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4일 서부 복싱회 원동희 회장이 빙부상(聘父喪)을 당해 필자는 장례식장을 방문했다.

경기도 김포에 살면서 장인 어르신을 11년째 모시다가 상을 당한 원 회장은 온화한 성품으로 후배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는 대표적인 복싱인이다.

빙부상을 당한 서부 복싱회 원동희회장 부부
빙부상을 당한 서부 복싱회 원동희회장 부부

1957년 경북 경주 출신으로 1970년 중반 서울 구로구 에 위치한 구로공단 체육관에서 1960년 로마 올림픽 국가대표로 참가한 김득봉 사범의 지도를 받으면서 IBF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 이승훈을 비롯 그의 친형이자 페더급 국내 랭커 이민훈 1977년 주니어 웰터급 신인왕 옥치원과 그해 웰터급 신인왕전 결승에서 백남인과 결승에서 맞대결 판정패를 당해 준우승을 차지한 정영수 (대구 코리아체육관 관장) 등과 함께 주축선수로 활약했다.

지금은 역사 속에 사라진 구로공단 체육관소속으로 대통령배와 전국체전에 밴텀급 서울 대표로 출전한 원동희는 군입대로 인해 21전 18승 (11KO) 3패의 전적을 끝으로 1979년 복싱을 접었다. 원동희 회장을 구심점으로 복싱계 저변에서 활동하는 서부 복싱회의 무궁한 발전을 바란다.

프로복서 출신으로 최초의 석사 복서 출신이자 세계복싱기구(WBO)와 국제복싱연맹(IBF) 심판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재훈 박사가 지난 15일 오후 6시 모교인 건국대학교 동문회관 컨벤션홀에서 자전적 실화 소설 '사각의 링에서 박사모까지'란 제목의 자서전을 출판, 이를 기념하는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프로복싱 최초의 2체급 챔피언을 지낸 홍수환 KBC 정선용 사무총장을 비롯 김재훈 박사가 삼일중, 삼일상고, 건국대를 거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제공해준 홍정기·배용재·김진도 선생 등 세분의 은사님이 차례로 배석 자리를 빛내줬다.

부천대 김진도 교수(좌측) 김재훈박사, 테니스선수 황정곤(우측)
부천대 김진도 교수(좌측) 김재훈박사, 테니스선수 황정곤(우측)

김 박사는 출판기념식에서 65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반드시 길은 있다는 굳은 신념으로 앞날을 헤쳐왔다. 분명한 것은 방법을 찾으면 길이 보인다고 말했다. 

부지런한 사람은 내가 처한 환경과 조건이 아무리 혹독하더라도 반드시 그 속에서 방법을 찾지만 게으른 사람은 핑계를 찾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거듭 역설한 김재훈은 모든 것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마음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인생의 분수령을 삼일중 재학시절로 꼽았다. 특유의 반항아적 기질을 지닌 김재훈은 유소년 시절 연례행사처럼 대형사고를 쳐 수원경찰서를 들락날락한 불량소년이었다. 그런 소용돌이 속에 중학교 졸업자로 끝날뻔했던 아슬아슬한 순간 사랑과 정성으로 그를 보듬아 준 삼일 중학 때 은사님인 홍정기 학생주임 선생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

삼일중 상고때 스승 홍정기 선생 김재훈 박사 배용재 선생(좌측부터)
삼일중 상고때 스승 홍정기 선생 김재훈 박사 배용재 선생(좌측부터)

세상에서 만남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중 인생의 성패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만남은 나는 3가지라 정의한다. 친구와 만남 배우자와 만남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승과 만남이 바로 그것이다. 

교육 심리학에서 피그 말리온 효과(Pygmalion effxct)란 단어가 있다. 교사의 기대에 따라 학습자의 성적이 향상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홍정기 선생의 배려와 관심으로 김재훈은 불량학생의 딱지를 떼고 삶의 전환점을 마련 할 수 있었다.

교육 심리학에서 피그말리온과 배치되는 단어가 골렘 효과(Golem effect)다. 이 대목 에서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을 소환해본다. 1967년 전북 김제시에서 태어난 신창원은 매우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맘씨 착한 소년이었다. 이런 신창원이 초등 학교시절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등록금 납부 를 못한다. 이에 담임선생이 모욕적인 육두문자를 쏟아내자 여린 그의 가슴 한켠에 악마(惡魔)가 스멀 스멀 자라나기 시작한다.

결국 컨토롤 할 수 없는 어둠이 자신을 지배 결국 중학교에 진학 한지 불과 3개월 만에 퇴학을 당하면서 절망의 나락(奈落)으로 떨어졌다. 교육 심리학에서 등장하는 골렘 효과는 타인에게 기대치가 낮을 때 퍼포먼스가 저하되는 심리효과를 말한다.

만일(if) 김재훈이 불량소년으로 낙인이 찍혀 신창원처럼 중학교를 중퇴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펼쳐지고 전개 되었을까.

1974년 3월 우여곡절 끝에 수원 삼일 실고에 입학하면서 김재훈은 복싱에 입문한다.

세기는 다소 부족 했지만 바위처럼 흔들림 없는 멘 탈과 묵직한 주먹을 인정받아 1975년 서울체고에 복싱 특기생으로 재입학한다.

서울체고에서 이의평 감독의 체계적인 지도를 받으며 김정수 김철규와 더불어 서울체고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전국 무대를 석권한다.

