모분위기는 싸늘히 식어간다.

오히려 어렵게 희생자 명단을 입수해 공개한 시민언론 민들레에 대한 공격이 거세다. 같은 언론까지 합세한다. 주된 공격포인트는 희생자 가족의 동의를 구했느냐이다.

나는 개인적 죽음이 아닌 사회적 죽음을 대함에 있어 언론이 반드시 가족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적 죽음이란 우리 공동체가 안아야 할 공동의 죽음이며 그 공동체의 책임있는 일원인 언론사와 언론인은 마땅히 누구의 승인을 받을 필요없이 취재하고 보도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언론의 권리이며 의무다.

나는 시민언론 민들레 편집회의에서 그렇게 주장했다. 다만 실제 가족이 문제를 제기하며 명단 삭제를 요구할 경우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 개진을 했다. 그런 가족은 이번 참사를 늘상 벌어지는 사건 사고의 하나로 여기고 있으며 자신의 가족이 죽은 것은 운 나쁘게도 우연히 그 흉사에 말려들었을 뿐이라고 자탄하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를 두고 불필요한 논쟁을 하지 말자는 뜻이다.

그러나 가족도 아니면서 명단공개 자체를 불법 혹은 패륜이라고 공격하는 자들(언론 포함)의 경우는 다르다.

이들은 이번 참사가 부른 떼죽음이 사회적 죽음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이야말로 직간접적으로 ‘10.29참사’의 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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