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일 칼럼] 대한민국 대통령이 일본 우익의 주장에 힘 실어주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애쓰고자 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선의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다만 모든 말은 때와 장소에 맞게 해야 진정성이 있고 대중에게 강력하게 전달된다. 하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그야말로 분별없는 목표 지향적인 말은 하지않느니보다 못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가 그랬다. 3.1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일제의 식민지배 하에서 조선의 독립을 향한 조선 인민들의 열망이 분출한 민중 혁명이었다. 나라 잃은 설움과 분노, 자주와 독립에 대한 열망이었다. 그런 조선인들의 열망을 무참히 짓밟고 탄압한 일제의 만행의 역사가 바로 일제의 조선식민지 시대였다. 그래서 3.1운동 기념사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핍박당한 조선의 지난한 역사에 대한 기억이자 선대의 열망과 투쟁 정신을 기억하고 잇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_ 2023년 3월 1일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의 한 부분이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라고 믿기지 않는다. 3.1운동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존중과 공감이 있었다면 적어도 기념사에서 이런 말은 없어야 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3.1절 기념사는 역사에 대한 무지이자 조선독립을 위해 싸우다 쓰러져간 선대들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조선이 왜 침탈당했는가.

당시 조선황실이 세계사의 변화, 즉 개화기에 뒤쳐진 부분이 있었지만, 그것이 일본의 조선침탈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말은 전형적인 일본의 주장과 식민사관에 일치하는 발언이다. 한 마디로 우리가 못나서 침탈을 당했고 그 덕분에 근대화를 이뤘다는 논리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세계사의 변화’란 개화기를 의미한다. 당시 외국 상선들이 서로 오가며 교류의 물꼬를 트려고 했던 그 시기다. 그래서 개화기는 한 마디로 문호개방(門戶開放)을 의미한다. 문호개방, 즉 나라의 문을 열어서 타국과 통상을 맺어 교류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사실 ‘문호개방’ 이라는 말은 좋게 포장된 말일 뿐이다. 적어도 조선에게는 그랬다. 당시 열강들이 조선에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와서 맺은 게 바로 강화도 조약(1876)이었고 조미통상조약(1882)이었다. 그 뒤로 조선은 열강들의 땅따먹기 장기판으로 전락했다. 이런 일련의 열강들의 계산 놀음 끝에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했고 3.1운동은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조선인민들의 투쟁이었다.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과연 윤대통령의 역사인식이 역사를 통찰하고 시대를 읽고 있는가?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말했다. 일본과의 관계개선, 당연히 중요한 일이며 국익을 위해서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3.1절 기념사에서는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3.1운동은 일본과 잘 지내보자고 했던 운동이 아니라 일본의 침략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운동이다. 그 가운데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고, 일제가 패망하기 전까지 조선 식민지 하에서 조선인민들은 정신까지 개조 당해야만 했다. 그러니 적어도 3.1운동을 기념하는 날에는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자는 말로 끝났어야 한다. 일본은 여전히 조선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화에 대한 책임을 진 적이 없다. 지금은 과거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조선인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쟁점으로 남아있다. 이것도 조선이 세계의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서 그런 것인가. 윤 대통령을 친일이라고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윤대통령의 이번 3.1절 기념사는 조선을 일본에 팔아 넘긴 을사오적 이완용의 발언과 다를 바 없었다. 이완용은 이렇게 말했다. 

“조선이 식민지가 된 것은 조선이 힘이 없었기 때문이며 역사적으로 당연한 운명과 세계적 대세에 순응키 위한 조선민족의 유일한 활로이기에 단행된 것이다”_ 매일신보 1919년 5월 30일 이완용

윤 대통령의 기념사와 일치되는 맥락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을 이완용과 같은 친일파라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이완용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이런 식의 주장은 국민의힘에서 꽤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문제다. 지난해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 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며 이완용과 비슷한 말을 해서 곤욕을 치렀다. 모두 원죄를 조선에서 찾고 있다. 이것은 통렬한 자기반성적인 성찰이라고 좋게 봐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발언들이다. 

이런 와중에 일본은 어떤가.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여전히 없다. 같은 패전국인 독일의 역사에 대한 반성 노력과 비교해봐도 일본은 여전히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나라다. 지금도 일본의 많은 주류 정치인들과 학자들은 조선이 이렇게 근대화된 것이 식민지 덕분이라고 버젓이 떠든다. 한국에 수십차례 사과했다고 항변하는 목소리도 있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는 일본이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부터 2018년 아키히토 천황에 이르기까지 53번의 사과를 했다고 말하며 한일관계가 사실과 다르게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격화된 부분이 있다며 한일관계를 풀기위해서는 서로에 대해 잘 알아야 된다고 기고하기도 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말만 있을 뿐 행동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전에 사과의 말도 뒤엎는 형국이다. 일본은 여전히 진정한 사과의 의미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조경일 작가/피스아고라 대표

다시,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의지로 돌아가보자. 한일관계 개선은 두 말할 필요 없이 중요하다. 문제는 어떻게 개선하느냐 이다. 풀리지 않은 과거를 무작정 덮어두고 개선하자는 게 윤대통령의 해법인 것 같다. 하지만 한일관계 개선은 투 트랙(two track)이어야 한다. 과거에 대한 반성을 전제로 과거를 청산하는 작업이 필요한 동시에 국가 간에 외교와 경제 등 통상 교류를 해야 한다. 과거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가 채택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한일관계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로 발전하자는 중요한 합의였다. 하지만 빈번히 일본은 지키지 않고 있다. 물론 제대로 된 사과도 없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일본의 사과를 듣기 위해 여전히 매주 광화문 수요집회현장을 지키고 있다. 1992년에 시작했으니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 조선인 강제노역에 대한 배상도 없다. 이런 와중에 왜 한국의 대통령이 나서서 일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나. 이것이 문제다.

윤 대통령의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친일본 정책이라고 말이다. 친일프레임으로 마냥 비판하고 싶지도 않다.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윤 대통령과 현 정부의 역사인식이 진전은 없어도 과거로 후퇴하지는 말기를 바랄 뿐이다. 3.1절 기념사에서 보여준 역사에 대한 몰이해와 국민적 반감을 일으키는 그런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된다. 역사를 통찰하고 시대를 읽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관련기사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