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댓글 캡처

[뉴스프리존=안데레사 기자]한 라디오 인터뷰의 내용중, "속상하고 황당했던 건 모니터 화면을 이렇게 보면서 ‘이게 눈에 안 보이냐. 눈깔을 빼서 씻어줄까.’ 이런 폭언까지 했다고,. 사실은 그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에게 가르쳐줬겠죠. 그리고 이분이 그걸 못 보셨을 건데 그러니까 잘 봐라라고 얘기하는 거를 ‘눈깔을 빼서 씻어줄까’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사람의 인간성을 파괴했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너무 화가 나고 속이 상하고 그랬습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과 관련해, 상급자가 신입자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일명 ‘태움’이라는 악습이 원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한,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를 바로잡아 달라는 내용의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태움’은 신입을 교육할 때 ‘영혼까지 태울 정도로 혼낸다’는 간호사들 사이 기강잡기 문화를 말한다. 태움 논란은 숨진 박씨의 남자 친구가 17일 간호사 커뮤니티인 ‘널스스토리’에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그는 “간호부 윗선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태움’이 여자 친구를 벼랑 끝으로 몰고갔다”고 주장했다. 실제 '간호사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주세요'라는 게재 글에 20일(오전 11시) 현재 1171명이 참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간호사의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답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네티즌들의 청원 동참 행렬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학병원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이후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태움 경험 사례가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울었다고 6시간 동안 벽을 보고 서 있게 했다거나 신발 소리가 커서 혼났다는 내용들이다. 2005년 전남대병원에서 간호사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태움이 문제로 지적된 건 10년 전부터 이다. 당시 수술실 간호사였던 L씨는 의사의 심한 꾸중과 욕설, 선배 간호사의 야단 등에 시달리며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사실이 법원에서 인정됐다. 한편, 이번 사건이 벌어진 해당 병원은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조사위원회를 통해 진상조사에 주력하고 있다.

국민청원의 글, 일부에선 간호사가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 만큼 엄격한 교육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아이디 ‘sdaui’씨는 “본인도 지난해 졸업한 신규 간호사로 대학병원을 다니고 있는데 출근하기가 죽기보다 싫다. 자살한 간호사의 마음이 너무도 공감이 간다”고 말했다. 이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를 했고 일생을 의롭게 살며 간호직에 최선을 다한다는 선서로 시작했던 이 생활이 왜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을까”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한림대 성심병원 장기자랑 사태로 간호사들의 ‘태움’, ‘내리갈굼’의 악습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음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같이 일하는 동료를 잃었다는 애통한 심정에 병원 분위기도 침통하다"며 "이번 기회에 문제점은 없었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진상조사 및 경찰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공식 입장을 밝힐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인격모독이나 사생활 지적 등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로 모욕감을 주는 행위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가뜩이나 인력난이 심한데 환자를 돌보며 후임 교육까지 시키기 어려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동시에 나온다. 중앙일보에 의하면, 병원 측에 따르면 박씨는 숨지기 이틀 전인 13일 오후(오후 2시30분~11시) 내과계 중환자실에서 근무했다. 당시 동료 간호사 2~3명과 환자의 자세를 바꿔주다 배액관(몸 속에 고인 피나 체액을 빼는 관)이 빠졌다고 한다. 박씨는 심하게 자책했다. 남자친구에게 “나 큰일났어”라는 카톡 메시지를 보냈고, 그 앞에서 손을 떨었다고 한다. 동료 간호사는 “내과계 중환자실은 고된 곳으로 통한다. 박 간호사가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고 말했다. 병원 관계자는 “치명적인 실수가 아니었다. 그를 탓하거나 심한 질책을 하지 않았다”며 “1차 조사에서 간호사 간의 괴롭힘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규 간호사가 병원에 들어가면 오리엔테이션을 거쳐 현장에 투입된다. 대형 종합병원(300병상 이상)에선 보통 프리셉터(사수)와 2인 1조로 환자를 돌본다. 숨진 박씨와 같은 병원에서 일한 간호사는 “신규 간호사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사수의 일이 두 배가 되기 때문에 업무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증언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의 10년차 간호사는 “신입 때 사수에게 등 때리기, 귀 옆머리 잡아당기기, 독방 가두기 등을 당했다. 부모님에 대한 모욕적인 말도 예사로 들었다. 그나마 나는 나은 편이었고 동료 중엔 쇠로 된 차트로 머리를 맞은 애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대형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일했던 강 모(25) 씨는 지난해 태움을 견디다 못해 2년 만에 간호사 일을 그만뒀다. 강 씨는 “‘사람 생명을 다루는 일이니 깐깐하게 교육해야 한다’는 미명 하에 인격적 모욕도 예사”라고 털어놨다. 태움 문화 탓인지 신규 간호사의 이직률이 높다. 2016년 대한간호협회 조사에 따르면 신규 간호사 이직률은 35.3%에 달한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태움 근절을 위해 간호사들의 살인적인 근무 환경을 개선해달라’는 글이 올라와 19일 오후 5시 현재 1만2000명이 참여했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신입 간호사 교육을 할 때 사수 한 사람만 맡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교육 담당자는 기존 업무를 맡지 않고 교육에만 집중하게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찬기 대한간호협회 홍보국장은 “간호사 노동강도가 강한데 신규 간호사 교육까지 맡으면 더 힘들다. 태움 문화를 근절하려면 인력을 늘리게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6년 병원업종에서 일·가정 양립을 위해 관리감독을 강화해 태움을 근절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여전히 신입 간호사 3명 중 1명은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1년도 안돼 병원을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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