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혜의 영화나들이] 1920년대 아일랜드 내전을 절친의 절교선언으로 빚어낸 수작

* 본문에는 영화 내용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편집상, 음악상 등 8개 부문 9개 수상 후보에 오른 작품으로 전 세계의 유수 시상식 335개 후보에 오르며, 그 작품성을 입증하고 있는 영화다. 마틴 맥도나 감독이 '쓰리 빌보드'(2017)에 이어 각본을 쓰고 연출한 미스터리 스릴러 블랙 코미디 작품으로, 2022년 9월 5일 79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되었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한 장면, 파우릭 설리반역의 콜린 패럴과  콜름 도허티역의 브렌던 글리슨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한 장면, 파우릭 설리반역의 콜린 패럴과 콜름 도허티역의 브렌던 글리슨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는 아일랜드의 외딴 섬마을 이니셰린에서 어느 날 “그냥 이제 자네가 싫어졌어" 하는 절친의 예고 없는 절교선언으로 당황한 파우릭 설리반(콜린 패럴)이 그 이유를 끝까지 알고 싶어하며, 친구 콜름 도허티(브렌던 글리슨)와 부딪히며 일어나는 일상을 다룬 유쾌하고, 충격적인 블랙 코미디다.

파우릭은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에서  여동생 시오반 설리반( 케리 콘돈)과 단둘이 살고 있다. 말과 당나귀를 돌보며 사는 그가 교류하는 사람은 오랜 절친 콜름과 마을 유일한 경찰의 아들 도미닉 커니(배리 케오간) 뿐이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한 장면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한 장면

두 사람은 매일 오후 2시면 마을의 주점 펍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절친한 사이다. 파우릭은 콜름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절교 통보를 받고 콜름에게 이유를 묻지만 “싫어졌다”는  납득할 수 없는 대답만 돌아온다.

파우릭은 혹시 말실수를 한 건 아닌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되돌아본다. 절교 선언을 당한 날이 4월 1일인 것을 알고 만우절 장난이 아닐까 생각해보지만 콜름의 태도는 단호하다. 한 번만 더 귀찮게 하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보내겠다 한다.

이해가 안 되는 파우릭은 계속 콜름의 주위를 맴돌며 화해를 시도하나, 콜름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파우릭의 집 앞에 던지고, 그래도 콜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파우릭에게 콜름은 손가락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한 장면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한 장면

순수한 파우릭은 자신이 납득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오히려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한 과정들은 오히려 콜름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며, 결국 콜름은 관계를 끊어내기 위한 최후의 조치를 취한다. 두 사람의 알 수 없는 긴장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고 파우릭의 인내심은 바닥이 나고 마침내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한 장면, 파우릭(콜린 패럴)과 도미닉 커니(배리 케오간)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한 장면, 파우릭(콜린 패럴)과 도미닉 커니(배리 케오간)

마틴 맥도나 감독은 아름다우면서도 황량한 아일랜드의 풍광 위에 비극과 희극을 기발하게 뒤섞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마틴 맥도나 감독은 해외 인터뷰에서 "두 친구의 절교와 아일랜드 내전의 분열에는 우화적인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1920년대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에서는 일부 대사와 장면에서 아일랜드 내전의 언급과 폭격장면이 있는데, 이해와 소통의 부재로 뒤틀린 우정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은 전쟁의 그것과 닮아있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한 장면, 시오반 설리반역의  케리 콘돈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한 장면, 시오반 설리반역의 케리 콘돈

1920년대 영국의 지배하에 아일랜드 자치를 인정받는다는 내용의 영국-아일랜드 조약을 지지하는 세력, 그리고 완전한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반대하는 세력 사이의 충돌은 IRA(아일랜드 공화국군)의 궤멸과 서로를 향한 테러로 죽음만을 만들어낸 참으로 허무한 대립이었다. 마치 파우릭과 콜름의 관계처럼 서로를 향한 이해를 부정하고 같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대립을 만들어낸 외딴섬 마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두 남자의 절교 사건과 닮았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한 장면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한 장면

파우릭 역의 콜린 패럴은 '킬러들의 도시'(2008)와 '세븐 싸이코패스'(2012)에 이어 세 번째, 콜름 역의 브렌던 글리슨은 '킬러들의 도시' 이후 두 번째로 맥도나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인다.

