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혜의 영화나들이] 1960년대 믹구의 흑인 차별과 혐오에 결연히 맞선 한 여인의 놀라운 여정 그려

* 본문에는 영화 내용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틸’은 14살 소년 에밋 틸(제일린 홀)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한 엄마 메이미(다니엘 데드와일러)의 외침을 담은 실화로, 제76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 주연상 후보를 포함하여 전 세계 영화제 81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21개 부문에서 수상해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다.

영화 '틸'의 한 장면, 메이미역의 다니엘 데드와일러, 에밋 틸 역의 제일린 홀
영화 '틸'의 한 장면, 메이미역의 다니엘 데드와일러, 에밋 틸 역의 제일린 홀

'틸’은 1955년, 시카고에 살던 14세 흑인 소년 에밋 틸이 사촌을 만나기 위해 미국 남부 미시시피 주에 위치한 머니(Money)시로 여행을 갔다가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된 후, 어린 아들의 충격적인 죽음을 목도한 엄마 메이미가 차별과 혐오라는 거대한 세상의 벽에 맞서 싸워 나가는 여정을 다룬 영화로, 에밋 틸 피살 사건 후에 남부 전역에 민권운동의 확산을 불러일으킨 그의 엄마 메이미의 시선에서 펼쳐놓은 영화다.

1955년 8월 20일, 미국 남부의 인종 차별을 경험한 적 없었던 어린 소년 에밋 틸은 사촌들을 만나기 위해 기차를 타고 머니시로 향한다. 그는 8월 24일 머니 시에 위치한 한 식료품점에 들러 계산대에 있던 백인 여성 캐롤린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8월 28일, 백인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는 이유로 갑자기 들이닥친 무리들에 의해 한밤중 납치되어 어디론가 끌려가 사흘 뒤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영화 '틸'의 한 장면, 메이미역의 다니엘 데드와일러
영화 '틸'의 한 장면, 메이미역의 다니엘 데드와일러

시카고의 좋은 아파트에서 살며 공군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 메이미는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14살 아들 에밋이다. 어느 날 에밋은 미시시피 주에 살고 있는 사촌을 만나기 위해 홀로 여행을 떠나고, 에밋이 납치되었다는 불길한 소식이 들려오고, 며칠 뒤 에밋은 처참한 시신으로 돌아온다. 아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메이미는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사랑스러운 아들이 시신으로 돌아온 것을 본 엄마 메이미는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처참하게 훼손된 아들의 시신이 담긴 관을 열어둔 채 공개 장례식을 진행하고, 아들의 사진을 어떤 보정도 없이 그대로 흑인 언론 매체인 제트 매거진에 실리게 함으로써 차별과 증오의 잔인함을 그 무엇보다 즉각적이고 강렬하게 세상에 알리고, 세상에 충격을 던진다.

영화 '틸'의 한 장면
영화 '틸'의 한 장면

그녀의 결연한 결심과 행동은 지역 사회의 분노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북부와 남부의 흑인들이 연대하는 계기가 되었고, 민권운동의 확산으로 이어지고, 수많은 투쟁 끝에 1964년 인종과 피부색, 종교, 성별, 출신 국가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미국 연방 민권법이 제정되었고, 2004년에는 에밋 틸 피살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이뤄지게 되었다.

2022년 3월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에밋 틸 안티 린칭 법안(The Emmett Till Antilynching Act)으로 이름을 붙인 반린치 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안은 형사처분 권한이 없는 개인이나 단체가 가하는 린치를 증오 범죄로 규정하고, 최고 징역 30년형에 처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이 통과된 것은 1900년에 비슷한 법안이 최초로 발의된 이후 122년 만의 일이었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3년 2월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틸’ 상영회를 개최하며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 진실, 국가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조명하는 것. 그래서 이 영화가 중요하다. 우리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영화 '틸'의 한 장면
영화 '틸'의 한 장면

엄마 메이미 역을 맡은 다니엘 데드와일러는 미국 애틀랜타에서 나고 자라 그동안 다양한 영화와 TV 시리즈에 조연으로 출연해왔고, 오디션을 통해 ‘틸’의 메이미 역을 맡아 용기 있는 어머니 역으로, 제76회 영국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 후보를 비롯해 유수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다니엘 데드와일러는 수상 소감에서 “‘틸’은 메이미가 정의를 위해 어떻게 싸우는지, 어떻게 변해가는지 볼 수 있다. 그녀는 슬픔과 추모의 시간을 지나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잘 인지하고 열린 마음으로 공동체와 함께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우리는 현재 기후 변화부터 분열을 초래하는 여러 사회 문화적 이슈들을 겪고 있다. ‘틸’을 보는 관객들 역시 메이미가 겪은 변화와 공동체의 노력에 대해 잘 느끼길 바란다”고 당부 했다.

에밋 틸 역은 제일린 홀이 맡아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차별에 대한 편견이 없었던 14살 소년 에밋 틸을 완벽히 소화한다. 그의 순수하고 환한 미소는 참혹한 비극과 선명하게 비교되며 관객의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영화 '틸'의 한 장면
영화 '틸'의 한 장면

'틸’을 연출한 치노늬 추크우 감독은 2019년 선댄스영화제 드라마 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작품 ‘클레멘시’ 이후 ‘틸’의 연출 제안을 받아 “에밋 틸 피살 사건이라는 비극적인 이야기 속에서 에밋 틸의 엄마인 메이미에 주목했고, 그녀가 보여준 모성적인 측면의 관점에서 영화의 서사를 풀어나가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치노늬 추크우 감독은 “‘틸’은 메이미와 그녀의 감정적인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메이미가 주역이 돼야 한다. 제가 만든 영화에서 흑인에 대한 물리적 폭력은 화면에 담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 신체적 트라우마를 강조하고 싶지 않다”라고 제작진에게 제안했고, 메이미의 이야기를 독창적이고 영화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냈다.

영화 '틸'의 한 장면
영화 '틸'의 한 장면

또한 그는 “메이미가 아니었더라면 에밋 틸의 기억은 공기 속으로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그녀의 활동들은 민권운동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마땅히 알리고 빛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메이미의 이야기를 중심 서사에 둔 이유를 밝히고, 메이미의 이야기가 우리 모두로 하여금 변화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우리 안에 내재된 힘을 깨닫게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서 “이 영화는 전해져야만 하고, 지금 전해져야만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틸’을 통해 현재의 문화와 정치적 현실을 바라볼 수 있길 바란다.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이라며, 영화를 보는 이들이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사건과 함께 그 속에서 메이미가 보여준 용기와 변화를 위한 활동들에 주목해 주길 당부했다.

영화 '틸' 포스터
영화 '틸' 포스터

영화 ‘틸’은 아들의 충격적인 죽음을 목도하게 된 엄마 메이미의 참담한 심경부터 아들을 잃은 비극에 침잠하지 않고, 스스로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강인한 엄마이자 여성의 모습을 단단하게 그려내 가슴 아픈 공감과 묵직한 감동을 안겨준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아들에 대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일상 속에서 인종 차별, 성차별, 여성 혐오와 지치지 않고 싸워낸 한 어머니의 힘을 볼 수 있는데, 사랑의 부재에서 오는 상실, 즐거움의 부재에서 오는 애처로움, 아이를 잃은 슬픔과 함께 흑인의 삶을 받아들이는 당당함 등을 통해 변화를 위해 싸우는 힘에 공감하게 한다.

비극으로부터 힘을 얻고 스스로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는 강인한 엄마 이야기, 영화 ‘틸’은 3월22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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