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종구출

계묘년(癸卯年) 연휴 보람차게 보내셨는지요? 새해에는 특히 조심해야 할 말이 있어 ‘화종구출(禍從口出)’이라는 말에 대해 알아봅니다. 화종구출이라는 말은 진(晋)나라 부현(傅玄)의 <구명(口銘)>에서 나온 말입니다. 모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지요.

세상의 제일 무서운 폭력은 아마 바로 언어(言語)일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함부로 입을 놀리거나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삼가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요. 맹렬한 불길이 집을 태워버리듯 말을 조심하지 않으면, 결국 그것이 불길이 되어 내 몸을 태우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불행한 운명은 바로 자신의 입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오죽하면 옛 선인들이 ‘입은 몸을 치는 도끼요, 몸을 찌르는 날카로운 칼날’이라고 했을까요? 요즘 대화 중에 막말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고, 심지어 폭행과 살인으로 이어지는 불행한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듣기 좋고,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너그럽고 부드러운 말은 점차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불행한 운명은 바로 자신의 입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이지요.

공주처럼 귀하게 자라서 부엌일을 거의 안 해본 여자가 결혼해서 처음으로 시아버지 밥상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려 만든 반찬은 그런대로 먹을 만했는데, 문제는 밥이었습니다. “식사 준비가 다 되었느냐?”는 시아버지의 말씀에 할 수 없이 밥 같지 않은 밥을 올리면서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며느리가 말했습니다.

“아버님, 용서해 주세요!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것을 해왔습니다! 다음부터는 잘하도록 하겠습니다!” 혹독한 꾸지람을 각오를 하는 며느리에게 시아버지는 뜻밖에도 기쁜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가야, 참 잘됐다! 실은 내가 몸살 기가 있어서 죽도 먹기 싫고 밥도 먹기 싫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것을 해왔다니 정말 고맙구나!” ‘그동안 친정에서 뭘 배웠냐, 대학은 폼으로 나왔냐.’ 등등으로 상처를 줄 법도 한데, 그러지 않으시고 오히려 무안해 할 며느리에게 따뜻한 말씀을 하신 시아버지는 정말 지혜로우신 분입니다.

그 지혜로운 인격과 성품으로 그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평생 극진한 섬김을 받았습니다. 이렇듯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 주는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고, 상처 주는 말 한마디로 평생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오래전에 한 모임에서 오랜만에 한 선배를 만났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기분 좋은 인사말을 건넸지요.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정말 좋아 보이십니다.” 그런데 선배의 말이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야! 정말 오랜만이다. 근데 너 폭삭 늙어 보인다. 10년은 늙어 보인다.” “허허허 그래요?”라는 말로 넘겼지만, 소심한 저의 기분을 망치는데 딱 1초 걸렸지요. 당연히 그 만남이 그 선배와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습니다.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배운 소중한 기회였지만, 그 선배를 다시 만나면 왠지 고통스러운 말을 들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것이 무엇일까요? 핵무기? 환경 공해? 그러나 정말 보이지 않게 날마다 인간의 마음을 파괴하는 것은 말의 폭력입니다. 인간관계는 유리 그릇과 같아서 조금만 잘못해도 깨지고, 말 한마디에 상처 받고, 원수가 되어 버리기 쉽습니다.

우정을 쌓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립니다. 하지만 그것을 무너뜨리는 데는 단 1분이면 족합니다. 우리 서로 서로 따뜻하고 정 다운 말 한마디로 상대를 배려하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삶을 이어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귀를 더럽히면 마음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입을 더럽히면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지요. 한 번 마음이 더러워진 뒤에는 얼룩지고 때가 끼어도 잘 알 수 없습니다. 더러워지기 전에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을 우리는 ‘철부지’라고 하고 도외시 당하기에 십상입니다. 철부지는 원래 ‘철부지(不知)’라고 씁니다. ‘철을 알지 못한다.’ 라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철이란 무엇인가요? 사시사철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이 철부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때’를 모른다는 말입니다.

사실 자기 인생 사이클에서 철을 정확하게 짚어내기란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람마다 각기 철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철을 알면 기다릴 줄 압니다. 겨울 다음에는 반드시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기다립니다. 철을 모르면 기다리지 못합니다.

살아보니까 진단을 하기도 어렵고, 제대로 된 진단을 받아 보기도 정말 어렵습니다. 진단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철든 사람이고, 진단을 내려주는 사람이 스승이지요,

우리 새해부터는 말을 조심하면 최소한 철부지는 면하고 살 수 있습니다. 화종구출! 우리 항시 이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살아가면 어떨까요!

단기 4356년, 불기 2567년, 서기 2023년, 원기 108년 1월 25일

덕산 김덕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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