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역사의 기록] 우리말살리기 나선’한말글사랑겨레모임‘이 한일들

공병우 박사 제안으로 이오덕 선생과 함께 우리 말글 사랑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를 만들려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한말글사랑겨레모임(공동대표 이대로 밝한샘)으로 한글학회 쪽 사람들 중심으로 따로 출범 했다. ’한말글‘이란 말은 ’우리말글‘이란 말과 같은 말인데 이오덕 선생은 ’한말글‘이란 말이 낯설다고 모임 이름을 “우리말 살리기 모임”으로 하자고 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이참에 주시경 선생 뜻과 꿈을 살리는 뜻에서 ’한말‘이라는 말도 살리자고 ’우리말글‘을 ’한말글‘로 바꾸어 ’한말글사랑겨레모임‘으로 하자고 했었다. 사실 나도 ’한말‘이란 말을 한글운동을 시작해 20여 년이 지난 1980년대에 처음 알게 되었을 때에 낯설었지만 그 역사를 몰랐다는데 부끄럽고 뒷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대한제국 때는 우리말을 국어, 우리 글자를 국문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주시경 선생은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니 일본말이 국어(나라말)가 되어 우리말을 국어라고 할 수 없게 되니 우리말은 ’한말‘이라고 새 이름을 짓고, 우리 글자는 국문(나라글)이라고 할 수 없게 되니 ’한글‘이라고 새 이름을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본 강점기에 조선어학회가 ’한글‘이란 학술지도 내고, 한글날을 만들면서 ’한글‘이란 말은 널리 알려졌으나 ’한말‘이란 말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한말‘이란 말도 살려서 쓰자는 뜻으로 한글운동을 하는 젊은이들이 ’한말글‘이란 말을 만들어 썼다. 사실 ’우리말‘이란 말은 보통명사다. 그래서 1988년부터 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소식지 이름도 ’한말글 사랑‘으로 지었고 “한말글 사랑 이야기 마당”도 열었다. 

1. 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가 “한말글 사랑 이야기 마당”을 열다.

공병우 박사가 한글문화원 안에 전국국어운동대학동문회(회장 리대로) 사무실을 주면서 함께 활동을 하자고 하셔서 바로 그 지하 강당에서 ’한말글사랑이야기 마당‘을 열었다. 우리말글사랑이야기 마당이다. 첫 번째 이야기 마당은 김정수 한양대 교수가 학술원 국어연구소(소장 김형규)가 “한글 맞춤법 개정”을 한 것은 잘못임을 이야기 했고, 두 번째는 한글학회 조재수 연구원이 “남북 말글 통일 문제”를 이야기 했고 세 번째는 내가 “새 집현전”이란 제목으로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을 “남북 말글이 하나가 되는 일, 영어 마구 쓰기 안하기, 일본 한자말 버리고 쉬운 우리말 살려서 쓰기, 신문 한글로 만들기,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 하기”들을 이야기 했다. 이 일은 “한말글사랑겨레모임”으로 이어져 많은 일을 하게 된다. 

1989년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가 한말글사랑이야기다망을 열었을 때 걸었던 펼침막(위) (사진=리대로)
1989년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가 한말글사랑이야기다망을 열었을 때 걸었던 펼침막(위) (사진=리대로)
내가 ’새 집현전‘이란 이름으로 모임에서 이야기 한 것을 보도한 학생신문기사(아래). (사진=리대로)
내가 ’새 집현전‘이란 이름으로 모임에서 이야기 한 것을 보도한 학생신문기사(아래). (사진=리대로)

2. ’한말글사랑겨레모임’은 곳곳에 건의문을 많이 보냈다.  