'애프터 양' '킬링 디어' '신비한 동물사전' '더 랍스터' 등의 작품들을 통해 블록버스터와 거장 감독들과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섭렵해온 콜린 파렐이 절교를 당한 남자 파우릭역을 맡아, 바보같이 순수한 면모로 친구의 갑작스러운 절교 선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역을 외모와 말투, 눈썹까지 디테일하게 표현했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한 장면, 콜름 도허티역의 브렌던 글리슨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한 장면, 콜름 도허티역의 브렌던 글리슨

'어쌔씬 크리드' '서프러제트' '해리포터' 시리즈의 배우 브렌단 글리슨은 절교를 선언한 남자 콜름역을 맡아 모든 일에 엄격하면서도 사색을 즐기는 예술가로 완벽하게 변신, 뚜렷한 이유 없이 절교를 선언한 뒤 친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단호한 모습을 보이며 긴장감을 지속하게 한다.

'이터널스' '킬링 디어' '덩케르크' 등의 라이징 스타 배리 케오간이 도미닉 역을 맡아 인물의 기저에 깔린 위태로움과 불안함을 몰입감 있게 연기해냈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한 장면, 파우릭의 여동생 시오반 역의  케리 콘돈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한 장면, 파우릭의 여동생 시오반 역의 케리 콘돈

배우 케리 콘돈은 파우릭의 여동생 시오반 역을 맡아 파우릭과 콜름 사이를 오가며 두 남자를 이해할 수 없어 견디지 못하고, 춥고 외로운 마을을 떠나는 역을 맡아 극적 긴장감을 더해 주었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95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콜린 파렐, 남우조연상에 브렌단 글리슨과 배리 케오간, 여우조연상에 케리 콘돈을 각각 후보에 올렸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한 장면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한 장면

콜름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파우릭의 집 앞에 던지는 순간, 관객은 이 영화가 친구 사이의 갈등을 넘어선 무언가를 말하고자 한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음악과 사색을 사랑하는 지성인 콜름은 파우릭과의 대화가 “무의미한 수다로 느껴진다”고 말한다. 아끼는 당나귀 제니를 비롯한 동물들을 돌본 뒤 친구와 펍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일상의 행복인 파우릭은 그런 콜름을 이해할 수 없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한 장면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한 장면

다정함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파우릭과 그런 것은 사라질 뿐이며 오직 음악·그림·시 만이 남는다는 콜름, 파우릭을 차갑게 밀쳐내며 완성한 곡을 파우릭의 장례식에서 연주해도 되는지 묻는 콜름의 아이러니한 태도는 다정함과 예술에 대한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멍청하지만 다정한 사람이었던 파우릭, 하지만 그것은 다 역사 속에 잊힐 뿐이라며 역사에 남는 음악과 예술만을 찬양하는 콜름의 모습은, 2023년 현재까지도 역사를 위해 개인의 다정함과 서로를 이해하는 태도를 잊어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각본을 쓰고 감독한 마틴 맥도나 감독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각본을 쓰고 감독한 마틴 맥도나 감독

마틴 맥도나 감독은 전작 '쓰리 빌보드'에서 작품 내내 이어지는 무거운 분위기를 블랙코미디 장르로 승화시켰었는데, 이번 작품에서 비극을 희극으로 희석시키는 대사들을 통해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은, 실소 섞인 웃음을 유발시켰다.

마틴 맥도나 감독은 해외 인터뷰에서 “조연 캐릭터들이 자기만의 독특한 삶을 살기를 원했다. 모든 사람은 인생이라는 자기 영화의 주인공이므로 모든 조연도 그런 식으로 대해야 한다. 두 주인공의 갈등에 대하여 공동체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대처하고 어느 편을 드는지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포스터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포스터

콜린 파렐은 인터뷰에서 "'이니셰린의 밴시'는 우정과 단절, 외로움, 슬픔, 죽음, 애도, 폭력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굉장히 인간적인 주제들”이라고 설명했다.

브렌단 글리슨은 “이 영화에는 영웅이 없고, 모두가 영웅이자 악당”이라고 전했다.

아일랜드의 외딴 섬마을 이니셰린에서 다양한 캐릭터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조용했던 일상을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지를 보여 주는 ‘이니셰린의 벤시’는 3월 15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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