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연승을 달성한 박일천 챔프와 그리고 김광선 선수

지난 주말 2023 서울 신인대회 겸 서울 생활 복싱대회가 한국체대 복싱장에서 개최되어 참관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한국 아마복싱의 살아있는 전설 조철제 원로회 회장을 비롯 김승미 전대표팀 감독과 70년대 한국 아마복싱의 간판 복서로 전무후무한 104연승을 달성한 박일천 챔프등 원로 분들이 계셨다.

김승미(명지대) 감독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미들급에서 선발된 국가대표 출신의 복서다. 1989년부터 4년 동안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하면서 중량급 출신의 지도자는 지도력이 부족하다는 편견을 깨고 국제대회 종합우승 4회를 일궈낸 명장이다. 선수들에게 신망이 두터운 김승미 감독은 지도자는 선수들의 강점을 캐취(Catch) 이를 더욱더 부각(浮刻)시켜 선수들의 기량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지도자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싱, 금매달 김광선 선수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싱, 금메달 김광선 선수

4년 동안 김승미 감독의 지도력을 증명 (證明) 하는 사례들을 열거해보자. 언더 독 (상대적 약세)에 있던 오영호(상무) 가 1988년 3월 제1회 서울컵 LF급 결승에서 국가대표 간판 오광수를 꺽은 경기를 시발로 무명의 조동범(상무)이 북한의 세계랭킹 8위 김덕남과 1987년 유고 월드컵 LF급 금메달 불가리아의 폴라코프를 판정으로 서정수(홍익대)가 허영모를 꺽은 아르테미에프(러시아)를 이창환(서울 시청)이 비차이 카드포(태국) 를 양석진(동아대) 이 차차이 사사쿨(태국)을 홍성식(서원대)이 세계선수권 준우승자 그리고리안 (러시아)을 박덕규(원광대)가 쿠바의 아놀드 메사를 제압하는등 국내 복서들이 세계적인 복서들을 연달아 격파하는 대이변을 연출시킨 지도자가 바로 복싱계 히딩크 김승미 감독이다.

이런 공로로 그는 서울 정도 600인의 한분 으로 자랑스럽게 선정되었다. 1949년 황해도 출신의 박일천 (전매청)은 70년대 방콕 아시안게임 태국 킹스컵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아시아선수권을 휩쓸며 초유의 국제대회 4관왕을 달성 70년대 한국 아마복싱 전성기때 중심축을 형성한 복서다. 

김승미 감독과 조철제회장, 김광선챔프 그리고 박일천챔프(외쪽으로부터)
김승미 감독과 조철제회장, 김광선챔프 그리고 박일천챔프(외쪽으로부터)

▶ 현재 한국 아마복싱의 최악의 침체기다. 아마복싱 몰락은 지난 1997년 4월 25일 대한복싱협회 김승연 회장이 퇴임하면서부터 예고되었다. 15년간 재임하면서 백억을 쏟아부은 김 회장의 퇴임과 맞물려 한국복싱팀은 산사태가 난 듯 삽시간에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 4반세기가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한 복싱협회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난파선(難破船)처럼 표류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 어느 상황보다도 나침판처럼 방향을 잡아줄 인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현실에 비취 문득 춘추 전국시대 제나라 명재상 관중이 만주 요하 상류에 있는 북방 흉노족인 고죽국 을 토벌할 때 이야기가 생각난다. 장안에서 출정할 때는 봄이었으나 수 만리 떨어진 전장에서 돌아올 때는 눈이 쌓인 겨울이 되어 자칫 혹한의 설산에서 길을 잃으면 허허벌판 만주대륙에서 군사들이 얼어 죽을 판이었다. 

서울올림픽에서 결승전을 치루고있는 김광선선수
서울올림픽에서 결승전을 치루고있는 김광선선수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까 고심하던 관중은 오랜 세월 그 지역에서 자란 베테랑급 노련한 말 말 한 마리를 풀어놓았다. 그러자 그 경험 많은 그 말은 그동안의 축척된 본능에 따라 길을 내어 남쪽으로 군사들을 인도 무사히 돌아 올수 있었다. 노련한 말이 길을 안다는 노마지로(老馬知路)의 고사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어려울 때 일수록 경험 많은 전문가의 지혜와 조언이 필요하다는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이번 2023 서울 신인대회에서 양천구 목동 SM 체육관에서 5체급을 석권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SM 체육관 강대하 관장(31세)이 최우수 지도자상을 수상 했다. 진심으로 축하드리면서 선수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길 바란다.

이날 경기장에는 88년 서울올림픽 플라이급 금메달 김광선 챔프가 참석 우수선수에게 상패를 전달해주기도 했다. 이번 서울 신인대회에 참관한 김광선은 참으로 감개무량한 심정으로 경기를 참관했을 것이다. 한양공고 1학년이던 1980년 3월 바로 서울 신인대회에 코크급(45Kg) 으로 출전 우승을 차지한 대회였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체육관 소속으로 출전한 김광선은 동국대 김진영 복싱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출전을 했다. 서울 신인대회는 황철순 정영근 주호등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석권한 챔프들도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신인 복서들의 등용문(登龍門)이다.

