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일 칼럼] 尹 정부 해법은 '일본 비위맞추기'로 끝나, 최악의 '굴종외교' 막아야

윤석열 대통령은 7일 제10회 국무회의에서 “일본은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 경제, 과학기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다”며 “한일 간의 미래지향적 협력은 한일 양국은 물론 세계 전체의 자유, 평화, 번영을 지켜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3.1절 기념사 이후 6일 발표한 강제징용 피해 배상 해법 제시를 포함해 일본과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며 말한 것이다. 

지나가며 듣기에는 참 좋은 말이다. 이웃나라 일본과 미래지향적 관계를 맺는 게 좋다는 데에 누가 반대하겠나? 당연한 소리다. 그래서 문맥을 뜯어보지 않고는 딱히 문제를 제기할 게 없다. 하지만 윤대통령이 연일 쏟아내는 한일관계 접근법에는 주체적인 역사인식과 국정철학이 보이지 않는다. 윤대통령은 한일관계를 역사적 맥락을 통째로 삭제한채 한국과 특별한 역사적 관계가 없었던 여느 보통의 나라들처럼 접근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물론 여기에는 풀리지 않는 과거는 우선 덮어두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先 문제해결’에 대한 동기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근본적으로 일본의 조선에 대한 역사적 과오에 면죄부를 주려는 동기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윤대통령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말이다. 모든 정치적 행위와 정책결정은 결과로 평가받는다. 이런 일련의 배경에서 나온 윤대통령의 3.1절 기념사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안 발표를 보면 경악스럽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 일본 피고 기업이 강제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피고기업인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된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현재까지 일본의 입장변화는 없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지난 6일 발표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안은 ‘제3자 변제’ 방식이다. 일본 피고 기업을 대신해 국내 재단(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원고들에게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고, 현재 계류 중인 관련 소송이 원고 승소로 확정될 경우에도 판결금 등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이게 대체 무슨 해법인가? 그러니까 한마디로 당시 조선인들을 강제징용 했던 일본의 기업이 아니라 국내 기업의 자발적 기여금으로 배상한다는 말이다. 고작 해법이 국내 기업의 자발적 기여라니 엉뚱하다. 물론 정부의 이런 발표에는 배경이 있다. 실제로 기여금 출연대상으로 거론되는 국내 기업은 포스코, KT&G 등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수혜 기업 16곳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강제징용 해법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는 을사오적에 빗대 계묘오적으로 선정했다. (사진제공=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윤석열 대통령의 강제징용 해법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는 을사오적에 빗대 계묘오적으로 선정했다. (사진제공=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정부는 이번 피해보상 방안을 피해자 측에 설명하고, 판결금 수령 의사가 있을 경우 향후 예상되는 절차 안내를 마무리한 후 피해자 측의 최종 동의를 구할 계획이라고 한다.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은 총 15명이다. 일본제철에서 일한 피해자, 히로시마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일한 피해자, 나고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등 3개 그룹으로 나뉜다. 그런데 이번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강제징용 소송 법률대리인과 피해자 지원단체 측은 일본제철과 히로시마 미쓰비시 중공업 징용 피해자 및 유족 9명 중에서 4명이 명시적으로 한국 정부 입장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 가운데 양금덕 할머니 등 3명은 정부안에 명시적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강제동원 피해자대리인단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정부안에 대해 “일본 기업의 사법적 책임을 면책시켜주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포스코의 사회적 책임과 법적책임

일본은 지난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한국이 청구권을 포기하는 대신 무상 3억 달러와 유상 차관 2억 달러의 경제협력자금을 지원했고, 이중 약 24%가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소 내 첫번째 용광로를 지을 때 사용됐다. 실제로 포항제철 설립자인 박태준 명예회장의 회고록에는 “우리 선조들의 피의 대가인 대일청구권자금으로 포스코가 지어졌다”는 말이 나온다. 이로 인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2006년 "우리에게 돌아왔어야 할 자금으로 성장한 기업"이라면서 포스코에 위자료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당시 서울고법은 원고 청구를 기각하면서 포스코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법원은 포스코의 사회적 책임을 인정하며, 전후 배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포스코는 2014년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3년에 걸쳐 총 100억을 출연하겠다고 발표한 뒤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30억원씩 총 60억원을 출연했고, 나머지 40억원은 현재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다. 

법원이 판시했듯이 포스코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 하지만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에 대한 법적 책임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가? 일본의 배상금 일부가 포스코의 성장에 쓰였으니 도의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엄밀하게 따져보면 당시 대일청구권자금 5억달러는 박정희 대통령의 중공업발전 전략의 일환으로 포스코를 밀어준 것이었고, 이는 순전히 국내 정치행위 즉 정책결정이었다. 일본이 직접 포스코에 준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의 기업성장 정책이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포스코를 비롯한 대일청구권자금 수혜기업 16곳의 입장에선 울며 겨자먹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당시 5억달러가 피해자가 아닌 기업에 간 것은 분명 문제다. 피해자 보상이 배제된 국내 정책결정이었다. 이번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안도 결국 다시 국내 기업에 책임을 떠넘긴 꼴이다. 

