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의 메시지버스] 자본가의 정당조차 되기를 포기한 국민의힘

윤석열 앞에만 서면 이명박도 진보적

2022년이 저물어간다. 새로운 정권이 출범한 해에는 사회 전반에 활력과 기대감이 흘러넘쳐야 정상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등장 첫해를 맞이한 올해에는 사방에 잿빛만이 감돈다.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의 3중고의 직격탄을 맞은 민생경제의 춥고 배고픈 현실을 생각하면 대다수 국민들의 표정이 밝지 못한 상황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의 우울함과 답답함에는 단순히 경제난 탓으로만 돌리기 어려운 뭔가가 있다. 필자는 그 뭔가의 고갱이에 윤석열 정권의 계급적 퇴화가 똬리를 틀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보수세력이 정권을 장악할 경우 사회가 뒷걸음질을 치는 기분이 드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는 진보진영이 집권하면 왠지 모를 불안함이 대중에게 엄습하는 사태와 비슷하다. 진보의 집권에도, 보수의 정권 창출에도 일장일단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윤석열 정권에는 이명박 정권 시절 및 박근혜 정권 시기와는 결을 달리하는 유형의 칙칙함과 음산함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권은 정권의 최상층을 차지하는 수뇌부의 인적 구성 측면에서 이명박 정권의 후계자 성격이 완연하다. 현 정권의 행정부와 용산 대통령실은 이명박 계열 출신 인사들로 가득하다. 당장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명박 정권의 청와대에서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역시 MB 정부의 경제금융비서관으로 활동했다.

여기까지만 고려하면 이명박 정부도, 윤석열 정부도 자본가 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고 반영하는 전형적인 부르주아 정권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비교해서도 확연히 드러나는 윤석열 정부의 퇴영성과 시대착오성은 정권의 또 다른 중심축인 집권 여당의 당권파를 통해서 뚜렷이 확인된다.

이명박 정권의 성립 과정과 출범 초기에 눈에 띄는 활약상과 존재감을 과시한 주역은 현재는 고인이 된 정두언 전 의원과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이었다. 양자의 공과를 따지는 건 이번 칼럼의 목적이 아닌 터라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하겠다.

관건은 이명박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인 이재오와 정두언은 윤석열 대통령 주변에 포진한 윤핵관들에게는 완전히 결여된 결정적 특장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건 이재오와 정두언이 치열한 선거전을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서울 강북에 지역구를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재오의 지역구는 은평이었고, 정두언의 선거구는 이웃한 서대문구에 위치했다. 보수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막대기를 꽂아놔도 당선되는 지역이 결코 아니었다.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은 근대적 도시의 발달을 가져왔고, 근대적 도시의 발전은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을 역으로 촉진시켰다. 굳이 거창한 마르크스주의적 사회과학 개념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도시에 거주하는 부르주아지 계급은 농촌에서 군림하는 지주계급과 견주어 과감한 변화와 혁신을 긍정하고 지향하기 마련이다. 똑같은 국민의힘 당원이라도 서울 강남 번화가의 국민의힘 당원이 경상도 오지의 국민의힘 당원들보다는 더 유연하고 세련된 배경이다.

지방토호 윤핵관들, 생뚱맞게 수도권 필승전략을 논하다

윤석열 정권의 운명과 향방을 가르는 아주 중차대한 모임이 얼마 전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윤핵관 중의 윤핵관 네 사람을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 집들이 행사 형식을 빌려 부부 동반으로 초청한 것이다. 명실상부한 윤핵관들일 이들 네 명의 이름을 소개하자면 가나다 순서로 권성동 의원, 윤한홍 의원, 이철규 의원, 장제원 의원이다.

법원이 이준석 전 대표의 손을 사실상 들어주고 비대위원회를 무력화시키면서, 이준석 전 대표를 축출하려던 국민의힘 '친윤' 입장에선 큰 역풍을 맞은 셈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한 '윤핵관'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적잖은 정치적 타격이 예상된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한남동 관저에서 권성동·장제원·이철규·윤한홍 등 '윤핵관' 의원들과도 부부동반 만찬회동을 가진 것은 실질적인 ‘정치국 회의’였다. (사진=연합뉴스)

부인들까지 포함해 총 10명이 회합한 이날의 집들이 모임은 윤석열 정권 향후 5년의 정국운영의 기조와 방향을 설정하고 조율하는 실질적인 ‘정치국 회의’였다. 이날 저녁의 한남동 대통령 관저는 군부독재 시대의 저 악명 높은 안가(安家) 구실을 톡톡히 해낸 셈이다.

필자가 특히 주목할 대목은 네 사람의 지역구였다. 권성동은 강원도 강릉, 윤한홍은 영남권인 창원, 이철규는 강원도 삼척, 장제원은 부산 사상이다. 수도권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이 네 곳 전부 보수정당의 안전한 텃밭이다. 중도층의 까다로운 표심을 의식할 이유도, 분노한 2030 청년들의 눈치를 살필 번거로움도 원천적으로 불필요한 그야말로 낙선 가능성 제로의 동네들이다. 지방토호들이 편안하게 금배지 달기에 딱 좋은 곳들 일색인 것이다.

최근 용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에선 수도권에서 경쟁력이 검증된 당대표가, 중도층의 압도적 지지를 견인해낼 당대표가, 젊은 MZ 세대 사이에서 인기와 신뢰가 높은 당대표가 뽑혀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윤 대통령 본인은 수도권에서 당선은커녕 출마해본 경험조차 없는 인사들만, 그 이념과 노선에서 보수적이다 못해 반동적이기까지 한 사람들만, 청년들로부터 구태라고 욕먹기에 제격일 기득권 정치인들만 정확히 골라서 최측근으로 열심히 총애하고 있다. 이쯤 되면 유체이탈도 가히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겠다.

이재오는 근래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이 윤석열 정권에 들어와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 같다는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지방토호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실세로 자리매김한 윤석열 정권에서는 대도시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 애쓰는 이재오 같은 인물조차 좌파로 인식되기가 쉽다.

과거 1980년대에 이른바 사회구성체 논쟁이 한창 맹위를 떨칠 무렵 한국사회의 근본적 모순이 봉건적 후진성에 있는지, 자본주의적 착취성에 있는지 뜨겁고 날선 격론이 벌어졌었다. 한국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양적 팽창과 질적인 고도화가 동시에 진행됨과 더불어 이제는 그 누구도 한국사회를 발본적으로 변혁시킬 출로와 돌파구를 농촌해방에서 찾지 않는다. 지주계급이 아닌 자본가 계급을 타도해야만 한다는 논리와 시각이 대세로 정착된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지주계급의 일종인 지방토호들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 모여들어 국가권력을 쥐락펴락하는 시절로 나라를 되돌려놓았다. 산업자본가 겸 금융자본가 안철수가 여당 안에서 서러운 왕따 신세가 된 건 국민의힘이 대도시의 상업과 제조업에 기반한 자본가 정당에서 지방에 드넓게 소유한 토지에 터전을 둔 향신계급의 정당으로 순식간에 수세기를 역주행한 결과물일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들의 역사적 발전단계만을 준거로 삼는다면 한국은 아예 산업화 이전 시기로 단숨에 회귀한 양상마저 띠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를 부쩍 강조하고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국민의힘은 윤핵관으로 대표되는 봉건적 지방토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산업화를 너무 늦기 전에 이뤄내야만 할 것이다. 노동자의 권익은 효과적으로 신장시키지 못할지언정 최소한 자본가의 이익이나마 성공적으로 옹호해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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