1978년 동아대학에 입학한 김재훈은 1979년 건국대 사범대학 편입시험에 합격한다.

하지만 김재훈의 목표는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이라는 흔들림 없는 부동의 목표가 있었다.

그런 그의 꿈을 유리창 깨지듯 산산조각을 낸 선수가 바로 동양 웰터급 13차 방어에 성공한 황준석이다.

1981년 4월 교생실습까지 마친 당시 4전 3승 (3KO) 1패를 기록한 김재훈은 프로모터에게 당돌하게 황준석과 대결을 부탁한다.

당시 약관 20살의 황준석은 11전 전승 (3KO)를 기록한 국내 웰터급 챔피언이었다.

동양 웰터급 챔피언 황준석(우측)
동양 웰터급 챔피언 황준석(우측)

이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 김재훈의 담 상대는 동양 웰터급 챔피언 황충재 와 대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만일 김재훈이 황준석에 이어 황충재 마져 제압 국내 웰터급을 평정했다면 돈키호테식 기사도(騎士道) 정신으로 무장한 그의 성격상 난공불락의 요새(要塞)를 함락시키기 위해 다음 목표를 슈거 레이 레너드, 토마스 헌즈, 윌프레도 베니테스, 로베르토 듀란과 도전을 추진했을지도 모른다. 

필자가 지켜본 그의 인생행로(人生 行路)에서 그는 다소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도전정신이 몸에 스며든 인물이다.

요추 분리증(腰椎 分離症)이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서울체고 재학시절 대학 입학을 앞두고 정신력과 체력을 스스로 테스트 해 보기 위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456.5Km를 무려 11박 12일에 걸쳐 완주를 감행한 것이 좋은 예다.

요추 분리증이란 척추의 마디와 마디가 떨어진 것으로 운동선수들에겐 치명적인 장애였다. 아마 무대에서 전국대회를 6차례 석권 66전 55승 (46KO) 12패를 기록한 김재훈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비가 장팔사모 휘두르듯 매섭게 강공을 펼치는 황준석에 10회 판정패를 당하면서 교육자의 길로 진로를 변경하는 전환점이 된다.

옛 성인들은 멈출 때를 알아라 라는 뜻으로 지지(知止)란 표현을 썼다. 김재훈은 적절한 타이밍에 복싱과 깔끔하게 손절(孫絶)하고 우리네 삶에는 더 많은 선택지가 있음을 몸소 보여준다.

만약 김재훈이 황준석을 깨고 질풍노도와 같은 쾌속행진을 펼쳤다면 그가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라고 스스로 밝힌 박사모를 쓴 장면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동산 격언에 철길 따라 돈이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복싱 현장에 35년 몸담은 필자가 깨달은 현실은 프로복싱 세계도 프로모터역량에 따라 챔피언벨트가 보인다는 것이다.

극동 전호연 회장, 동아 김현치 회장, 88 심영자 회장이 트라이 앵글을 구축하면서 수많은 챔피언 탄생의 산파역을 담당한 것이 이를 실증(實症)한다.

김재훈 KBC 심판위원장         김재훈박사의 자서전 표지
김재훈 KBC 심판위원장                      김재훈박사의 자서전 표지

김재훈은 불행하게도 그런 어드밴티지(Advantage)는 없었다. 그러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는 것은 우주적 순환원리(巡還原理)다.

한쪽 문이 닫혔을 때 김재훈은 주저 없이 시선을 돌려 또 다른 열린 문을 바라보며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 다. 변화하려고 시도하는 힘은 절박한 위기의식부터 나오고 절박한 위기의식은 절실한 아이디어를 창출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김재훈이 선택한 새로운 길은 바로 교사의 길이었다. 리처드 브리크너는 그의 소설 '망가진 날들'에서 이렇게 말했다. 희망은 절대로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 단지 당신이 희망을 버릴 뿐이라고...

그의 삶의 철학이 묻어난 김재훈의 '사각의 링에서 박사모까지'란 자서전을 촘촘히 읽어보면 절망으로 점철된 끝없이 펼쳐진 터널을 땀과 눈물로 뚫어내는 과정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네이버 검색창>에 '사각의 링에서 박사모까지'를 치시면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파란만장한 역경을 딛고 툰드라처럼 얼어붙은 밑바닥에서 한올 한올 희망의 싹을 피어 올린 김재훈의 성공 스토리 를 탐독할 수 있다. 

2020년 2월 40년 봉직한 대진고 교사직을 정년 퇴임한 김재훈은 사각 링에서의 현장경험을 토대로 조만간 유투브 방송을 통해 복싱의 타격법과 방어술 그리고 링 제너럴싑 (Generalship)등을 엮어 순차적으로 정리 내보낼 생각이다. 인생 3막을 펼친 현재 그의 삶은 언제나 마침표 없는 현재 진행형이다.

김재훈 심판장, 홍수환챔프, 정선용 사무총장(좌측부터)
김재훈 심판장, 홍수환챔프, 정선용 사무총장(좌측부터)

과학 하면 아르키메데스 수학하면 피타고라스 문학 하면 이솝이란 상징적인 인물이 연상되듯이 복싱이론을 체계적으로 집대성(集大成)한 인물 하면 김재훈 박사가 떠오를 정도로 유익한 정보와 다양한 기술을 방송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선보이길 기대한다. 

조영섭기자는 복싱 전문기자로 전북 군산 출신으로 1980년 복싱에 입문했다.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현재는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복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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