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까지 용산 라흰갤러리 개인전
역설적 코드로 욕망을 증발시키는 작업

[서울 =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한동안 음식이나 음식을 먹는 사람과 동물을 그렸다. 돌이켜보면 음식 자체나 먹는 행위에 도무지 관심이 없어서 음식물을 섭취하는 사람이나 동물을 그려도 음식물로 입이 막혀서 입구가 지워진 형태로만 그려졌다. 그것은 때때로 형상이나 표정마저 짐작하기가 어려운 모호한 생물같이 느껴졌다. 얼마 전부터 이런 모호함을 더욱 명확하고,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애써 대상을 세밀하고 입체감 있게 그린 다음, 스트로크를 크게 하여 쓱 밀어버리는 스와이핑 아웃(swiping out) 연작을 진행하고 있다. 오랜 시간 꽤 공을 들여 꼼꼼하게 대상을 묘사하여 그린 다음 완성 직전에 한 번의 붓질로 무너뜨릴 때 시원하면서 짜릿했다. 그 한 번의 붓질로 그려진 대상이 뭉개지고 흐려지면서 내가 드러내고자 했던 실체가 아슬아슬하게 순간 명징하게 떠오른다. 프로이드가 말하는 죽음을 향한 충동(Thanatos)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Christmas is coming
Christmas is coming

이페로 작가의 개인전 ‘스와이프 아웃 Swipe Out’이 12월 10일까지 용산 라흰갤러리에서 개최된다. 작가는 오랜 기간 그를 괴롭혀온 신체의 통증을 상쇄하기 위해 화폭을 도피처로 삼고, 작업을 통해 바깥의 모든 것으로부터 초탈하기를 염원해왔다.

“항상 불안하고 초초했다. 뭔가를 해야 할 게 있거나, 뭔가를 할 때는 하기는 힘들었지만 견딜만 했다. 대학을 국문과로 갔는데 1년만 다니고 그만 두었다. 글자와 텍스트들이 둥둥 떠다녀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이미지로 도피하기 위해 미술대학으로 왔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언제나 좋았다. 흰 종이나 빈 캔버스, 또는 빈 공간은 막막하였지만 거기를 그려서 채워나가면서 힘겹게 숨은 쉴 수가 있었다. 작업은 힘들었지만, 작업을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이 뿌듯하고 대견해서 즐거웠다. 그 결과로 나온 작품들은 마치 자식처럼 사랑스럽고 소중했다”

파리지옥
파리지옥

뭔가를 해야만 견딜 수 있는 강박은 오히려 그를 소극적이고 반응적으로 만들었다. 해야만 하는 일 대부분은 하고 싶지 않아서 미루거나 최소한으로 하는 습관을 길렀다. 그림을 그리는 일, 뭔가를 만드는 일이 그가 능동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었고, 아티스트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는 그릴 때 살아있구나 하는 실감이 난다.

“아주 오랫동안 언제나 아팠다. 또 쉽게 지쳤다. 아프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순간을 늘 열망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도 언제나 격동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내 마음을 달래고 잊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또 그려도 그림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고, 맹목적으로 그리는 행위 자체가 괴로웠지만 즐거웠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절제되어야만 하는 일상이 마치 스스로 구속해 놓은 노예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아연실색할 때가 많다”

진리
진리
Pink and blue cake
Pink and blue cake

그는 부처의 입에 보석을 물리거나, 순수한 어린이가 강렬한 식욕을 드러내는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이같은 역설적이고 해학적인 기호는 지워지기 전의 형상이 지닌 맹렬한 욕망을 즉각적으로 보여준다. 또 그는 지움으로서 모든 것이 모호해진 가운데 삶의 실체를 더욱 명료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생의 본능적인 욕망을 증발시켜 깨달음의 세계에 조금씩 다가가는 과정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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