이 모임은 글로 한말글을 살리고 빛내기 위해 정부기관에 건의하는 일을 많이 했다. 한글문화원(원장 공병우)이 개발한 세벌식 한글문서편집기를 이용해서 깨끗하게 문서를 빨리 작성할 수 있어서 그 방식을 이용할 것이다. 이 일은 세벌식 문서편집기를 알리는 일도 되고, 손으로 글을 쓰고 종이로 편지를 쓰는 것보다 셈틀로 글을 써서 누리통신으로 편지를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리는 한글기계화운동 실천이었다. 나는 국립국어원이 일본식 한자혼용을 추진하고 한글만 쓰기를 가로막아서 그 잘못을 바로잡는 일과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자는 건의를 많이 하고, 1989년부터 해마다 ‘신문의날’에 신문사에 독립신문 정신을 살려서 한글로 만들라고 건의했는데 1995년에 중앙일보가 내 건의를 받아들여서 제호도 한글로 바꾸고 한글전용 신문으로 냈다. 이 일은 한자혼용을 막은 일과 함께 큰 성과였다.

셈틀 문서편집기로 작성해 문화부(왼쪽)와 국립국어원(오른쪽)오 보낸 건의문.
셈틀 문서편집기로 작성해 문화부(왼쪽)와 국립국어원(오른쪽)오 보낸 건의문.

3. 한말글사랑한밭모임(대표 유동삼)도 태어나다.

한말글사랑겨레모임은 전국에서 훌륭한 분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부산에 박태권 교수, 김정섭 선생과 많은 분들이 참여했고, 대전에 중,고교 교장으로 퇴직하신 유동삼 선생과 서울에서 국어교사 출신 이수열 선생, 한글학회 김석득 부회장과 여러 분들이 참여했다. 그래서 처음 이 모임을 지방에 지회도 만들고 강력한 전국모임으로 만들기로 했었다. 먼저 광복 뒤 조선어학회 강습소를 다닌 원로 교육자 유동삼 선생이 대전에 한말글사랑한밭모임(대표 유동삼, 총무 백용덕)을 출범해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 그 뒤에 전주, 부산부터 지회를 창립하려고 했으나 원광호 의원을 도와 국회 한글이름패 만들어주기, 한글학회와 함께 한자혼용 반대투쟁하기, 한글날 국경일 제정하기 등 때문에 바빠서 지회 만들기에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한말글사랑한밭모임이 낸 유인물과 나와 대전모임이 주고 받은 우편물 봉투 . (사진=리대로)
한말글사랑한밭모임이 낸 유인물과 나와 대전모임이 주고 받은 우편물 봉투 . (사진=리대로)

4. 한글학회와 다른 단체들을 돕고 함께 활동하다.

그때 정부는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고 일본처럼 한자혼용을 하자는 서울대 국문과 이희승 교수가 그 제자들과 함께 만든 ’어문회(회장 남광우)‘와 한자교육추진회(회장 이재전), 그리고 국립국어원이 정치인 김종필과 김영삼을 등에 업고 한자조기교육을 추진하고 정부가 영어조기교육까지 추진하고 언론이 편을 들어서 한글학회 힘만으로 막기가 벅찼다. 그때 우리 젊은이들이 ’한말글사랑겨레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만든 것은 한글과 한글학회에 구세주였다. 나는 이때 활동을 신속하게 하려고 ‘바로모임’이라는 한글운동 별동대까지 만들고 국회의원 한글이름패 쓰게 하기, 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들 운동에 앞장을 서고 이 일에 한글단체들이 함께 나서도록 했다.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여러 단체들과 토론회도 열고 국회의원 이름패도 한글로 만들게 했다.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여러 단체들과 토론회도 열고 국회의원 이름패도 한글로 만들게 했다.

5. 공병우 박사와 함께 많은 일을 하다.