김광선은 이듬해 전국 신인대회에서 오광수(전남체고)에 패해 탈락했고 이후 허영모에 3연패를 당하는등 심한 부침(浮沈)을 겪었던 복서다. 그러나 담금질을 당하면 당할수록 강해지는 강철처럼 그는 더욱더 단단해졌다. 분기탱천한 그는 1982년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 9개의 금메달을 획득한다. 김광선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말 그대로 대체불가 슈퍼 에이스였다. 

우수선수를 경려하는 김광선선수
우수선수를 경려하는 김광선 챔프

김광선은 모두의 염원대로 파죽의 6연승을 질주 금메달을 획득 은퇴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김광선은 1987년 8월 대한체육회 우수선수상. 한국일보 백상 대상 최우수선수상. 1988년 국민훈장 청룡장. 대한 복싱협회 최우수선수상 한국기자연맹 최우수선수상을 휩쓸며 1988년 용띠해에 1964년 용띠 복서 김광선은 승천(昇天) 을 했다. 

조철재 원로회장과 박일천고문(외쪽으로부터)
조철재 원로회장과 박일천고문(외쪽으로부터)

이러한 화려한 이력을 지닌 그를 바라보면서 그와의 지난날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김광선은 1964년 6월 8일 전북 군산시 조촌동 117번지에서 김갑천 옹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런 그가 2번째 이사를 간 곳이 군산시 선양동 905ㅡ10 번지로 바로 필자와 담 하나 사이로 마주 보는 이웃이었다.

1989년 2월 필자가 군 재대하고 자택에서 칩거하고 있을 때 골목길에서 그를 여러 차례 마주쳤지만 난 애써 그를 외면하고 돌아섰다. 당시 필자는 공사판에서 일당 8천원을 받고 막일을 할 때였다. 얄팍한 자존심에 그와 얼굴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세월이란 놈이 제트기보다 아니 번개보다 빠르게 달려 어느덧 33년이란 세월이 덧없이 흘러갔다. 이번 주말 김광선을 보자 그때 그 순간이 불현듯 떠 올랐다. 

종합우승을한 SM체육관선수들과 강대하관장(뒷줄 우측두번째)
종합우승을한 SM체육관선수들과 강대하관장(뒷줄 우측두번째)

▶ 장하다! 김광선 자랑 스런 군산의 아들 김광선

김광선이 1988년 10월 2일 그가 서울올림픽 복싱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 군산 시내 중심가인 중앙로에는 장하다! 김광선 자랑 스런 군산의 아들 김광선이란 플래카드가 나부껴 축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김광선은 한양공고 건축과 3학년 때인 1982년 명동 코스모스 백화점 옆에서 형들과 함께 구두를 닦으면서 운동을 병행 국가대표로 발탁된 불굴의 의지를 지닌 복서였다. 김광선은 그해 3월 제3회 킹스컵 대회에 첫 출전 LF급 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선발전 결승에서 허영모 (한국체대)에게 패하고 2진으로 출전한 대회였다. 당시 김광선은 상체를 펴고 싸우는 업 라이트 스타일(Up right style) 이었다. 그러나 그 후 김광선은 쉴새없이 몰아치는 저돌적인 어그레시브(Aggresssive)한 파이터로 변신한다. 국제무대에서 빠른 풋웍 을 이용 상대편을 가격하고 미꾸라지처럼 재빨리 빠져나가는 히트 앤드 어웨이 (Hit and away) 전법을 구사하는 구 소련등 유럽 복서들에겐 어설픈 파이터로 는 승리할 수 없음을 간파 링 크래프트(ring craft)를 대폭 수정한 후 나온 대응책이었다.

최우수지도자상을 받은 SM체육관 강대하관장
최우수지도자상을 받은 SM체육관 강대하관장이 선수를 격려하고있는 모습

이런 그를 1984년 LA 올림픽을 앞둔 허영모 가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광선이는 제가 3연승을 거둘 때 하곤 전혀 달라졌어요. 요즘 광선일 보면 정말 무섭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처럼 김광선은 사각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에 진화를 거듭 정상에 우뚝 섰다. 이점 또한 자라나는 복싱후배들이 배워야 할 삼아야 할 대목이라 생각한다. 은퇴 후 1998년 동대문구 이문동에 복싱체육관을 개설한 김광선은 방송해설위원을 병행하면서 복싱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제 마지막 한 장남은 달력을 보면 왠지 숙연해진다. 보내는 아쉬움과 다가올 희망이 교차 되는 기로에 서서 다시 한번 우리 복싱인들의 건승을 바란다.

조영섭기자는 복싱 전문기자로 전북 군산 출신으로 1980년 복싱에 입문했다.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현재는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복싱인이다.

관련기사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