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암 최정간 차 문화연구가 매월다암 원장

[경남=뉴스프리존]김회경 기자= 작년 여름 영화 ‘한산:용의 출현’이 전국 극장가를 달구었다.

영화 명랑으로 유명한 김한민 감독이 또다시 메가폰을 잡고 배우 박해일, 변요한, 안성기가 호연을 해,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필자도 지인이 관람권을 선물하기에 두 번이나 보았다. 임난 당시 한산대첩은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로 이순신 장군의 해전모습을 흥미진지하게 연출했다.

특히 박해일은 이순신 장군의 고뇌에 찬 내면의 세계를 무리 없이 잘 소화시켰다.

현암 최정간./뉴스프리존DB
현암 최정간./뉴스프리존DB

우리 국민들은 이순신 장군과 한산섬은 너무나 잘 알아도 오늘날 경남 통영시가 어떻게 탄생됐는지 그 역사를 아는 이들은 그리 흔치않다.

근대와서 통영은 동양의 나폴리로 쪽빛바다, 점처럼 떠있는 섬들, 싱싱한 해산물로 많은 관광객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또한 근현대 많은 문화, 예술인들을 배출한 곳이다.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시인 김춘수, 화가 전혁림, 시인 청마, 연극인 동랑, 시조시인 김상옥, 조각가 심문섭, 화가 진의장이 이곳 출신이다.

그러나 정작 통영의 아버지인 이경준(李慶濬) 장군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경준 장군이 존재했기에 아름다운 통영은 더욱 빛나고 있는 것이다.

▶통제영의 탄생

오늘날 통영시는 삼도수군 통제영(조선 수군 총사령부)의 준말이다.

임난이 끝난 후 17세기 동아시아 국제정치 질서는 급변했다. 중원의 명나라가 망하고 후금인 청나라가 태동했고 일본에서는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고 도꾸가와 에이야스가 정권을 잡게 된다,

한편 조선에서는 1604년(선조37) 제6대 삼도수군 통제사로 임명된 이경준 장군은 조선의 남쪽 고성군 두룡포 무인지경에 조선 왕국 최초로 계획된 조선수군총사령부인 삼도수군통제영 건설을 완성하게 됐다.

이경준 장군은 한산 이씨의 명문, 목은 이색의 후손이다. 임난 7년 동안 참전하면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는 1603년(선조36) 2월1일 국왕 선조로부터 통제사임명을 받은 후 조선 수군의 원대한 지리적 전략적 염원이 담긴 수군기지 건설에 착수하게 된다. 두룡포 여항산 중턱에 남쪽바다가 잘 보이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서 조선수군총사령부 건물인 세병관을 완공했다.

그밖에 수군 병력과 그 가족들이 생활할 수 있는 부속건물, 군수물자를 조달할 수 있는 12공방등을 조성했다. 이어 군사도로와 축성, 전함을 숨길 수 있는 해안에 요새가 축조되고 여항산일대 정상에 망루를 완공했다.

그에 의해 명실상부한 매머드급 수군기지가 건설된 것은 17세기 동서양의 해군기지 건설역사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가 없는 위대한 업적이었다.

이경준 장군은 1604년(선조37) 음력 9월9일 중양절에 국왕 선조로부터 삼도수군통제영 건설이 완공됐다는 윤허를 받게 된다.

이러한 연유로 오늘날 통영이 탄생된 것이다. 이처럼 그의 뛰어난 미래의 해양방어에 대한 전략적 안목과 리더십에 의해 통제사 부임 후 불과 1년7개월 만에 삼도수군 통제영이 완공된 것이다.

1993년 10월 방한한 포르투갈 민주화의 영웅 마리오 소아레스 대통령에게 조선 왕국과 포르투갈의 첫 만남이 기록된 등록유초 복사본을 증정했다.(오른쪽부터) 소아레스 대통령, 주한 포르투갈 대사, 코리아타임즈 컬럼 리스트.(사진=현암 최정간)
1993년 10월 방한한 포르투갈 민주화의 영웅 마리오 소아레스 대통령에게 조선 왕국과 포르투갈의 첫 만남이 기록된 등록유초 복사본을 증정했다.(오른쪽부터) 소아레스 대통령, 주한 포르투갈 대사, 코리아타임즈 컬럼 리스트.(사진=최정대, 현암 최정간)

▶1604년 통제영에 도래한 최초의 서양인

이경준 장군에 의해 수군기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던 1604년 6월14일 통제영 앞바다 당포(현 통영시 삼덕항)에 정체불명의 괴선박이 출현했다.