이 모임을 만든 것은 공병우 박사가 제안하고 도와주어서 한 일이다. 나는 공병우박사가 한글문화원 안에 사무실을 주어서 공박사와 함께 많은 일을 했다. 그 일 가운데 4월 7일 신문의날마다 공병우박사와 함께 신문사에 한글로 만들라고 건의를 했는데 공병우 박사가 돌아가신  뒤 1995년에 중앙일보가 내 건의를 받아들여서 제호도 한글로 바꾸고, 한글전용으로 신문을 낸 일이 매우 큰 성과였다. 중앙일보가 그렇게 한 뒤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한글전용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통일을 위해서 한자혼용으로 가는 것은 잘못이기에 이희승 교수 제자들이 중심으로 만든 국립국어원의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애쓴 일과 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과 한글기계화 운동을 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해마다 ‘신문의날’에 신문사들에 보낸 건의문(왼쪽)과 1995년 중앙일보 간부들과 내가 제호도 한글로 바꾸고 한글전용으로 바꾸게 한 대담을 나눈 중앙일보 사보 기사 (오른쪽).
해마다 ‘신문의날’에 신문사들에 보낸 건의문(왼쪽)과 1995년 중앙일보 간부들과 내가 제호도 한글로 바꾸고 한글전용으로 바꾸게 한 대담을 나눈 중앙일보 사보 기사 (오른쪽).

마무리 말: 한말글 사랑 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1990년대는 한글이 연산군 때 다음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광복 뒤부터 공문서를 한글로 쓰고 교과서를 한글로 만들었는데 일본 식민지 때 일본 한자말과 일본식 한자혼용에 길든 이들이 공문서와 교과서를 일본처럼 한자를 섞어서 쓰자고 해서 그들과 싸우느라고 문자전쟁이라고 할 정도였다. 조선어학회 때부터 일제에 맞서서 한글을 살리고 지킨 한글학회지만 정부, 언론, 재벌들이 일본을 등에 업고 한글을 죽이려는 그 세력에 맞서 싸우기 힘들었다. 나는 그 문자전쟁판 선봉에 서서 젊은이들을 이끌고 싸워서 이겨냈다. 그때 우리 한말글이 더 어렵게 될 것이란 것을 내다보고 시민단체인 한말글사랑겨레모임을 만든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며칠 전에 우리 말글로 돈을 버는 한 출판인이 나보고 왜 일반인이 낯선 ‘한말글’이란 말을 자꾸 쓰느냐고 해서 ‘한말글’이란 말을 많은 분들이 알아야 하겠기에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만든 일(60회)보다 먼저 써야 할 이 글을 뒤늦게 이제 쓴다.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에서 시작한 ‘한말글사랑 이야기마당’이 시민단체 ‘한말글사랑겨레모임’으로 이어져서 실천을 하고, 지금은 한글학회 부설 한말글문화협회로 이어져서 ‘한말글’이란 이름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나는 1990년대 한말글사랑겨레모임(대표 이대로)에 뿌리를 두고, 한글운동 별동대인 바로모임 총무,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이사, 외솔회 이사, 한글학회 외사부 간사로서 국회의원 이름패 한글로 바꾸기, 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 국립국어원 바로세우기, 한자조기교육과 한자병기정책 막기, 한국은행 한자현판 한글로 바꾸기 들을 제안하고 기획하고 실행했다. 나를 인정해준 어른들과 나를 따라준 후배들, 그리고 함께 애쓰고 도와준 분들에게 고마운 절을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지만 지난 일들이 꿈만 같다.

1998년 한말글사랑겨레모임과 한말글사랑한밭모임은 해산하고 이오덕 선생과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을 만들었다. 그때 왼쪽부터 이대로, 백용덕(한말글사랑한밭모임 총무), 이오덕, 노명환, 김경희, 노광덕 들이 이오덕 선생이 머물고 있는 중주 무너미 집에서 손을 잡고 새 출발했다. (사진제공=리대로)
1998년 한말글사랑겨레모임과 한말글사랑한밭모임은 해산하고 이오덕 선생과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을 만들었다. 그때 왼쪽부터 이대로, 백용덕(한말글사랑한밭모임 총무), 이오덕, 노명환, 김경희, 노광덕 들이 이오덕 선생이 머물고 있는 중주 무너미 집에서 손을 잡고 새 출발했다. (사진제공=리대로)

* 글쓴이는 우리말글살리는 겨레모임 공동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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