1965년 대일청구권자금 5억달러로 끝내자는 국민의힘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8일 정부가 발표한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을 논의하자며 민주당을 다그쳤다. 그러면서 ‘제3자 변제’ 방식은 더불어민주당 출신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냈던 안(案)과 일맥상통한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여야가 지금이라도 '문희상 안+α'를 놓고 새로운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고 했다. '문희상 안'은 2019년 문 전 의장이 추진했던 방안으로 한·일 기업(2)과 양국 정부(2)의 기부금, 국민의 자발적 성금(α)을 모아 새로 설립하는 재단을 통해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방식으로 '2+2+α(알파)' 안으로 불렸다. 

정 위원장은 "문 전 의장이 특별법을 발의했는데 당시 문재인 청와대에서 거들떠보지도 않아서 여야 간 논의로 이어지지 않았다"면서 "당시 민주당 의원들 속에서도 이게 현실적 대안이라고 평가한 의원들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정확하지 않다. 이번 윤석열 정부안은 순전히 국내기업의 기금과 민간 후원금으로 배상한다는 내용이다. ‘문희상 안’은 적어도 한국정부와 일본 정부가 책임을 5대 5로 하고 한국기업과 일본기업의 기부금 참여가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이번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배상안은 일본에 단 돈 1엔도 부담을 주지 않았을 뿐더러 일본 정부에게 사과는 물론 책임도 묻지 않고, 오로지 한국 정부가 책임지면 되는 일로 축소해버렸다. 이러니 일본 정부가 두 팔 벌려 환영할 수밖에 없는 조치다. 역시 일본은 미소 지었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장관은 한국 정부가 발표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안’과 관련해 “한국이 징용배상 조치를 착실하게 실행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입꼬리가 귀에 걸린 듯 고약한 환영사다. 한국에게 착실히 실행 하라니. 듣는 것으로도 이미 화가 날 일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문제를 해결하라는 셈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일본의 후속조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비위를 맞추듯 꼬리를 흔드는 게 전부다. 일본은 자신들은 이미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마무리 지었다는 입장이다. 일본이 버티고 있는데 왜 한국이 나서서 문제를 종결 지으려고 하나. 물론 피해자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의 책임 또한 크다. 문재인 정부에서 결국 강제징용 배상안 문제는 진전되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의 무책임이 이번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안 해법에 정당성을 주지는 못한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8일 라디오에서 역대 어느 정권도 내버려 둔 폭탄 같은 문제를 윤 대통령이 처리한 것이라고 비유하며 치켜세웠다. 이건 비유가 아니라 일본의 비위 맞추기다. 어찌됐든 해결방안을 내놓기는 했으니 이전 정부 보다는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하는 꼴이다. 이전 정부가 미뤄둔 숙제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말인가.

조경일 작가/피스아고라 대표
조경일 작가/피스아고라 대표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7일 성명을 통해 "강제동원 피해 배상 문제는 단순히 금전적인 채권·채무가 아닌, 피해자의 인간 존엄성 회복과 관련한 문제"라며, 이번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피해 배상 해법을 강하게 비판했다. 피해자 중심적 접근에 반하는 정부의 강제징용 피해 배상 해법은 철저히 가해자 중심적인 강요에 다름없다. 돈만 받고 그만하라는 얘기다.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이 가해자였다. 하지만 이들은 강제동원과 불법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사과도 없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마치 일본의 대리인이라도 되는 마냥 일본이 동냥꾼에게 던져주듯 한 5억달러로 이 문제를 덮으려고 한다.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이 최종 입장이라는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니 친일 정권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돈이면 되는 줄 안다. 일본 정부나 한국정부는 부유국이다. 배상할 돈이 없어서 배상 못하는 것도 아니다. 영화 '베테랑'에서 황정민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명대사를 날렸다. 윤석열 정부는 가오(얼굴, 체면의 일본말)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민주당은 이번 정부안에 대해 “최악의 굴종 외교”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하지만 정진석 비대위원장의 표현처럼 민주당도 ‘굴욕외교’라고 비판할 자격도 사실 없다. 어찌됐든 문재인 정부에서 강제징용 배상안 해법은 미루고 미뤄졌다. 어떻게든 해법을 내놨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진전된 게 없이 윤석열 정부로 넘어갔고 결국 막가파식 대안이 나온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입법권을 행사해서 정부안 발표를 수정해야 함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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