이 장군은 긴급보고를 받고 참모장인 신여량 장군에게 즉각 판옥선을 출동시켜 괴선박을 공격하라고 명령을 하달했다.

조선 수군은 한나절 반 동안 치열한 교전 끝에 무장 괴선박을 나포해 신문한 결과 이 배의 정체는 일본 도꾸가와 막부의 동남아 무역선(朱印船 주인선)으로 밝혀졌다.

그해 4월 캄보디아 프놈펜 항구를 출항해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하던 중 풍랑을 만나 조선통제영 앞바다에 표류하다 조선 수군에 의해 나포된 것이었다.

승선한 일본 상인 중에 뜻밖에도 파란 눈의 이방인이 있었다. 대륙의 서쪽 끝에서 온 포루투갈 상인 주앙멘데스(당시 33세) 였다. 그는 대항해 시대 끝자락 은둔의 조선 왕국에 첫 도래한 서양인으로 영광스런 기록을 남겼다.

우리 역사에 기록된 첫 서양 도래인은 1627년 경주 감포 앞바다에 온 네덜란드인 베르테브르(한국명 박연)와 1653년 제주도에 발을 디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상인 하멜 일행이다.

포르투갈인 주앙멘데스의 조선왕국 도래가 기록된 고문서는 조선시대 비변사(현NSC) 일지인 ‘등록유초’였다.

이 ‘등록유초’는 고(故) 박태근 박사와 필자에 의해 1987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발견했다. 이어 1991년 박태근과 최정간은 전남 보성 신여량 장군 후손댁에서 도쿠가와 막부의 무역선 나포장면을 생생하게 그린 ‘당포승첩지도’도 추가로 발견했다.

필자와 가형(家兄) 최정대(코리아타임즈 컬럼니스트)는 1993년 방한한 포루투갈 민주화의 영웅 마리오 소아레스 대통령에게 조선왕국과 포르투갈과의 첫 만남이 기록된 ‘등록유초’ 복사본을 증정했다. 특히 소아레스 대통령은 포르투갈이 자랑하는 세계문화유산인 구석기 시대 ‘코아’ 암각화 유적을 보존하는데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대항해 시대 끝자락 조선왕국과 포루투갈의 교류사에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이후 2004년 당시 진의장 통영시장이 주최한 통영400주년 국제학술 세미나가 개최됐고, 후속사업으로 2006년 9월14일 통영 삼덕항에 ‘최초 서양 도래인 주앙 멘데스’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때 포루투갈 정부는 한국 포루투갈 우호의 상징으로 포루투갈 해군성 문장이 조각된 동판을 주한 포르투갈 대사를 통해 보내 기념비와 함께 새겼다. 2022년 포르투갈의 리스본시에서 주앙멘데스 기념 조형물 제막식이 열려서 두 나라 우의를 더욱 돈독하게 했다.

이 당시 현 천영기 통영시장을 비롯한 통영시 사절단도 참석했다.

▶구인후 통제사의 이경준 장군 공적비 건립

통영의 아버지 이경준 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비를 세운 사람은 19대 통제사 구인후(1578-1658)장군이었다.

그는 이경준 장군에 의해 통제영이 건설된 지 20여년 만에 그의 공적이 잊혀져 가는 것에 안타까움을 후세 길이 남기고자 당시 통제영 남문 밖 해안가에 ‘두룡포기사비’를 세웠다.

높이 214cm, 너비 90cm, 두께 20cm의 대형비석으로 비문은 창원 부사를 역임한 박홍미가 지었다.

그는 능성 구씨 명문가의 후손으로 문무를 겸비했다. 구인후 통제사의 ‘두룡포 기사비’ 건립이후 400년이 지난 오늘 통영인들은 통영의 아버지인 이경준 장군에 대한 별다른 현창 사업이 없는 상황이다.

유감스럽게도 통영시 어느 구석에도 이경준 장군을 기리는 기념 조형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워낙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란 슈퍼 스타의 그늘에 가려져서 일까? 그렇지만 오늘날 통영을 탄생시킨 이경준 장군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내년이 벌써 통영탄생 420주년 더 늦기 전에 통영인들이여! 이경준 장군 동상 건립에 나서자.

통영이 낳은 조각의 거장 심문섭의 작품으로 이경준 장군 동상을 제작하면 그 역사적인 의의는 더욱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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