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輪迴)

윤회란 무엇일까요? 인간이 죽어도 그 업(業)에 따라 육도(六道)의 세상에서 생사를 거듭한다는 불가(佛家)의 교리입니다. 즉 생명이 있는 것은 여섯 가지의 세상에 번갈아 태어나고 죽어 간다는 것으로 이를 육도 윤회(六道輪廻)라고 하지요.

첫째, 지옥도(地獄道)입니다.

가장 고통이 심한 세상이지요. 지옥에 태어난 이들은 심한 육체적 고통을 받게 됩니다.

둘째, 아귀도(餓鬼道)입니다.

지옥보다는 육체적인 고통을 덜 받으나 반면에 굶주림의 고통을 심하게 받는 세상입니다.

셋째, 축생도(畜生道) 입니다.

네발 달린 짐승을 비롯하여 새·고기·벌레·뱀까지도 모두 포함되는 세상이지요.

넷째, 아수라도(阿修羅道)입니다.

노여움이 가득 찬 세상으로서, 남의 잘못을 철저하게 따지고 들추고 규탄하는 사람은 이 세계에 태어납니다.

다섯째, 인간이 사는 인도(人道)입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길이라는 뜻이지요.

여섯째, 천도(天道)입니다.

행복이 두루 갖추어진 하늘 세계를 말합니다.

곧 인간은 현세에서 저지른 업(業)에 따라 죽은 뒤에 다시 여섯 세계 중의 한 곳에서 내 세를 누리며, 다시 그 내 세에 사는 동안 저지른 업에 따라 내 내 세에 태어나는 윤회를 계속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이 윤회의 여섯 세상에는 절대적인 영원이란 없습니다.

수명이 다하고 업이 다하면 지옥에서 다시 인간 도로, 천국에서 아귀도로 몸을 바꾸어서 태어날 수도 있다는 얘기이지요. 곧 육도의 세계에서 유한의 생을 번갈아 유지한다는 것이 불가의 윤회 관입니다.

이 윤회는 철저하게 스스로 지은 대로 받는다는 자업자득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스스로 착한 일을 하였으면 착한 결과를 받고, 악한 일을 하였으면 악한 결과를 받는(善因善果惡因惡果) 자기 책임 적인 것입니다.

자기가 지은 바를 회피할 수도 없고 누가 대신 받을 수도 없습니다. 오직 자기가 지은 업의 결과에 따라서 다른 세계로의 향상(向上)과 향하(向下)가 가능할 뿐이지요. 그러니까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자율적인 의지와 실천이 강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윤회는 윤리 도덕적인 측면, 즉 권선징악적(勸善懲惡)인 차원에서 특히 강조되어왔습니다. 그러나 불가에서는 권선징악을 넘어선 해탈의 차원에서 이 윤회설이 강조되었던 것입니다. 윤회 한다는 것은 결국 괴로움이므로 영원히 윤회에서 벗어나는 열반(涅槃)이나, 극락왕생(極樂往生) 등을 보다 중요시 하였던 것이지요.

따라서 이생에서 다음 생이 어떻게 전개되는가 하는 데 대한 관심보다, 현실의 삶에서 한 생각한 생각을 깊이 다스려서, 언제나 고요한 열반의 세계나 불국토(佛國土)에 있는 것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점검하도록 하는 데 치중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마음이 번뇌로 가득 차 있는 것이 곧 지옥이고, 탐욕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귀이며,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축생이라고 보는 등, 이 순간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끊임없이 육도 윤회 한다고 보았습니다.

원불교 《대종경(大宗經)》 <제9 천도품(薦度品)> 제 11장에,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사람의 영식이 이 육신을 떠날 때에, 처음에는 그 착심을 좇아가게 되고, 후에는 그 업을 따라 받게 되어 한없는 세상에 길이 윤회하나니, 윤회를 자유 하는 방법은 오직 착심(著心)을 여의고 업을 초월하는 데에 있나니라.」 하셨습니다.

그럼 착심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일에 마음을 붙임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의미. 사물에 집착하는 마음, 사랑하는 것,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등에 집착하는 마음. 또한 재색 명리ㆍ처자 권속ㆍ부귀영화 등, 세속적 가치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말합니다.

착심을 떼지 못하면 죄업의 바다에 빠지게 됩니다. 착심 떼는 공부가 생사 해탈 공부이지요. 견성(見性)을 했어도 번뇌(煩惱)와 착심은 바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점차로 노력하고 수행해야 없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업이란 불가의 근본 교리 가운데 하나로 몸(身)ㆍ입(口)ㆍ뜻(意)으로 짓는 말과 동작과 생각, 그리고 그 인과를 의미하고, 그것이 업은 짓는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태어나면 가장 큰 고통이 생로병사(生老病死)입니다.

우리가 이 네 가지 고통(四苦)을 벗어나려면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하여 열반에 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럼 우리도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극락에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단기 4356년, 불기 2567년, 서기 2023년, 원기 108년 1월 18일

덕산 김덕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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